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승108패’ 메이저리그 전설 짐 애벗 투수와의 추억
[아시아엔=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전 SK와이번스 감독, 라오스야구협회 부회장] 코로나에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겨우내 웅크렸던 새싹이 파릇파릇 초록색을 띄우며 생명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따뜻하고 화사한 봄처럼 이 또한 다 지나가고 밝은 날이 오리라 믿는다. 건강 잘 챙기고 잘 이겨내 반갑게 만난 날을 기대한다.
오늘 장애인 투수로 메이저리그에 전설을 남긴 짐 애벗을 기억하며 희망을 나누려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양대 리그로 나누어졌다. 내가 활동했던 시카고 화이트 삭스팀은 아메리칸 리그에 속해 있다. 미국 중서부에 위치해 있는 시카고는 동서뿐 아니라 남북 어디로도 교통 요지라 원정경기 때 편리하고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번은 서부쪽에 위치하고 있는 LA 에인절스팀으로 원정경기를 갔다. 메이저리그 7년 동안 생활하면서 매년 미국 전역을 날아다니다 보면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많다. 그 중에 하나가 LA쪽에 위치하고 있는 LA 에인절스팀이다. 야구장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주위 환경과 관중들 응원문화도 재미있다.
LA 에인절스 구장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내려가면 멕시코 국경이 나온다. 이로 인해 야구를 좋아하는 멕시코인들이 자연스럽게 LA 에인절스 구장을 찾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이지만 남미 분위기를 풍기는 구장이기도 하다.
경기 날 언제나 가장 일찍 나오는 사람들은 스탭진이다. LA 로 원정경기 가서도 모든 스탭들이 가장 먼저 LA 에인절스 구장으로 나갔다. 원정도시에 있는 메이저리그 구장 갈 때면 늘 혼자서 구장 구석구석을 구경하곤 했다. 이날도 구장 곳곳을 돌아보고 프런트 사무실도 들러보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이 있다. 자세히 보니 야구를 좋아하는 미국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짐 애벗 투수였다.
짐 애벗은 야구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선수다. 메이저리그 10년 동안 87승108패 방어율 4.25…. 메이저리그에서 이 정도 실력이면 ‘정말 대단한 선수’라고 이야기한다. 정상적인 투수가 이 정도 실력이어도 잘 한다고 하는데 하물며 오른손이 없는 투수가 이 정도라면 정말 대단한 선수인 것이다. 그 투수가 바로 ‘조막손 짐 애벗 투수’다.
오른손이 없는 일반인으로서 그것도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가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짐은 어린 시절부터 단 한번도 자신의 불행에 대해 불평하거나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 대신 본인이 갖고 있는 꿈을 향해 평생을 달려왔다고 한다.
그는 88서울올림픽대회에서 결승전 미국대표로 나와 일본팀을 상대로 당당하게 팀의 에이스로 던져 5대3으로 이겨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투수로서 평생 한번 있을까 하는 노 히트 노런을 양키스팀 시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팀을 상대로 1993년 이루었다. 앞서 1991년 양키스에서 18승 놀라운 성적을 올려 그 해 사이영상 후보에 올라가는 영광을 받기도 했다.
짐 애벗 선수가 장애를 뛰어넘어 성공을 이룬 노력은 당연히 칭찬받아야 하지만 그런 노력을 가능케 한 것은 그의 꿈에 대한 태도인 것 같다.
짐은 미국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있더라도 늘 최고의 영광인 메이저리그에 입성해서 수많은 관중이 보는 가운데 당당하게 마운드에 서서 던지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꿈꾸어왔다. 야구장에 나갈 때마다 없는 오른손 대신 어린 시절부터 지닌 내 꿈을 바라봤다.”
짐 애벗 투수와 반갑게 인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 기억이 새롭다. 짐의 첫 인상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환하게 웃으면서 상대를 편하게 대하는 모습은 나에게 많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악수를 청하는데 스스럼 없이 내 손을 잡으며 반겨주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은 남 하고 비교하는 인생이다. 내 가진 것을 바라보지 않고 내가 못 가진 것을 아쉬워하다가는 결코 꿈을 이룰 수 없다. 지금처럼 현실이 암울할수록 내가 가진 것을 잘 가꾸어 나가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