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우즈베키스탄에 어떻게 뿌리내렸나?

5월 19일 인천공항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는 조철현 작가(왼쪽)와 허선행 학당장

<허선행의 한글아리랑> 출판기념회를 위해 5월 13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일시 귀국한 허선행 타슈켄트1 세종학당장이 6박7일 일정을 마치고 19일 출국했다. 5월 14일 광주 출판기념회, 15일 서울 출판기념회(세종대왕 탄신일 및 스승의 날 기념), 17일 중앙대대학원 문창과 특강, 18일 세종학당재단 및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방문 등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19일 출국한 허선행 학당장과 조철현 작가가 인천국제공항에서 대담을 나눴다. -편집자

허선행 학당장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을 위한 한국 자원 교사들의 출국 소식을 다룬 1992년 1월 17일 자 광주일보 기사. 사진 속 우측 끝이 당시 27세였던 허선행이다.

조철현(이하 조) 수고 많으셨어요. 출국이라기보다는 귀국하는 기분이죠?
허선행(이하 허) 맞습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1992년부터 30년을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다보니 인천공항을 떠날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들어요. 수도 타슈켄트가 고향 같고, 한국이 외지같아요.
왜 아니겠어요? 거기서 현지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이룬 세월만도 25년이나 됐으니 타슈켄트 공기가 훨씬 익숙할 수밖에 없지요.
저의 지난 30년 삶을 책으로 남겨 주신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책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이번 출국 길은 조금 다른 기분이에요. 공항까지 오는 내내 다시 30년을 준비하러 떠나는 첫 출국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 묘했어요.
그동안 꼼꼼하게 많은 자료를 남겨 이번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그 점 감사하고요, 중앙대 특강 때 느낀 거지만 그날 특강에 참석한 학생들도 그렇고,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독자들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한글세계화’와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의 상관관계에 큰 관심을 갖는 거 같아요.
맞습니다. 작가님이 이번 책의 제4장(‘한글, 한류를 빚다’ 편)에서 ‘한글아리랑 4중주’(236~250쪽)라는 글을 정리해 주셨는데, 그 대목이 아마도 이번 책의 주제일 것 같습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진출한 기업들과 현지 한인 사회, 그리고 대사관을 통한 정부의 노력과 저처럼 현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합작품이 한글 세계화와 한류의 동력이 되고 있다, 그런 생각 말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는 대우자동차의 진출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1996년이었는데,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하고 나서 4년 뒤였어요. 처음에는 고려인 학생 위주였는데 대우자동차 공장이 들어서면서 한국어가 꿈(Korean Dream)의 언어로 확장됐어요. 책에서도 자세히 소개해 주셨습니다만,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절대적으로 1차산업에만 의존해야 할 만큼 아주 빈곤했어요. 그런데 카리모프 초대 대통령이 고려인을 매개로 노태우 정부와 대우측에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를 편 결과 중앙아시아 최초로 대우자동차 현지 공장을 유치하게 된 건데, 그 영향으로 한 때는 우즈베키스탄을 ‘대우베키스탄’이라고 부를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습니다. 심지어 1996년 7월 19일 대우자동차 현지공장 준공식이 열리던 날,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정했을 만큼 국민적인 축제 속에서 대우자동차 시대를 열게 됐습니다.
1992년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날 때만 해도 그런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겠죠?
그럼요. 사실 고려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친다는 생각 외엔 그 어떤 것도 모르고 떠난 길이었지요. 전남대 사범대 4학년 때 은사님이 애기해 주신 것도 바로 그 점 하나뿐이었어요. 향후이 나라에 이런 비전이 있을 테니 한번 생각해 보라는 얘기도 일절 없었고, 또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급격히 가까워질 거라는 얘기조차 누구한테도 듣지 못했으니까요.
당연히 그랬을 거라고 봅니다. 1992년 1월 29일 우즈베키스탄과 수교가 이뤄졌고, 3월 8일 우리 허선행 학당장이 도착했고, 대사관은 그로부터도 한참 뒤인 1993년 12월에나 개설됐잖아요? 그러니까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된 20만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는 나라라는 개연성 말고는 그 나라로 들어갈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그렇지요?
맞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현지에 도착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때 카리모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1992. 6. 17)한다는 소식이 들려 깜짝 놀랐지요. 그즈음 한인들도 거의 없는 타슈켄트에서 너무 외로운 나머지 북한음식점인 ‘은하수식당’ 종업원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있을 때였어요.(웃음)

청년 허선행이 현지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모습

우즈베키스탄과 ‘대우베키스탄’
그 당시 자료를 보니까 카리모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돌아온 직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서 자동차공장 설립에 대한 의향서를 제출했더라고요. 그럼 점에서 수교 6개월도 안 돼 한국을 국빈방문한 카리모프 대통령의 적극적인 구애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되더군요.
당시는 인터넷도, 대사관도, 한국인들도 없던 시절이라 저는 그런 소식들을 북한식당에서 들었어요. 그러니 얼마나 황당하고 묘한 상황이었겠어요?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었지요. 그러다가 1994년 6월 한국대통령으로는 최초로 김영삼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국빈방문했는데, 그때는 대사관이 개설돼 그래도 여러 정보를 빨리 접할 수 있게 됐지요. 또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때여서 저와 제가 가르친 제자들이 타슈켄트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과 양국 간 관련 회의에 통역으로 참여하게 돼서 두나라 사이의 변화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었지요.
그랬겠군요. 1990년대 중반은 그런 점에서 한글이 우즈베키스탄의 주류 언어로 발돋움한 아주 중요한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1996년 대우자동차 현지공장 설립, 1997년 아시아나 직항편 개설, 1998년 삼성 현지 가전공장 설립 등굵직한 변화가 많았기 때문이겠지요.
물론입니다. 게다가 1997년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 최초로 실시됐는데, 당시 시험 대상 국가가 일본, 중국,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4개국뿐이었습니다. 그런 걸 미리 알고 그 나라에 들어갔던 것도 아닌데, 공교롭게도 우리 한글이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한국어능력시럼 제1회 대상국가로 우즈베키스탄이 선정되는 바람에 저의 제자들이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지요. 또 1997년 가을에는 훈민정음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는데, 회의가 열린 곳이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였어요. 당시 그 소식을 들은 한국의 선후배들로부터 ‘역시 허선행이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등 많은 칭찬을 들었습니다.(웃음)
그랬겠습니다.(웃음) 그런데 1998년을 지나면서는 한국이 IMF 구제금융에 들어 양국 간의 경제협력 프로그램이 많이 엉키게 됐지요?
맞습니다.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자동차도 GM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가고, 갑을방적도 철수하고, 아무튼 큰 시련기를 맞았는데,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대우자동차 등 많은 기업들이 우즈베키스탄을 떠났을 때 현지에 와 있던 직원들이 그 나라를 떠나지 않고 대거 잔류해 한인사회가 제법 큰 규모로 형성됐다는 점입니다. 1992년만 해도 저를 포함해 선교사 등 10명이 넘지 않았는데, 2000년 한인회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1000명 규모로 발전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무역, 물류회사, 섬유 등 강소기업으로 성장해 있어 제법 탄탄한 한인사회를 형성하게 됐는데, 그들 기업에 취직하려는 우즈베키스탄 청년들이 늘면서 한국어 보급에 대한 프로세스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2011년 경기도의 지원으로 설립된 세종학당 완공식

한글 세계화와 한류 바람
2000년대에는 아무래도 영화와 드라마 등의 한류 바람이 한글 세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렇지요?
1999년 영화 <쉬리>가 들어왔고, 2003년에는 드라마 <겨울연가>가 첫 방송을 탔는데, 그 인기가 아주 대단했습니다. 국영TV를 통해 2003년 2월부터 우즈베키스탄 전역에서 방송됐는데 시청률 60%라는 대기록을 세울 만큼 방송 내내 시청자 반응이 뜨거웠지요. 사실 이 드라마는 가전제품 홍보 마케팅의 일환으로 삼성측이 광고비 대신 드라마 방영권을 제공하는 형식으로 우즈베키스탄에 처음 들어왔어요. 그러니 한류바람을 일으킨 데는 기업의 역할이 아주 컸던 거지요.
그 뒤에도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드라마 한류 바람이 계속됐지요?
<겨울연가> 인기에 힘입어 2005년 한 해는 완전히 한국 드라마 전성시대였다고 보면 됩니다. 연초부터 <이브의 모든 것>과 <천생연분>, <다모> 등이 방송됐고, 그 뒤 <대장금>까지 합류했지요. 이 중 <다모>는 한국 외교부가 ‘한류 확산’을 목적으로 판권을 구입해 CIS 지역의 방송사에 무료로 제공한 경우였는데, 2005년은 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2차대전 전승기념식 참석을 위한 러시아 방문(5월 8~9일)과 우즈베키스탄 국빈 방문(5월 10~12일)이 있던 해였습니다. 그러니 한류 확산을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도 대단했다고 할 만합니다. 어쨌든 그런 영향으로 우즈베키스탄 젊은이들의 한국어 공부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지게 돼 무척 기뻤습니다. 처음에 고려인 학생 20명으로 시작한 한글학교가 그즈음엔 400명까지 늘어나게 됐으니까요.
2010년대로 들어와서는 한글 세계화를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이 보다 구체화된 것 같아요.
맞습니다. 2012년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으로 세종학당재단이 출범했는데, 우리 한글학교도 재단 출범 준비과정에 있던 2011년 가을에 세종학당으로 지정되어서 교사 파견과 한국어 교재 등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그동안 한국의 뜻 있는 몇몇 NGO들과 지자체들의 지원으로 간신히 버텨왔던 한글학교 운영에 숨통이 트였지요. 올해로 세종학당재단이 출범 10년을 맞았는데 지금은 전 세계 80여 국가에 230여곳의 세종학당이 지정돼 그분들 역시 재단으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허 선생은 그동안 8000명 가량의 제자를 배출했어요. 그들이 우리 한글의 해외보급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겠지요?
그 점이 지난 30년 동안의 가장 큰 보람 중 하나입니다. 제가 2007년 외교부가 주관한 해외 한글학교 3500곳 평가에서 1등을 해서 제1회 세계한인의날 국민포장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즈음 한글학교 운영이 너무 어려워 포기할 뻔했지만, 학생들이 제게 희망을 다시 안겨준 겁니다. 제가 가르친 제자들 중 상당수가 한국과 중앙아시아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하고, 한글학교 선생님이 되어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중앙 아시아 각지로 흩어져 또 다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그 점이 아주 뿌듯하고 자부심을 안겨 주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이제 비행기 탑승시간이 가까워 아쉽습니다. 다음 30년을 어떻게 계획하세요?
이제는 우리 학당을 우즈베키스탄 교육부가 인정하는 정규학교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도 좋고, 대학도 좋겠고요.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포부를 가져보라고 격려하면서 돕겠다고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안고 떠납니다. 그래서 이번 출국 길은 귀국 길이 아니고, 또 다른 첫 출국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힘껏 돕겠습니다. 편안한 발걸음 되시기 바라고요, 조만간 타슈켄트에서 뵙겠습니다. 거기서도 대사님과 한인회며, 현지 교육계 인사들 모시고 출판기념회를 멋지게 해보십시다. 마침 올해가 한-우즈벡 수교 30주년의 해니까 우즈베키스탄 인사들도 많이 참석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타슈켄트 오시면 더 많은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허선행 학당장은 2021년 12월 우리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주 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열린 훈장 전달식. (왼쪽부터)허 학당장의 부인 가르쿠샤 안나씨, 허선행 학당장, 김희상 대사, 딸 허 엘리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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