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①] 텃밭농사, 잉카의 ‘마추픽추’에 주목하는 이유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농자지천하지대본(農者之天下之大本)’이란 말은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예나 지금이나 농업은 인간 생활의 기반이다. 인류는 약 1만년 전부터 농사를 지어왔으므로 농사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밥을 생산하는 사람이 바로 농민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이농(離農) 인구가 급격히 증가해 농촌은 일손이 부족한 상태에 빠졌다.
인류가 수렵(狩獵)과 채취(採取) 생활을 포기하고 충분한 식량을 제공해줄 만큼 생산력이 높지 않은 농업생활로 전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인류가 채집(採集)의 개념이 아닌 경작(耕作)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한 자리에서 필요한 먹거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인류는 한 곳에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고, 도시를 만들었다. 마을의 형성, 토지 소유의 개념, 도시의 발달이 모두 농업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농업은 인류의 주도적인 산업이 되었다. 약 2200년 전 중국 진(秦)나라 때의 사론서(史論書)인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백성이 농업에 힘쓰면 순박해지고, 그러면 그 힘을 전쟁에 이용하기 쉽다. 농민의 힘을 이용하기 쉬우면 국경이 평안해지고 군주(君主)의 지위가 안전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양의 로마에서도 농업은 국가의 힘을 유지하는 중추산업이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3% 이하를 감당하는 산업이 됐다.
도시농업(都市農業, urban agriculture)의 사전적 의미는 도시+농업 합성어(合成語)로서 도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농업으로 도시 내부에 있는 소규모 농지에서 경영하는 농업을 말한다. 도시농업은 도시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여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기르는 과정과 생산물을 활용하은 농업활동이다. 또한 농업이 갖는 토양·생물다양성 보전, 기후·대기 순화, 경관보전, 정서함양, 여가선용, 문화, 교육, 복지 등 다원적 가치를 도시에서 실현하여 도시와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창출하는 활동이다.
유럽에는 도시구획 안에 시민농원(市民農園)이 있으며, 대부분 공유지에 설치되어 시민에 의한 안정적인 이용이 확보되어 있다. 일본은 1974년에 생산녹지법이 제정되어 시가지에 있는 농지(생산녹지)를 보전하기 위한 세제상의 우대조치가 있다. 개발도상국에도 도시 내부에 소규모 농지가 존재하며 식량 시스템의 보완, 빈곤의 완화, 유기질 폐기물의 재활용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제군주로 꼽히는 루이 14세(Louis XIV, 재위기간: 1643-1715년)가 총력을 기울인 대궁전인 베르사유(Versailles)궁전에 왕비(王妃)의 텃밭과 오두막이 있었다. 서울의 경우, 조선시대 도시농업의 활발한 전개는 양잠(養蠶)을 하던 잠실과 잠원동, 궁중에 채소를 공급하는 내농포(內農圃)가 있던 권농동, 왕실의 고추재배용 고초전(苦草田)이 있던 연희동 등을 꼽을 수 있다.
오늘날 많은 도시농업 전문가들은 잉카의 마추픽추에 주목하고 있다. 잉카(Inca)는 15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 남아메리카의 중앙 안데스 지방(페루·볼리비아)을 지배한 고대제국이다. 마추픽추(Machu Picchu)는 해발 2430m에 자리하고 있으며, 잉카 제국의 절정기에 건설되었다. 1911년 미국 예일대학에서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가르치던 고고학자 히람 빙엄이 안데스 산맥을 탐험하다 고대 유적지 마추픽추를 발견했다.
마추픽추는 크게 몇 개의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즉, 인구가 밀집해 있는 주거지역, 생필품을 만들어내는 공장지역, 전체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농업지역, 그리고 사후의 세계를 안치하는 신성한 지역 등이다. 특히 주거지역과 농업지역이 같은 면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산악(山岳)지형인 탓으로 농경지는 계단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 문제는 계획적인 수로(水路)를 설계하여 해결했다.
계단식 농경지는 높이의 차이를 이용하여 위쪽 계단 농경지에는 낮은 기온에 적합한 고랭지(高冷地) 작물을 심고, 아래로 내려갈 수록 따뜻한 기온에서 잘 자라는 곡물을 재배했다. 또한 단순히 자급자족에만 그쳤던 것이 아니라 잉여 농산물은 시장을 열어 유통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등 마추픽추 만으로도 완벽한 자생력을 갖추도록 했다.
도시에서 농업이 분리된 것은 산업화 이후의 현상인데, 최근에 다시 농업이 도시로 들어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도시의 삭막한 콘크리트 속 ‘텃밭농사’의 매력과 가치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예를 들면, 식물이 미세먼지의 43%를 제거하며 특히 건강에 치명적인 초미세먼지의 75%를 차지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질소산화물의 2차 생성물을 제거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