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의 메시아①] 영국 런던서 작곡, 아일란드 더블린서 초연···24일만에 완성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음악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는 등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음악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과학적인 이유로는 집중력을 항상시키며, 운동 효과가 증가하며, 통증을 완화하며, 침착하게 만들며, 기분을 북돋운다.

필자는 집에서 음악을 즐겨 들으며, 음악회에도 종종 참석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내와 함께 헨델의 ‘메시아’를 감상할 기회가 있어서 행복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여러 교회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공연한다. 연세대교회도 ‘헨델의 메시아를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7시 루스 채플에서 공연했다. 정종훈 담임목사 인사말에 이어 공연이 막을 올려 밤 10시경까지 계속됐다.

음악회 지휘는 김혜옥(전 연세대 교수) 교회성가대 지휘자 겸 상떼 자 듀(Chantez a Dieu) 합창단 음악감독이 했다. 특별출연에는 연세대 음대 출신 소프라노 최혜경, 카운터테너 장정권, 테너 류성수, 바리톤 박주성 등 솔로이스트 4명, 합창은 연세대교회 성가대와 상떼 자 듀 합창단이, 그리고 바흐솔리스텐서울이 협연했다.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헨델. 그의 메시아는 인류의 가장 소중한 음악자산 가운데 하나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은 1685년 독일 할레(Halle)에서 태어나 1759년 영국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헨델은 바흐(Johann Sebasian Bach, 1685-1750)와 더불어 바로크시대의 가장 뛰어난 음악가였다. 오늘날 서양음악의 기초를 만드는데 기여하여 ‘음악의 어머니’로, 그리고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로 일본의 한 출판사가 이름을 붙였다.

바로크시대는 당시 유럽사회가 급격하게 변화된 시점이다. 바로크시대 이전의 음악이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바로크시대는 음악이 발전하는 토대가 변화되었다. 즉 사회경제적인 변화가 음악의 새로운 변화로 이어졌다. 바로크시대는 오페라의 탄생 혹은 발전한 시점인 1580년부터 바흐가 죽은 1750년까지를 일컬으며, 음악적 특징은 장엄하고 웅장한 분위기였다.

헨델과 바흐는 독일에서 같은 해에 태어났다. 두 사람의 음악적 특성을 매우 달라 바흐는 정교하고 차분한 종교음악을 위주로 작곡하였다. 반면 헨델은 화려하고 밝은 분위기의 궁중음악과 무대음악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백내장으로 고생하다가 존 테일러라는 의사에게 받은 수술과 부작용으로 실명 후에 사망했다는 기묘한 공동점을 가지고 있다.

헨델은 9세 때부터 오르간 연주자인 차하우에게 사사하여 작곡의 기초와 오르간을 공부하였다. 그 후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한때 할게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18세 때 함부르크의 오페라극장에 일자리를 얻어 이때부터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20세(1705년)에 오페라 알미라(Almira)를 작곡하여 성공을 거두고 이듬해 오페라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가서 활동했다.

헨델의 오페라는 대부분 이탈리아어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었기에 당대 중산층이나 서민층이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헨델은 오라트리오도 작곡했지만 어디까지나 이탈리아 음악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 창작이었다. 1720년대 영국 음악시장에서는 기존 문화 소비자들의 눈높이보다 훨씬 수준을 대중화한 영어 작품들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 ‘메시아’는 영어로 쓰여진 대중적 형태의 작품이다.

헨델은 오페라 작곡가로서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오페라단 운영 문제로 골치를 썩곤 했으며 결국 오페라 극장은 문을 닫게 되었다. 1741년, 곤경에 빠진 헨델에게 아일랜드 더블린(Dublin)으로부터 ‘자선음악회’ 제안이 들어왔다. 그 제안은 헨델의 운명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위대한 음악작품인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헨델은 더불린의 음악회를 위한 새 작품으로 오페라가 아닌 오라토리오를 선택했다. 오리토리오란 종교적 주제에 의한 극적 형식의 성악 음악극으로, 주인공들이 무대 의상을 입고 연기를 하지 않기에 제작비 부담이 적었다. 오페라 공연으로 파산을 겪은 헨델로서는 오라토리오는 그의 장점을 보여주면서도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헨델은 1741년 8월 22일 영국 런던의 자택에서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작곡에 착수하였다. 헨델의 작곡 속도는 놀라워 메시아 제1부를 6일 만에, 제2부는 9일, 제3부는 3일 만에 완성했다. 관현악 편곡 작업은 2일 만에 끝냈다. 이에 9월 14일에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완벽한 악보로 탄생했다. 연주시간이 2시간에 달하는 대작을 24일 만에 완성한 것이다.

‘메시아’를 완성한 후 헨델은 “신께서 나를 찾아오셨던 것만 같다”고 말했다. 헨델의 ‘메시아’가 초연되던 1742년 4월 13일, 더블린의 뮤직홀은 몰려든 청중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600석의 공연장에 700여명이 끼어 앉아 ‘메시아’를 관람했다고 한다. 더블린의 언론들은 앞 다투어 헨델의 메시아 공연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