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감독이 KBO 정운찬 총재와 프로야구 선후배들께
[아시아엔=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라오스야구협회 부회장, SK 와이번스 전 감독] 한 사람의 지도자가 그 조직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지도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고 어렵다. 중국 춘추시대 백락이 천리마가 힘들게 수레를 끄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천리마가 있어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1982년 도저히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당시만 해도 군부가 나라를 장악하던 시절이라 국민들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국민들이 다 좋아하는 종목인 야구를 프로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라고 하면 단연 ‘고교야구’였다. 지방마다 동문들과 선배들의 응원열기로 온 국민이 라디오로 중계를 듣던 시기다. 그렇게 열광하던 고교야구 열기가 그대로 프로야구로 몰리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 프로야구가 탄생하게 되었으니 야구하는 선수나 지도자들은 때 아닌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처음 프로야구가 시작되던 1982년도는 프로야구라기보다는 아마추어를 답습하던 그런 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지도자들이 강압적이고 감독의 말 한마디에 선수가 매장이 되거나 살아남았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미국 영향보다는 일본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경기에서 이기면 된다는 풍토가 지배적이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스포츠라기보다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시대는 변했고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를 안방처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기는 것만이 최고이고, 돈이면 다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남아 있어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안타깝고 애석한지 모르겠다.
프로야구가 탄생하던 80년초에는 일본 영향을 받은 지도자들이나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그라운드에 수많은 돈이 널려 있으니 그것을 줍는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다”며 수 없이 세뇌시켰다. 이때만 해도 스포츠정신은 들어볼 수 없고 오로지 이겨야 되고, 돈이 나의 가치를 정한다는 분위기였다.
현장이 이렇다 보니 자연히 선수들을 관리하는 구단들도 연봉계약 때 인격적으로 선수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구단에서 먼저 선수를 무시하는 말투로 선수들을 장악하려 했다. 젊은 선수들에게 기를 꺾어 놓고 연봉을 후려치기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고분고분하고 구단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협조하거나 말 잘 들으면 그나마 연봉을 성적에 관계 없이 조금 올려줄 때도 있었다.
연봉계약하러 들어갔을 때 구단 사람이 선수들에게 하는 말 중에 가장 자존심을 깎는 말은 이것이었다. “야구하지 않으면 뭘 할래?” 선수들 자존심은 무너져 내렸다. 그러면서 일단 구단은 선수가 지칠 때까지 버틴다. 거기에 일조하는 사람들이 지도자들이었다. 야구가 밥줄이라는 인식을 선수들에게 심어주느라 그런지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선수들에게 했다. 젊은 시절 지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너희들 돈 많이 벌게 해줄 게.”
“내 말만 듣고 잘 따라와라.”
“프로는 돈이다.”
“돈 많이 버는 선수가 최고다.”
인격도, 스포츠정신도 없고, 오로지 돈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돈으로 선수들을 매수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선수들이 지켜야 할 프로의식은 정립되지도 못한 채 21세기에 들어오고 말았다.
과연 우리나라 프로야구 40년이 다가오는데 야구를 통해 국민들에게나 팬들에게 야구선수로서 무엇을 남겨 주었던가? 승부조작, 도박, 약물 등으로 얼룩진 프로야구판을 후배들에게 계속 물려준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선배나 지도자가 젊은 선수들에게 “돈이면 다 된다”고 인식시키면 돈을 벌지 못한 선수들은 다 실패자란 말인가? 반대로 돈을 많이 번 선수들은 그 다음에 무엇을 하란 말인가? 연봉이 높다고 훌륭한 선수인가? 요즈음 팬들의 수준은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경기 내용뿐만 아니라 도덕적 요구사항도 있다. ‘내가 성적이 좋으면 팬들이 많아지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래서 지도자나 선배가 중요하다. 바뀐 세상에서 아직도 초창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 반성하자. 잘못된 점을 바꾸어 나가겠다고 용기를 내야 한다. 변화된 시대상에 맞는 선수를 발굴해 내고 키우는 ‘백락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