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기] 온천을 순례한다고?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자문위원, 오금고 교사] 일본하면 온천, 온천하면 일본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온천을 사랑하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일본일 것이다. 전국에 있는 온천을 다 합하면 3000개나 된다고 하니 온천 없는 지역이 없다고 봐도 된다. 지금도 활화산이 끊임없이 분화하고 크고 작은 지진이 거의 매일 일어나는 나라지만, 그 보상으로 따끈따끈한 온천수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온다.
단 한번도 일본 온천을 다녀가지 않은 외국인은 있어도 한번만 갔다 온 외국인은 없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런 점은 일본인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가족여행, 기념여행 등으로 온천 지역을 찾는 사람이 아주 많다.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먼저 일본사람들이 목욕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아야 할 것 같다. ‘목욕’ 문화는 사실 일본의 토착종교인 ‘신도’의 가르침 중 하나다. 과거 관리들은 조정에 나가기 전이나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반드시 목욕재계를 해야 했다. 거기엔 몸뿐 아니라 마음도 깨끗이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8세기 이후에는 불교경전이 일본에서 유행하게 되는데, 그 중에 <온실경>이라는 경전에 “목욕을 하면 공덕을 쌓을 수 있다. 7가지 병을 물리치고, 7가지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매일 목욕하는 것을 당연시할 정도로 목욕을 좋아한다. 그러니 따끈한 탕이 항상 준비되어 있는 온천은 얼마나 행복한 곳일까? 게다가 온천수는 따뜻하기만 한 게 아니라 다양한 효능도 있다. 부상을 입은 동물들이 온천수에 뛰어든 후 깨끗이 낫다는 얘기처럼 온천욕은 실제로 치료효과가 뛰어나다. 전쟁으로 부상당한 무사들이 온천욕으로 치료했다는 기록도 많다. 또 노화방지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온천욕 후 피부가 매끈매끈해지고 탄력을 되찾는다고 하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온천은 단지 목욕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복합문화공간이다. 목욕 후에는 보통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숙박과 연계된다. 때문에 대부분 온천마을에는 온천수가 솟아나는 곳마다 온천호텔(료칸)이 지어졌다. 옛날에는 공공온천에서만 목욕이 가능했지만 기술발달로 료칸마타 온천수를 끌어올려 독자적인 온천탕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료칸과 온천마을이 함께 발전하게 된 계기다. 군마현 이카호온천의 고구레호텔은 1분에 1000리터 이상의 온천수가 용출하는 원천을 보유한 료칸호텔이다. 이곳에는 대욕장이나 노천온천 등 분위기와 풍경이 색다른 온천탕이 무려 21개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료칸의 이런 온천시설을 우치유(?湯)라고 하며, 소토유(外湯)라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공중목욕탕 같은 것이다.
료칸에 묵지 않고 당일치기로 왔다 가는 사람들이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키노사키라는 온천마을은 이런 소토유가 7군데나 있다. 이들 목욕탕 7곳을 하루에 몇 번이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1200엔(약 1만2000원)에 살 수 있다. 이렇게 온천을 하러 온천탕을 찾아 돌아다니는 걸 온천순례(유메구리湯巡り)라고 한다. 온천탕마다 용출하는 온천수 종류가 다르고 효능도 다르다고 한다. 또 이런 온천마을에서는 길거리에 족욕을 전문으로 하는 족욕탕도 있어 마을을 구경하다가 지치면 따끈한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쉴 수도 있다.
료칸에서는 편안하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도록 ‘유카타’(浴衣)라는 옷을 제공해 준다. 유카타는 료칸 안에서는 물론 길거리를 돌아다닐 때도 입을 수 있다. 대개 평범한 단색이나 줄무늬 유카타를 제공하는데 패션에 민감한 여자 손님들을 위해 색깔 별로 예쁜 유카타를 준비해 놓는 료칸도 있다. 온천마을에 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유카타에 게타(나막신)을 신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편안하게 숙소에서 혼자 온천욕을 하고 싶은 사람은 료칸마다 운영하는 ‘프라이빗 온천’(貸し切り)을 이용할 수도 있다. 여행객 본인이 원하는 시간대에 온천욕탕 한칸을 통째로 빌리는 것이다. 대욕장에 비해 작지만 남의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목욕할 수 있고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편안히 목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따끈하게 온천욕을 마치고 난 저녁, 따로 옷을 챙겨 입고 식사하러 나가는 대신 숙박시설에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이를 가이세키(?石) 요리라고 하는데, 지역특색이 살아 있는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 정갈하게 만든 코스요리로 제공된다.
일본의 식문화가 小食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료칸에서 제공하는 가이세키 요리들을 먹어 보면, 이 사람들이 정말 소식을 하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해 남길 정도다. 최근의 료칸들은 자신들만의 특색 있는 요리로 승부를 거는 곳이 많다. 어떤 료칸에 묵느냐에 따라 음식이 천차만별이다.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를 맛보고 싶으면 숙박 예약 때 미리 조식과 석식이 포함되어 있는 플랜으로 예약해야 한다. 싼 곳은 20만~30만원으로도 충분하지만 비싼 곳은 100만~200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전통 료칸들은 시설이 대부분 다타미방으로 되어 있지만 최근 지어진 곳 중에는 침대 형식의 룸이 있는 곳도 많다. 다타미 방의 경우 저녁식사 시간에 료칸 직원들이 방에 들어와서 이불을 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몸을 개운하게 씻고, 배불리 맛나게 먹고 방에 돌아와 바닥에 깔린 깨끗하고 도톰한 이불을 보면 그대로 누워 꿈나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간혹 고급료칸들은 연회장이 아닌 방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저녁이나 아침식사를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회장에서 먹는 경우 미리 식사시간을 알려주면 그 시간에 맞춰 모든 요리가 따끈하게 나올 수 있도록 해준다. 재미있는 것은 테이블 위에 이름표까지 놓여 있어서 식사하러 왔을 때 어디에 앉을까 두리번거리는 수고 하나라도 덜어주려는 일본인들의 섬세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