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처럼 ‘상갓집 개’ 자처할 여야 정치인 없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인생에서 가장 나쁠 때가 가장 좋은 때’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 역시 맨 손으로 출발해 흥하고 망하기를 수 없이 반복한 것 같다. 잘 나갈 때는 교만에 빠져 함부로 하다가 망했고, 망하고 나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 다시 분발하여 그래도 이 정도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가장 나쁠 때가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싶다.
<맹자>(孟子)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리게 하여 궁핍하게 만들면서,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지럽게 하나니,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기국(器局)과 역량(力量)을 키워 주기 위함이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범부 중생의 잡철을 용광로에 집어넣고 쇳물로 녹여 망치로 두드리고 두드려 이윽고 불보살이라는 정금미옥(精金美玉)을 단련해 냄과 같다.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BC 145~86)은 궁형(宮刑)을 받은 불우한 인물이다. 궁형이란 거세(去勢)를 당하는 형벌을 가리킨다.
당시 황제였던 무제(武帝)로부터 미움을 받아 이같은 형벌을 당했다. 일세를 풍미(風靡)하던 미남 사마천은 치욕을 견딜 길이 없어 자결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언이었던 과거 역사를 총정리해야 한다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짓밟는 치욕을 딛고 절치부심(切齒腐心)한 끝에 사상 초유의 거작을 완성했다.
사마천에게 얼마나 삶의 회한(悔恨)이 많았을까? 그는 이 처절한 한(恨)을 창조적으로 승화시켜 후세 인류에 엄청난 공덕을 쌓았다. 그 <사기>에 인류의 성현이라는 공자(孔子)를 ‘상갓집의 개’(喪家之狗)라고 쓴 표현이 나온다.
공자가 40대 후반부터 주역(周易)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공자는 어느 날 자신의 남은 인생을 점치는 괘(掛)를 뽑아보았는데, ‘화산려’(火山旅) 괘가 나왔다. ‘여(旅)’는 나그네 신세를 뜻한다. 세상사의 이치에 통달한 성인으로 여겨지는 공자도 인생 후반부는 나그네를 뛰어넘어 ‘상갓집의 개’로 살았다.
50대 중반부터 60대 후반까지 14년 동안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낭인(浪人)으로 살았던 것이 공자 팔자였다. 이 기간 동안 죽을 고비를 네번이나 넘겨야 했고, 그날그날 끼닛거리와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였으며, 강도에게 포위되어 열흘 이상 굶주리는 상황도 있었다.
이 ‘상갓집의 개’라는 표현이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 사마천의 이 대목이 없었으면 우리는 공자의 파란만장을 제대로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상갓집의 개는 밥을 줄 주인이 없는 개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음식 찌꺼기를 형편 되는 대로 주워 먹어야 하는 처량한 팔자다.
주인이 없다는 것을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직장도 떨어지고, 돈도 떨어지고,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는 노숙자 상황이다. 공자는 되는 일도 없고, 운도 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던 서글픈 팔자였다.
우리는 통상 성인(聖人) 공자만 알지, ‘상갓집의 개’ 같은 생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치욕적인 궁형을 당하고도 처절하게 살아야만 했던 사마천은 공자의 떠돌이 인생에서 깊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우리는 ‘공자도 이렇게 고생하며 살았는데, 여기에 비하면 내 처지는 낫구나!’ 하는 위안을 얻는다.
그런데 어찌 사마천은 ‘상갓집의 개’라는 표현을 집어넣었을까? 아마 사마천이 굳이 이 말을 적어 넣은 것은 삶이라는 것이 성인에게도 쉽지 않았다는 점을 후세에 전해주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공자뿐만이 아니다.
옛날 주(周) 문왕(文王)은 감옥에 갇혔을 때 <주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굴원(屈原)은 초나라에서 추방되었을 때 <이소경>(離騷經)을 만들었다. 또한 좌구명(左丘明)은 장님이 되고부터 <국어>(國語)를 만들었고, 손자(孫子)는 다리를 끊기는 형을 받고서 <손자병법>을 만들었다.
사마천은 말한다. “천재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역사적 인물들도 감옥생활을 하고, 추방당하며, 장님이 되고, 다리를 절단당하는 불운과 불행을 피할 수 없었다.”
송죽(松竹)의 가치는 상설(霜雪)이 드러내 준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난은 순역경계(順逆境界)가 드러내 준다.
필자 역시 가장 고단했을 때,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했다. 그로부터 사마천의 사명감처럼 죽기 살기로 신앙과 수행에 매달려 오늘에 이르렀다. 위대한 인물들은 감옥에 갔을 때 큰일을 구상하고, 고난에 처했을 때 용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