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기] 미니스커트 교복도 허용···’갸루’ 스타일 유행시키기도
[아시아엔=심형철, 이선우, 장은지, 김미정, 한윤경 교사] ‘일본의 학생’ 하면 어떤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 아마 교복을 입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 게임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교복을 입고 있다.
특히 여학생들은 세일러복에 짧은 치마, 남학생들은 차이니스 칼라 제복을 입은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의 교복과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의 일본 교복,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본어로 교복은 세후쿠(制服)라고 한다. 일본의 교복은 7세기 중반 쇼죠(庠序)라고 불리는 교육기관에 다니는 학생들이 입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역사가 길다. 메이지시대에 와서 신분제가 폐지되고 학교제도가 재정비되면서 초등학교(일본에서는 소학교라고 불러), 중학교, 대학교가 생기고, 1879년에 목을 여미는 칼라(일명 차이니스 칼라) 스타일의 교복이 처음 도입되었다. 현재 일본에선 이런 스타일을 가쿠란(?ラン)이라고 부른다. 이런 남학생 교복은 육군의 군복을 모델로 삼아서 만들었다.
그럼 여학생 교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일러복이다.사실 이 세일러복은 1857년에 영국 해군병사들이 입던 군복인데 1900년대에 영국 초등학생 교복으로 자리잡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당시에 외국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일본은 학생들의 교복을 서양식으로 바꾸게 되는데, 1920년 교토의 헤이안여학원(平安女?院)에서 좁은 모양의 세일러 칼라를 단 원피스 형식의 교복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리고 1921년에 후쿠오카여학원(福岡女?院)에서 블라우스와 치마로 나뉘어진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세일러 교복을 도입했다. 이때가 일본에 서양식 교복이 처음으로 정착하게 된 때라고 볼 수 있다. 왜 세일러복이 채택되었냐는 데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그중 “남학생 교복이 육군이니 여학생 교복은 해군이 좋겠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다. 그럼 이 옛날 교복은 지금도 여전히 일본학생들이 많이 입는 스타일일까?
현재 대다수 교복은 차이니스 칼라나 세일러복이 아닌 정장 스타일의 블레이저 재킷이다. 역사가 오래된 학교들은 교복도 전통이라 여겨 잘 바꾸지 않아서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현재 일본의 교복 디자인은 사실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투 버튼이나 더블 버튼 재킷에 정장하의 스타일이다. 그런데 상의는 한국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하의는 좀 다르다.
남학생 바지는 한국보다 대부분 통이 더 넓고, 여학생 치마는 H라인이 아니라 체크무늬 주름치마가 대부분이다. 일본은 습도도 높고 더운 지역이 많아서 통풍은 교복 디자인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이었을 거다.
또 재킷 안에는 와이셔츠나 블라우스, 조끼나 카디건을 입는데, 한국은 딱 맞게 입는 편이라면 일본 학생들은 상의를 여유 있게 입는다. 한국 남학생들은 셔츠를 바지 안에 넣어 입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일본 남학생들은 대부분 회사원처럼 셔츠를 바지 안에 넣어 입는다.
또 다른 특이점은 여학생들은 양말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신발까지도 학교에서 지정한 것만 신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양말의 경우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흰색이나 검은색 니 삭스를 신어야 하고, 신발은 검은 구두나 깔끔한 흰 운동화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신기한 건 교복을 맞출 때 학교 가방도 함께사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한국은 백팩이 중고등학생의 기본 가방이라면 일본은 일반적으로 한쪽 어깨에 메는 숄더백을 많이 사용한다. 학교마다 색깔, 소재 등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직사각형 형태의 숄더백을 지정하고 있다.
획일적인 스타일의 가방이지만 손잡이나 지퍼에 찰랑거리는 액세서리나 인형을 달아서 각자의 개성을 뽐낸다. 일본학교가 교복, 양말, 신발까지 지정하는 것만 보면 꽤나 엄격해 보이지만, 재미있게도 바지나 치마 길이에는 제한이 없다. 또 머리 모양도 규제하지 않고 화장을 해도 상관없다.
이처럼 외모에 관련된 사항은 강제하지 않아서 학생들이 교복을 입더라도 본인만의 개성을 맘껏 드러낼 수 있다. 복장검사를 하긴 하지만 주의를 주고 계도를 하는 정도다. 신기한 건 규제나 처벌이 없는데도 짙은 화장을 하거나 머리카락을 염색한 고등학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어느 시절이나 소위 잘 나가는 학생들은 획일화된 교복을 입더라도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포인트를 주는 등 본인들의 개성을 확고히 드러냈을 터다. 1970~80년대에 츱빠리(つっぱり)라고 불리던 폭주족 남학생들은 가쿠란 교복 하의 통을 굉장히 넓게 입거나 상의를 연미복처럼 길게 혹은 아주 짧게 입고, 앞머리를 둥글고 풍성하게 스프레이로 고정하는 리젠트라는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일본 만화에서 불량 학생으로 그려지는 캐릭터들은 종종 이런 헤어스타일로 등장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 시기의 불량 여학생들은 치마 길이가 땅에 닿을 만큼 길었다. 긴 치마를 입은 불량학생이라니 신선하지 않나? 왠지 짧은 치마를 입어야 불량할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의 짧은 교복 치마는 1990년대에는 코갸루(コギャル)라 불리던 여학생 스타일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루즈 삭스에 엄청나게 짧은 교복 치마, 그을린 피부에 노란 머리, 그리고 짙은 화장을 하고 다녔다. 외국인들이 보면 저게 고등학생이냐고 했을 정도로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그런 유행도 지나고 ‘교복은 멋있고 예쁘게 입는 것’이라는 추세로 바뀌었다. 여학생들은 교복치마가 긴 것보다 짧은 것이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여겨서 원래 무릎 길이 정도인 교복 치마를 살짝 접어 입거나 줄여 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은 80년대 이후로 계속해서 미니 스커트가 유행이라 짧은 치마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어릴 때부터 TV에 등장하는 아이돌은 물론,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서 짧은 치마가 더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거다. 교복이든 사복이든 치마는 치마다.
또 일본 학생들은 친구 사이에서 느끼는 동질감, 자기들끼리의 문화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이 짧은 치마를 입는데 혼자 긴 치마를 입으면 분명 소외감을 느낄 거다. 그래서 일본은 특이하게도 지역별로 교복치마의 길이가 다르다. 재미있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일본사람들조차도 이 지역을 방문한 후 여고생 치마가 너무 짧아서 놀랐다는 SNS 게시글을 많이 올릴 정도다. 그런데 신기한 건 최근 들어 긴 치마가 유행하는 지역이 늘기 시작했다. 특히 오사카(大阪府)에서는 오히려 학생들 치마 길이가 무릎 아래 15cm까지 내려올 정도라고 하니 지역별로 교복 패션도 참 각양각색이다.
최근에는 한국도 중고등학생의 옷차림이나 화장에 대해 많이 관대해져서 짧은 치마를 입은 학생이나 짙은 화장을 한 친구들을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그런 건 아니다.
실제로 일본에 가보면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학생보다 무릎을 덮는 긴 치마를 입은 학생을 더 많이 볼 수도 있다. 사실 ‘일본 여학생들 치마는 짧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우리의 편견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치마 길이가 아니라 일본의 교복 문화가 한국과 다르다는 점을 잘 이해하는 게 아닐까? <출처=지금은 일본을 읽을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