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일 별세 베트남 총비서 집대성 <베트남 총비서 응우옌푸쫑>
19일 별세 쫑 베트남공산당 총비서의 80년 생애사
한국 조철현 작가, 한국 라운더바우트서 출판
19일 별세한 응우옌푸쫑(Nguy?n Ph? Tr?ng) 베트남공산당 총비서(서기장)를 소개한 책이 국내에서 처음 발간됐다. <베트남 총비서 응우옌푸쫑> 제목으로 그의 평전 격인 이 책은 베트남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출간된 바 없다. 응우옌푸쫑 총비서의 80년 생애사를 다룬 첫 책이다. 조철현 작가가 집필했으며 한국의 도서출판 라운더바우트에서 출간했다.
쫑 총비서는 1944년 4월 14일생으로, 이 책은 그의 ‘팔순’ 당일에 맞춰 출간됐다. 전체 분량은 420쪽으로, 제1부 ‘숙명시대’, 제2부 ‘평필시대’, 제3부 ‘위민시대’, 제4부 ‘순응시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책에는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쫑 총비서의 청소년 시절과 대학 시절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또 하노이대학(현 국립하노이인문사회과학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공산당 입당과 함께 베트남공산당 기관지 <공산잡지> 기자로 일하며 그가 썼던 다수의 글들도 자세히 소개돼 있다.
조철현 작가는 주한 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 외교부의 자료 협조로 쫑 총비서의 하노이시 당비서(2000~2006) 시절과 국회의장(2006~2011) 시절의 주요 궤적을 촘촘하게 담아낸 데 이어 2011년 제11차 당대회를 통해 처음 베트남 국가권력 서열 1위에 오르는 과정에 대해서도 다큐 형식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했다.
또 2011년부터 총비서 3연임을 이어가며 ‘불타는 용광로’라는 별칭으로 부정부패 척결에 나서고 있는 쫑 총비서의 만년 행보는 물론 ‘대나무 외교론’으로 불리는 그의 외교적 행보에 대해서도 자세히 엮었다. 특히 2023년 있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하노이 연쇄 정상회담도 흥미진진하게 풀어썼다.
조철현 작가는 “쫑 총비서와의 대면 인터뷰를 마지막까지 기대했지만 무산된 점이 아쉽다”면서 “그 대신 쫑 총비서의 소련 유학 시절 박사논문과 대학 졸업논문까지 꼼꼼히 찾아 반영하는 한편 그의 대학 동기들과 기자 시절의 동료들이 그에 대해 증언한 여러 자료들을 샅샅이 뒤져 후회 없는 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썼다”고 밝혔다.
조 작가는 “1954년 항불전쟁(1차 인도차이나전쟁)이 끝나고 1960년 항미전쟁(2차 인도차이나전쟁)이 발발하기 전의 ‘모처럼 평화시기’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마친 그의 청소년기 애국심과 호찌민 주석에 대한 청소년 시절의 무한한 존경심이 쫑 총비서의 평생 자양분이 됐다”고 평가했다.
조 작가는 또 “항미전쟁 시기 저널리스트를 꿈꾸며 베트남 최고 학부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그의 인문학적 사유와 대학을 마치고 베트남공산당 기관지인 <공산잡지>에서 호찌민 주석의 사상과 이념을 글로 표현하며 공산주의 이론가로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확고히 한 점 역시 그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저자 조철현 작가는 기록문학가 겸 다큐멘터리 PD로 1990년 빨치산 장편소설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를 펴낸 바 있고, 평양 남북작가대회 기록 다큐(2005)를 비롯,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2006~2010), 세종학당 프로젝트(2007~2009) 등 모국어 공동체와 관련된 여러 다큐를 제작했다.
2017년부터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 지역을 집중 취재하면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인물기록집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2017)와 <아리랑요양원 10년의 기록집>(2020), <허선행의 한글아리랑>(2022) 등을 펴냈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쫑 총비서의 80년 삶과 베트남 근현대사 연표 …… 07
프롤로그 ; 길의 시원 …… 17
제1부 숙명시대(宿命時代)
음수사원(飮水思源) …… 41
도강(渡江) …… 55
출항(出港) …… 71
제2부 평필시대(評筆時代)
작심 독필(作心毒筆) …… 103
공산잡지(共産雜誌) …… 115
신념(信念) …… 127
펜의 복무 …… 143
제3부 위민시대(爲民時代)
하노이시 당비서 …… 173
탕롱(昇龍, Th?ng Long) 새천년 …… 183
도이머이 20년 …… 195
국회의장 …… 211
WTO 비준과 의원외교 …… 223
제4부 순응시대(順應時代)
3연임 총비서 …… 243
시푸박하(S? phu B?c H?) …… 261
불타는 용광로(Chi?n d?ch đ?t l?) …… 289
베트남 대나무(Tre Vi?t Nam) …… 307
에필로그 ; ‘문화강국’의 밑그림을 그리다 …… 327
Book in Book : 한국과 베트남
Kor-Vina …… 349
다음은 출판사 서평.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알면
그 나라의 미래 10년이 보인다”
2024년 1월, 한국무역협회는 “2년 연속 우리나라가 중국, 미국에 이어 베트남의 3대 교역국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2023년 말 기준 수출 534억 9,000만 달러, 수입 259억 4,000만 달러로, 베트남과의 무역 수지 흑자는 275억 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이는 1992년 수교 당시 5억 달러에 불과했던 양국 교역 규모가 30년가량을 지나면서 150배 이상 커졌다는 사실을 입증한 수치였다. 교역 품목 또한 수교 초기에는 직물과 의류 등 노동 집약 상품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반도체, 무선통신기기 등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진화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 수도 어느덧 ‘1만 업체 시대’를 앞두고 있다. 또 2023년 10월 재외동포청이 발표한 ‘2023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베트남 전체 교민 수는 18만 명으로, 미국(260만), 중국(210만), 일본(80만), 캐나다(25만)에 이어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베스트 5위’ 국가 중의 하나로 집계됐다.
뿐만 아니라 2023년 상반기 중 베트남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560만 명 중 한국인이 160만 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는 베트남 통계총국의 발표도 있었다. 이는 해를 넘겨서도 이어져 2024년 1월 한 달 동안 베트남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150여만 명 중 한국인이 42만 명가량으로 여전히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 같은 몇몇 통계들만 보더라도 베트남은 이제 우리나라와 확실한 경제공동체이자 문화공동체로 발전한 국가임이 틀림없다.
이처럼,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수교 30년 만에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온 1억 인구의 베트남을 좀 더 깊고 넓게 살피고자 양국 수교 30주년(2022. 12)을 계기로 베트남의 최고 국정 지도자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침 2022년 12월 베트남의 국가주석(응우옌쑤언푹 / Nguy?n Xu?n Ph?c)이 한국을 국빈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런데 그가 돌아가자마자 부하들의 부정부패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가주석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를 국가 최고위직에서 물러나게 한 주체는 베트남공산당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번 책의 주인공인 응우옌푸쫑 공산당 총비서가 있었다.
호찌민 주석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응우옌푸쫑의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 의지
쫑 총비서는 2011년 제13차 당대회를 통해 3연임에 오르며 호찌민 주석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의 지위를 확보했다. 그에 대한 베트남 국민들의 지지가 대단하다. 국가주석까지 단칼에 날릴 만큼 그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의 최대 무기는 청렴성이다. 또는 대학 시절 당에 입당했던 공산주의 이론가로서 팔십 평생을 호찌민 사상으로 살아온 위민정신이 그의 가장 크고 묵직한 정치적 자양분이다.
“혁명을 하고도 국민들이 못 산다면, 그건 혁명을 안 한 것만 못하다.”
쫑 총비서는 호찌민 주석이 생전에 남긴 이 유훈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즉, 그의 반부패 칼바람은 오직 베트남의 경제 강국을 위한 일념 때문이다. 1986년 도이머이(??i M?i) 개혁개방 정책을 결정한 이래 베트남은 ▲1995년 미국과의 수교 및 ASEAN 가입 ▲1998년 APEC 가입 ▲2001년 미국과의 무역협정 발효 ▲2007년 WTO 가입 ▲2008년 일본과의 경제동반자협정(EPA) 공식 서명 ▲2015년 한국과의 FTA 발효 ▲2019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발효 및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서명 ▲2022년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 협정(RCEP) 발효 등, 일련의 개방 정책들을 꾸준히 추진하며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경제 성장의 발판과 동력을 견인해 왔다.
그 과정에서 삼성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베트남 유입이 급증했고, 외투 자본을 마중물로 연평균 7~8%대의 고도성장을 지속해 왔다. 세계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치던 쫑 총비서의 1기, 2기 재임 중인 2013~2019년 동안도 평균 경제성장률 6.5%를 유지했다. 그런데 국제사회로부터 종종 지탄을 받는 이슈가 권력과 유착된 부정부패 문제였다. 이 문제가 때론 외투 정책의 기조를 흔들며 베트남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쫑 총비서의 매서운 사정 칼바람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1944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체의 정치적 후광 없이
오직 자신의 실력과 능력만으로 최고 권력에 오른 언론인 출신 정치인
쫑 총비서는 1944년 하노이시 외곽의 동아인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1963년 한국의 서울대에 해당하는 하노이대학(현 국립하노이인문사회과학대) 문학부에 입학해 저널리스트를 꿈꿨다. 대학시절(1963-1967)은 미국과의 전쟁으로, 프랑스와의 전쟁(1946-1954)에 이어 또다시 베트남 전역이 화염에 휩싸이던 시기였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67년 공산당 입당 ▲1968년 베트남공산당 기관지 <공산잡지> 기자 ▲1981년 소련 유학(~1983) ▲1991년 <공산잡지> 편집장(장관급) ▲1994년 당 중앙위원회 위원 ▲1999년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2000년 하노이시 당비서 ▲2001년 당 중앙이론위원회 위원장(하노이시 당비서 겸임) ▲2002년 초선 국회의원(하노이시 당비서 겸임) ▲2006년 국회의장 ▲2011년 베트남공산당 총비서 ▲2016년 총비서 연임 ▲2018년 국가주석(총비서 겸임) ▲2021년 총비서 3연임 등의 삶을 이어오며 2024년 4월 14일로 팔순(80세 생일)을 맞게 됐다.
이 책은 그의 80세 생일에 맞춰 출간하는 일종의 헌정서다. 2022년 말 그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2024년 4월 14일이 그의 80세 생일이라는 걸 파악하게 돼 이날을 <한국어판>과 <베트남어판>의 동시 출판 일로 잡았는데,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이 있어 우선 한국어판만 출판하게 됐다.(베트남어판은 현재 번역이 완료돼 베트남 당국의 사전 검열 과정에 있다. 총비서의 책이니 검열이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던 출판사 측의 오판이 문제였다. 베트남은 그만큼 ‘보통사람’ 시대로 발전하고 있다. 일반 공무원들의 변화는 더디지만, 공산당 지도부와 엘리트 공무원들의 정서는 청정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갖고자 많이 노력하고 있다. 올바른 방향이다.)
응우옌푸쫑 베트남공산당 총비서의 80년 생애사를 다룬 첫 책
한국작가의 집필로 한국 출판사에서 최초 출간
이 책은 응우옌푸쫑(Nguy?n Ph? Tr?ng) 베트남공산당 총비서의 80년 생애사를 다룬 인물기록집으로, 베트남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출간된 바 없는 쫑 총비서의 첫 전기물을 한국작가의 집필로, 한국 출판사가 처음 출간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의 ‘팔순’ 당일에 맞춰 출간되는 책의 전체 분량은 420쪽으로, 제1부 ‘숙명시대’, 제2부 ‘평필시대’, 제3부 ‘위민시대’, 제4부 ‘순응시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책에는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쫑 총비서의 청소년 시절과 대학 시절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또 하노이대학(현 국립하노이인문사회과학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공산당 입당과 함께 베트남공산당 기관지 <공산잡지> 기자로 일하며 그가 썼던 다수의 글들도 자세히 소개돼 있다.
작가는 주한 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 외교부의 자료 협조로 쫑 총비서의 하노이시 당비서(2000~2006) 시절과 국회의장(2006~2011) 시절의 주요 궤적을 촘촘하게 담아낸 데 이어 2011년 제11차 당대회를 통해 처음 베트남 국가권력 서열 1위에 오르는 과정에 대해서도 다큐 형식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했다.
또 2021년부터 총비서 3연임을 이어가며 ‘불타는 용광로’라는 별칭으로 부정부패 척결에 나서고 있는 쫑 총비서의 최근 행보는 물론 ‘대나무 외교론’으로 불리는 그의 외교적 행보에 대해서도 자세히 엮어내며 2023년 있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하노이 연쇄 정상회담도 흥미진진하게 풀어썼다.
책을 집필한 조철현 작가는 “쫑 총비서와의 대면 인터뷰를 마지막까지 기대했지만 무산된 점이 아쉽다”면서 “그 대신 쫑 총비서의 소련 유학 시절 박사논문과 대학 졸업논문까지 꼼꼼히 찾아 반영하는 한편 그의 대학 동기들과 기자 시절의 동료들이 그에 대해 증언한 여러 자료들을 샅샅이 뒤져 후회 없는 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썼다”고 밝혔다.
조 작가는 “1954년 항불전쟁(1차 인도차이나전쟁)이 끝나고 1960년 항미전쟁(2차 인도차이나전쟁)이 발발되기 전의 ‘모처럼 평화시기’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마친 그의 청소년기 애국심과 호찌민 주석에 대한 청소년 시절의 무한 존경심이 쫑 총비서의 평생 자양분이 됐다”고 평가했다.
또 “항미전쟁 시기 저널리스트를 꿈꾸며 베트남 최고 학부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그의 인문학적 사유와 대학을 마치고 베트남공산당 기관지인 <공산잡지>에서 호찌민 주석의 사상과 이념을 글로 녹여내며 일찍부터 공산주의 이론가로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확고히 한 점 역시 그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는 데 조 작가의 설명이다.
쫑 총비서의 대학 동창들과 학창시절 선생님들,
그리고 언론계 동료들이 기억하는 응우옌푸쫑
책을 통해서는 쫑 총비서의 지난 삶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회고담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초중고 동창인 응오바죽(Ng? B? D?c)과 언론인 출신의 즈엉득꽝(D??ng ??c Qu?ng)이며 문학평론가인 응우옌응옥티엔((Nguy?n Ng?c Thi?n) 등 그와 대학생활을 함께했던 여러 문학부 동기생들, 그리고 쫑 총비서의 초등학교 담임이었던 당티푹(??ng Th? Ph?c)과 고3 담임이었던 레득지앙(L? ??c Gi?ng) 선생 등이 그들이다. 또 총 총비서와 함께 <공산잡지>를 만들었던 니레(Nh? L?) 부편집장과 한동안 쫑 총비서를 취재했던 투홍(Thu H?ng) 하노이TV 기자 등 여러 언론인들의 솔직한 회고담들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다음은 그 중 일부다.
“1956년 나는 교육학 3년 과정을 마치고 마이럼초등학교에 첫 부임을 했다. 거기에서 쫑 학생을 처음 만났다. 그가 초등학교 졸업반이던 4학년 때였다. 1956년 그 당시는 우리 인민의 승리로 프랑스 군대를 완전히 몰아냈던 때라 학생들도 무척 늠름하고 씩씩했다. 그래서 수업 분위기도 늘 활기찼다.
동호이 라이다 마을에서 마이럼 학교까지 오려면 아이들로서는 제법 먼 거리였다. 겨울에는 찬바람을 맞으며 그 먼 거리를 걸어오고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먼 통학 길조차 즐거워하는 모습이라 참 보기 좋았다. 그런데 겨울에도 쫑이 항상 양말도 안 신은 맨발이라 그게 많이 안쓰러웠다. 그러나 쫑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던 기억이다. 늘 의연했고, 공부를 잘했을 뿐만 아니라 협동심도 강했고, 항상 겸손하고, 어른에 대한 예의범절도 뛰어나 모든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학교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문이 없어 바람이 불면 아이들이 교실에서도 먼지를 뒤집어 써야 했고, 책걸상도 성한 게 없어 아이들이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아이들 모두가 공부에 대한 열정이 높았고, 쫑은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4학년 말 시험에서 전체 1등을 해 졸업식 때 인사말을 해야 한다고 쫑에게 얘기했더니 무척 수줍어하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얼굴이 빨개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 51p~53p(초등학교 은사 당티푹)
“쫑 총비서께서는 2009년 국회의장 시절에 아들 결혼을 시켰다. 나는 그때 국회상임위원장을 하고 있던 시절이라 쫑 총비서와 가깝게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국회의장실 여직원이 내게 엽서 한 장을 보내줬는데, 그 내용을 보고 많이 놀랐다. 얼마 전에 아들 결혼식을 치렀다,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만 초대하기로 했던 예식이라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니 이해해 주면 감사하겠다는 엽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결혼식은 가장 성대한 의식이라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축하해 주는 게 관행이었고, 그래서 청첩장에 신랑신부 아버지의 사회적 직함까지 넣어 돌리던 시절이었는데, 국회의장이 가족과 친척끼리만 조용히 아들 결혼식을 치렀다는 소식에 우리 동료 국회의원들도 큰 충격을 받았었다.” … 297p(전 동료 국회의원 응우옌민투옛)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그의 모교인 하노이대학 학보 인터넷판도 큰 도움이 됐다. 마침 지난 2006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하노이대학이 배출한 ‘자랑스런 동문’ 기획기사 중 쫑 총비서(당시는 하노이시 당비서)도 포함돼 있었다. 그 기사가 책을 집필하는 전체 얼개가 됐다면서 책을 쓴 조철현 작가는 “국회의장과 총비서에 오르기 전의 자료라 업적에 치중하기보다 그가 살아온 삶 자체를 자연스럽게 다뤄 참고할 가치가 컸다”고 평가했다. 다음 역시 그 중 일부다.
‘응우옌푸쫑 하노이시 당비서는 1944년 4월 14일, 하노이의 동아인현 동호이면 라이다 마을(L?ng L?i ??, ??ng H?i, ??ng Anh, H? N?i)에서 빈농의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세 살 때인 1947년 그의 가족은 항불전쟁의 격전장이 된 마을을 떠나 타이응우옌(Th?i Nguy?n)으로 피난했다. 1950년 그의 가족은 다시 라이다 마을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마을사람들의 굶주림을 목격했고, 프랑스 군인들이 비엣민(Vi?t Minh) 저항군들을 수색하고, 체포하고, 고문하는 것을 자주 목도했다. 마을은 늘 불안하고 두려웠다. 1952년 그는 마을의 임시학교에서 정규학교 공부를 시작해 초등학교 4학년 과정부터는 5km 가량 떨어진 이웃마을로 통학하며 정규 수업을 계속했다. 그는 매우 똑똑해 매 학년 학급 1등을 차지했다.’ … 41p~42p(2006, 국립하노이대 홈페이지, ‘개교 100주년 기념 기획기사’ 중)
‘1967년 12월, 그는 베트남공산당 당원 대열에 입성하는 영예를 안았다. 당시 학생들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학교는 그를 교직원으로 채용할 계획이었다. 그는 매우 행복해 했다. 그래서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는 베트남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의 이론 및 정치기관지인 <학습잡지>(현 공산잡지)에서 일하도록 배정됐다. 그는 놀라서 걱정과 고민이 많았지만 당원으로서는 조직의 임무를 따라야 했다. <학습잡지>에 들어간 그는 문서보관실에서 각종 자료를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 143p(2006, 국립하노이대 홈페이지, ‘개교 100주년 기념 기획기사’ 중)
권말부록 형식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지난 30년 관계사와 경제교류 이야기도 담아
책에는 출판사 편집부가 엮은 한국과 베트남의 지난 30년 교류사도 자세히 소개돼 있다. ‘권말부록’ 형식으로 소개한 이 글에는 양국 간 정치교류사와 경제교류사를 담아내며 20만 명에 가까운 베트남 교민사회의 형성 과정과 현주소를 풀어 쓰고 있다.
또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활약상과 동반성장의 꽃으로 불리는 민간외교의 사례들도 엮어내며 지난 2022년 양국 수교 30주년을 맞아 ‘하노이한인회’가 발간한 ‘한?베 수교 30년사’ 내용들도 일부 발췌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 글에는 특히 수교 이전에 진출한 기업 주재원들의 당시 회고담이 담겨 있어 30년 전과 오늘날을 비교할 때 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책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 ‘한국교통안전공단’을 중심으로 공기업과 정부산하 기관들이 양국 간 우호 관계를 위해 노력 중인 여러 사례들도 소개하고 있다. 또 류병채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에 진출하고자 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조언하는 내용도 담아냈다.
인터뷰에서 류 변호사는 “응우옌푸쫑 총비서의 평생 과업이라고 할 수 있는 부정부패 척결은 베트남을 보다 예측가능하고 투명한 나라로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법과 제도를 벗어난 사업관행은 점점 사라져 갈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준법 경영에 보다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이다.
【책 속으로】
인쇄 직전 작업을 멈췄다. 그리곤 서문을 고쳐 쓰게 됐다. 2024년 3월 20일 오후, 보반트엉(V? V?n Th??ng) 베트남 국가주석이 갑작스럽게 사임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2023년 1월, 응우옌쑤언푹(Nguy?n Xu?n Ph?c) 국가주석의 사임 때도 그랬다. 2년 연속 국가주석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이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뜨겁다. 두 사례 모두 응우옌푸쫑((Nguy?n Ph? Tr?ng) 총비서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부정부패 척결과 결부된 일이라 관심은 더욱 크다. … 8p(서문)
1967년 봄. 그들의 이 계절은 특별했다. 다이뜨(??i T?)에서 맞는 두 번째 봄이었다. 이제 이 계절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그들 모두는 대학 졸업과 함께 이곳과 작별해야 했다. 그들이 존경했던 시인 쩨란비엔(Ch? Lan Vi?n, 1920~1989)은 ‘내가 살 때는 땅일 뿐이었다. 하지만 떠날 때는 땅이 내 영혼으로 변했다’고 노래했다. 이 시가 그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작별 시간이 다가오자 지난 2년가량 거닐었던 도이천변(Su?i ??i)의 물소리가 애잔한 이별 곡조로 변주됐다. … 17p
1965년 여름, 하노이대학 학생들의 긴박했던 학사 이동은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배경에서 비롯됐다. 박보만 사건 이후 시시각각으로 위협받는 하노이 공습을 피해 그들은 3학년 1학기가 시작되기 전 다급하게 야간열차에 올랐다. 그리곤 80km 가량 떨어진 지금의 타이응우옌성(Th?i Nguy?n)으로 북상한 뒤 찌에우(Qu?n Tri?u) 역에서 내려 35km 가량의 심야 도보로 다이뜨 현의 반토(V?n Th?) 지역에 도착했다. … 22p
라이다에서는 마을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들 모두가 역사교사였고, 윤리교사였다. 건국신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나무의 뿌리와 물의 수원(水源)을 가르치고, 민족의 중요성과 조상의 존엄성을 가르친 ‘참어른들’이었다. 소년 쫑도 그 같은 어른들의 가르침으로부터 일찍이 역사인식에 눈을 떴다. 또 눈으로 직접 목도한 침략자들의 야만성에서 자연스럽게 저항정신과 독립정신이 움텄고, 타이응우옌 피난지에서 어머니가 들려줬던 옛날이야기들에서 민속문학의 재미를 알게 됐다. … 45p
그가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쳤던 1957년 가을부터 1963년 봄까지의 6년은 최근 100년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적어도 ‘베트남민주공화국’이란 체제 속의 북베트남만큼은 그런 시간이 확실했다. 이념적인 갈등이 적어 정치적으로 안정됐고, 무엇보다도 호찌민 주석에 대한 신뢰가 높아 국민들의 결속력 또한 단단했다. 쫑으로서는 시대적인 행운이었다. 쫑뿐만이 아니었다. 그 시절의 모든 학생들은 이전 세대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복 받은 세대였다. … 66p
이들 문학부 8기생들은 2013년 9월 특별한 책 한 권을 출판했다. 《작가, 사유의 삶》(Ng??i V?n-Ngh? v? s?ng)이란 제목의 책에는 ‘하노이대학교 문학부 8기(1963~1967) 50주년 기념’이란 부제가 붙었다. 마침 자신들의 동기생 중 하나인 응우옌푸쫑(Nguy?n Ph? Tr?ng)이 2011년부터 총비서를 맡고 있던 터라 그들의 졸업 50주년 의미는 더욱 컸다. 이 책을 통해 문학부 8기생들은 각자가 갖고 있는 50년 전의 기억들을 소환했다. 쫑 총비서도 평범한 동기생 중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출판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직접 쓴 글을 통해 입학식 날의 설렘과 학부 구성의 면면, 다이뜨 피난 시절 이야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사랑했던 추억담, 창작극을 만들어 순회공연을 다녔던 이야기 등을 담담하게 펼쳐 감동을 줬다. … 81p
‘소련공산당은 왜 붕괴되었는가?(V? sao ??ng C?ng s?n Li?n X? tan r??)’
이날따라 유독 타자기 소리가 둔탁했다. <공산잡지>의 쫑 편집장은 기계마저 자신의 심정을 헤아린다고 생각했다. 벌써 며칠째 심기가 불편했다. 원고 마감에 쫓기다보니 위경련까지 재발했다. 그는 몇 차례의 수정 끝에 칼럼 제목을 명확히 하곤 잠시 타이핑을 중단했다. 사위가 고요했다. 어떻게든 원고를 끝내야 할 마지막 밤이었다.
그는 잠깐 3개월 전의 충격을 떠올렸다. 다이뜨를 떠난 지도 어느덧 24년이 흐른 1991년 12월이었다. 연말을 맞아 제7차 당대회(6.24~27) 등 한 해 동안 있었던 주요 일지들을 정리하던 중 소련 붕괴 소식을 듣게 됐다. 예상됐던 일이지만 결국 소련역사의 시침(時針)은 새해를 며칠 앞둔 1991년 12월 26일에 멈춰 섰다. … 103~104p
그가 시 당비서를 처음 맡은 2000년은 하노이 정도(定都) 990주년의 해였다. 베트남의 왕조 역사는 응오왕조(Ng? Tri?u, 939~944)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딘왕조(?inh tri?u, 966~980)와 레왕조(L? tri?u, 980~1009)를 거쳐 1009년 리왕조(L? tri?u, ~1225) 시대를 맞게 된다. 하노이를 수도로 삼은 것은 이때였다. … 189p
2006년 6월 26일 오후 4시. 국회의장에 선출된 그는 취임사를 통해 ‘쭈옌끼에우’(Truy?n Ki?u) 작품 속의 운문 두 구절을 인용했다. 응우옌주(Nguy?n Du, 1766~1820)의 19세기 작품 ‘쭈옌끼에우’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고전 명작이다. 이는 베트남을 전쟁터로 몰고 갔던 존슨(Lyndon Johnson, 1908~1973) 미 대통령조차 “내가 일찍이 ‘쭈옌끼에우’를 읽었다면 베트남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질 만큼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 211p
2021년 2월 1일, 베트남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날 폐막된 제13차 당대회는 제11차(2011)와 제12차(2016)에 이어 또다시 응우옌푸쫑(Nguy?n Ph? Tr?ng) 시대를 선택했다. 그가 총비서로 세 번째 연임됐다. 3연임 총비서는 통일 베트남(1976)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외신들은 이를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언론들은 이를 보도하며 호찌민 주석 이후 최초라고 논평했고, 일부 언론들은 베트남이 쯔엉찐(Tr??ng Chinh, 1907~1988)과 레주언(L? Du?n, 1907~1986)과 똔득탕(T?n ??c Th?ng, 1888~1980)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도자를 택했다고 분석했다. … 243p
익명을 요구한 베트남의 정치학자도 총성 없는 경제전쟁 시대를 맞아 국익을 극대화하는 한편 사회주의 체제까지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청렴한 지도자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쫑 총비서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단언했다.… 248p
이 시기부터 쫑(Tr?ng) 총비서에게는 ‘시푸박하(S? phu B?c H?)’라는 별칭이 붙기 시작했다. ‘박하 선비’라는 의미로, 베트남에서는 가장 영예롭게 통칭되는 별칭 중의 하나였다. 직역하자면 ‘시푸박하’란 ‘박하 지역’(B?c H? , 오늘날의 하노이와 그 인근 지방성 일대) 출신의 지조 있는 선비들의 통칭이다. 사실 이를 설명하려면 다소 길고, 복잡하다. 하지만 통시적인 의미로 설명하자면 간단하다. 즉, ‘시푸박하’란 학식이 높은 선비로서 진리와 정의를 위해 불의와 단호히 맞설 줄 아는 학자를 일컫는다. … 280p
“견고한 뿌리와 강한 줄기, 유연한 가지의 대나무처럼, 베트남은 앞으로 전통 계승을 전제로 진보적인 세계문화를 선택적으로 흡수하겠다.”
2023년은 쫑 총비서의 이 같은 외교 기조가 한층 빛을 발했던 한 해였다. 9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그리고 12월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을 국빈 방문했다. 이를 두고 국제 외교가에서는 ‘원칙’과 ‘유연성’을 앞세운 ‘대나무 외교론’으로 베트남은 명분과 실리 모두를 챙겼다고 평가했다. … 30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