[추모] 응우옌푸쫑 베트남공산당 서기장
[아시아엔=조철현 <베트남 공산당총비서 응우옌푸쫑> 저자] 쫑 삼촌. 80세 일기로 영면에 드신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이제야 진정된 가슴으로 당신께 추모 글을 띄웁니다. 7월 19일 오후, 베트남통신사(VNA) 서울 지국장으로부터 당신의 갑작스런 별세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귀를 의심했고, 이어서는 나의 영혼 한 줄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충격 속에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여름 감기쯤으로 잠시 입원해 계신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벌떡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그 온화한 미소로 베트남 국민들과 다시 마주하실 거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 6월 20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 당시 또럼(T? L?m) 주석에게 모든 걸 맡기고 잠시 쉬는 게 옳았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신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외교적 업적이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9월 하노이 정상회담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12월 정상회담이 그것들로, 그때마다 당신은 외교기조인 ‘대나무외교론’을 유감없이 펼쳐 베트남 국민들의 자존감을 높였습니다. 뿌리와 줄기의 견고함과 잎과 가지의 유연함을 잘 배합한, 그 유명한 ‘대나무외교론’ 말입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당신의 인물기록집 <베트남 공산당총비서 응우옌푸쫑>에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 책은 베트남에도 없는 세계 최초의 ‘쫑 서기장 인물평전’이 됐습니다. 2024년 4월 14일, 80세 생일에 맞춰 출간된 한국어판은 한국과 베트남 양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9월말로 예정된 베트남어판 출판을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6월 30일 팜민찐(Ph?m Minh Ch?nh) 베트남 총리가 방한 첫 공식 만찬에서 “세계 최초로 쫑 서기장의 인물평전을 쓴 한국 작가 조철현 선생에게 사의를 표한다”는 인사를 건네, 작가로서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쫑 삼촌. 저는 당신의 영면 소식을 듣자마자 하노이로 향했습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봤던 하노이 하늘을 바라봐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짐부터 꾸렸습니다. 그리곤 하노이로 가는 동안 눈을 꼭 감은 채 1년여 빙의됐던 당신의 지난 족적들을 하나하나 반추하며 당신의 영면을 기도했습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기 직전인 1944년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프랑스와의 전쟁 시기 유년기를 보냈고, 미국과의 전쟁 시기 국립 하노이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였습니다.
1967년 대학 졸업과 함께 공산당에 입당한 이래 당의 명령에 따라 당 기관지 <공산잡지>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맡아보며 30년을 저널리스트로 일하셨습니다. 이후 하노이시 당서기(2000~2006)와 국회의원(2002~2024), 국회의장(2007~2011), 서기장 3연임(2011~2024) 등을 지내며 고도성장 속의 베트남 현대사를 인문적으로 조탁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셨습니다.
그 인문의 중심은 당연히 베트남식 공산주의였습니다. 당신은 우선 당대 최고의 공산주의 이론가로서 사회주의적 ‘이념’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론 도이머이 정책을 적극 지지한 개혁주의자로서 자본주의적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둘은 사실 어울리기 힘든 구조적인 모순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둘의 균형추를 절묘하게 조절할 줄 아는 인문적인 지도자였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그 같은 족적은 호찌민 주석 이후 가장 존경받는 베트남 최고 지도자란 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그 점이 바로 내가 당신의 책을 쓰게 된 결정적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문학을 전공한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당신은 공산주의 이념을 알기 쉽게 전파하기 위해 베트남의 전통적인 민속시와 민화를 끌어들여 설득력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때론 응우옌주(Nguy?n Du)의 끼에우(Ki?u)에서 좋은 문장을 찾아 인용했고, 정통파 시인 딴다(T?n ??)와 혁명시인 응우옌빈(Nguy?n B?nh)의 문장을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흐우(T? H?u) 시인의 비엣박(Viet B?c)을 소환하기도 했고, 항불 독립투쟁 및 전쟁 시기 젊은 나이로 순국했던 레반시(L? V?n S?)며, 응우옌반끄(Nguy?n V?n C?)며, 리뜨쫑(L? T? Tr?ng)이며, 막티브어이(M?c Th? B??i)를 기억하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국민들과 세계 시민들이 당신을 추모하는 가운데 나는 하노이에 머물며 당신의 어릴적 고향마을과 당신의 청년기 열정이 스민 당신의 모교 응우옌자티에우(Nguy?n Gia Thi?u) 고등학교를 찾아 헌화했습니다. 당신의 책을 통해서도 내가 강조했던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참 의미를 재삼 되짚어보기 위한 저의 추모 여정에는 마침 베트남국영통신사(VNA)가 동행해 내가 베트남 국민들에게 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현장 인터뷰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쫑 서기장은 물 한 모금을 마실 때도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는 지도자였다. 혁명을 하고도 국민이 못 산다면 그것은 혁명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가르친 호찌민 주석의 유훈이 그의 음수사원이었고, 당의 아들로서, 창당 100년을 앞둔 베트남공산당(1930~ )의 오랜 강령이 그의 음수사원이었으며, 그가 마지막까지 꿈꿨던 ‘청정국가 베트남’을 위한 부정부패 척결 또한 당원들부터 깨끗해야 한다는 오랜 신념 역시 바로 그 물의 근원에서 비롯됐다. 부정부패 척결은 해외투자 유치를 통해 베트남 경제성장의 지속적인 발판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지도자적 감각이기도 했다. 베트남 국민들은 부디 쫑삼촌의 유지를 잘 받들어 부정부패가 없는 세계 1등 청정국가로 계속 발전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게 그의 책을 쓴 한국 작가의 간절한 호소다.”
쫑 삼촌. 나의 이 같은 현장 인터뷰가 여러 언론을 통해 베트남 국민들에게 전해질 즈음 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7월 25일 주한 베트남대사관을 찾아 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공식적인 예를 갖췄고, 그로부터 닷새쯤 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베트남어판을 못 보신 채 영면하셨다는 아쉬움이 너무 커 1년만 앞서 책을 냈더라면 하는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 자책감을 달래고자 8월 하순쯤 하노이를 찾아 당신의 고향마을을 다시 방문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주일쯤 머물며 당신의 고향 어른들로부터 당신의 어릴적 이야기와 특히 당신 부모님의 이야기를 집중 취재해서 책 내용을 수정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바빠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제부터 작가로서의 또 다른 작업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거듭된 증보판을 통해 당신의 위대했던 족적을 계속 보완해 알리는 게 이제부터 제가 해야 할 필생의 작업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 이즈음, 다시 당신께 빙의될 그 순간을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 놓으시고, 하늘나라에서 만난 호찌민(H? Ch? Minh) 주석과 보응우옌잡V? Nguy?n Gi?p) 장군과 또 그토록 당신이 존경했던 또 흐우(T? H?u) 시인이며, 종군기자로 전쟁터에서 순국한 당신의 국립하노이대 문학부 8기생들이며, 그 밖의 수많은 베트남 순국선열들과 모처럼 껄껄 웃으며 베트남의 건강한 미래를 염원하시기 바랍니다.
마침 금년은 프랑스와의 오랜 악연을 완전하게 끊어낸 디엔비엔푸(?i?n Bi?n Ph?) 승전 70주년의 해입니다. 하늘에서 만난 베트남의 모든 지도자들과 함께 치르실 천상 축하연을 상상하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사랑합니다, 쫑 삼촌. 부디 영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