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역대 최고 포수 이만수에게 0.4초란?
[아시아엔=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SK와이번스 전 감독] 마운드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는 18.44m, 이렇게 짧은 거리에서 불꽃같은 빠른 볼과 다양한 구질을 판단하고 타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마운드에서 홈 플레이트까지 거리를 3등분 해서 연습했다. 처음 부분은 마운드에서 시작해 4m까지 리듬과 타이밍을 잡는데 신경 썼다. 두번째 부분은 8m 거리를 두고 구종을 파악하는데 신경 썼다. 변화구인지 직구인지 또는 높은 볼인지 낮은 볼인지 혹은 몸쪽인지 바깥쪽 볼인지 파악하는데 신경을 쓴다.
나머지 6.44m는 타격을 할 것인지 아니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판단하는데 온 신경을 다 쓴다.
타자는 마운드에서 던지는 투수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볼을 판단하는 시간이 고작 0.4초다. 마운드에서 포수까지의 시간이 0.4초라면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의 볼을 판단하는 시간은 거의 0.3초에서 0.4초다. 그 짧은 시간에 타자가 칠 것인지 아니면 기다릴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0.3초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잘 알 것이다. 투수들의 구속이 평균시속 140~150km다.
프로야구 감독생활을 하면서도 그 숨막히는 몇 초 안에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투수를 바꿀 것인지? 대타를 낼 것인지? 무슨 작전을 낼 것인지? 상대 팀에서는 어떤 작전이 나올 것인지 그 짧은 시간에 모든 것들을 머리 속에 다 입력시켜서 결정하고 판단해야 한다.
하루 경기가 끝나면 그날 경기의 모든 걸 복습하는 시간을 가진다. 혹 실수는 없었는지? 작전이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다 파악하고 잠자리에 들어간다. 다음날에는 그날 있을 경기에 대해 철저하게 이미지 트레이닝 한다. 그날 선발투수는 누구인지? 어떤 스타일의 팀인지? 감독은 어떤 작전을 많이 내는지? 타자들의 습성은 어떤지? 기다리는 타자들인지 아니면 팀에 따라 적극성을 뛰는 팀인지? 도루를 많이 하는 팀인지? 아니면 타자들에게 맡기는 팀인지?
특히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은 선발투수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투수들을 잘 파악하면 어느 정도의 패턴을 갖고 경기에 임하는 투수들이 있다. 물론 그날따라 투수들이 자신 있는 구질이 있다. 거기에 따라 대처능력을 갖도록 끊임 없이 이야기하고 전달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을 철저하게 다 파악해서 그날 경기에 임한다. 이렇게 한 게임을 치르고 나면 파김치가 된다.
한번의 잘못된 작전이 다 이긴 경기를 망칠 수도 있고 또는 한번의 멋진 작전으로 다 진 경기를 역전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게 야구다.
0.1초 안에 선택하고 작전해야 하는 것이 감독이나 선수가 할 일인데 그렇게 짧은 순간에 바른 결정을 할 수 있으려면 과연 우리들이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해야 하는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평생 그 분야에서 노력하고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좋은 선택을 하기 어렵다. 순간의 선택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끝없는 노력과 피나는 훈련만이 올바른 결정을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은 성격 탓도 있지만 준비과정이 충실하지 않아서다. 과단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이나 선수들은 타고난 재능이나 감각도 있어야 하지만 그 분야에서 통찰력도 좋아야 한다. 통찰력은 가지고 있는 정보량과 비례한다. 특히 요즈음 같은 시대에는 정보수집과 수집된 정보의 데이터화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다행히 야구분야가 세분화되면서 팀마다 전력분석관이 있어 현장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현장에서 몸으로 뛰는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은 눈을 감고서도 수저로 밥을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숙련된 야구기술을 몸에 장착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짧은 순간들을 좋은 선택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