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최후 승리자는···한신, 유방 아니면 장량?

중국의 명작 소설 <초한지(楚漢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재색명리(財色名利), 그것 다 허망한 것이다. <초한지>(楚漢誌)에 보면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천자(天子)의 위에 오르고 망탕산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지들은 재색명리를 탐했다가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하고 만다.

‘토사구팽’이란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이 삶아 먹는다는 뜻이다.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가 다할 때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교활한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狡兎死走狗烹)고 하였다.

한신(韓信)은 뛰어난 전략들을 구사하여 유방을 천하의 패자로 군림시키는 데 성공한다. 위(魏), 조(趙), 제(齊)나라는 왕과 장수들 모두 한신을 과소평가한 탓에 멸망의 길을 걷고 말았다. 제나라를 멸망시킨 한신은 스스로 제나라의 가왕(假王)에 올랐다. 유방은 허락도 없이 제나라 왕에 오른 한신이 괘씸했지만, 형양에서 항우와 대치중인 긴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유방은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의 조언에 따라 한신을 제나라 왕에 책봉했고, 초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다.

기원전 202년 마침내 유방은 해하에서 항우를 포위했다. 한신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항우를 공격했고, 좌우 앞뒤로 항우의 10만 대군을 완전히 포위했다. 곧 항우의 진영에 군량미가 떨어지고 군의 사기가 꺾이기 시작했다. 한신은 자기 군대에게 ‘초나라 노래’(楚歌)를 가르쳐 부르게 한다.

‘초가’를 들은 항우의 군사들은 고향 생각에 눈물을 흘리다 속속 진영을 이탈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항우는 결국 대패하여 오강(烏江)까지 후퇴한 후 그곳에서 자결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이때의 일을 일컫는 고사성어로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라는 의미다. 사방이 빈틈없이 적에게 포위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로써 유방은 천하의 주인공이 된다. 유방은 한나라 고조(高祖)로 즉위 후 공신들을 각지의 왕으로 책봉한다. 그러나 그는 막강한 군사력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한신을 경계했다. 한신은 제나라 왕에서 초나라 왕으로 임명된다. 기원전 201년 초나라 왕으로 책봉되어 임지로 떠난 지 9개월 만에 한신은 반란죄로 체포되고 만다.

체포된 한신은 “날쌘 토끼를 사로잡으면 사냥개는 잡아먹히고, 높이 나는 새를 잡으면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 적국을 멸하고 나면 충신은 죽임당한다더니, 천하가 평정되니 내가 잡혀 죽게 되는구나!”라며 울분을 토했다.

한신은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군사(軍師) 괴통(?通)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한신의 가솔들은 삼족(三族)을 멸하는 형을 받고 말았다.

오직 자방(子房) 장량만이 권력에서 떠나 신선(神仙)이 되었다. 중국 최고의 전략가 장량은 공을 이룬 뒤 권력의 중심에서 물러남으로써 자신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의 사당(祠堂)에 남아 있는 ‘지지’(知止, 멈출 때를 안다)와 ‘성공불거’(成功不居, 성공한 곳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같은 글자는 장량의 이런 정신과 인품, 법력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장량처럼 토사구팽을 당하지 않고 자신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역사에 남긴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와 함께 활약했던 한신과 팽월은 죽임을 당했고, 경포는 반역을 일으켰다가 유방에게 진압당했다. 이들과 달리 장량은 멈출 줄 알고 성공한 후에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항상 과업에 충실했지만 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에 천수(天壽)를 다할 수 있었다.

그럼 <초한지> 최후 승리자는 누구일까? 유방도 아니고 한신도 아니며 소하, 번쾌도 아니다. 오직 재색명리에 초연한 장량 한 사람뿐이었다. 재색명리에 초연할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수행 정진하는 것이다. 수행이란 재산·명예·성욕·이욕 등 인간 욕망에서 해탈하여 절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삼학(三學)을 꾸준히 연마하여 우주의 진리를 깨치고 마침내 열반(涅槃)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둘째, 멈출 줄 아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바를 정(正) 자는 한번 멈춘다는 뜻이다. 즉 ‘一+止=正’이다. 화가 치밀어도 한번 멈추는 것이고, 너무 좋은 것을 혼자 독차지 하지 않는 것이며, 잘 나갈 때도 한번 멈추어 회광반조(廻光返照)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셋째,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날 줄 아는 것이다. 공성신퇴(功成身退)라 하였다.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정상에 올랐으나 내려오지 않아 얼어 죽었다. 이승만도 박정희도 종신대통령을 꿈꾸다가 비명횡사(非命橫死)를 면치 못했다.

넷째, 때로는 재주를 감출 줄 알아야 한다. 사향노루는 죽을 때 사향주머니 때문에 죽는다고 여겨 제 배꼽을 물어뜯는다고 한다. 하지만 사냥꾼에게 잡히고 나서 배꼽을 물어뜯을 때는 이미 늦는다. 재주 ‘재’(才)자는 삐침이 안쪽으로 향해 있다. 재주는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감추는 것이 화를 면한다는 뜻이다.

다섯째, 중도행(中道行)을 하는 것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사상·이념·정치에서 중도를 지키지 않으면 자칫 파멸을 불러올 수 있다. 중도(中道)·중용(中庸)·중화(中和)가 구세(救世)의 요법(要法)이다.

최소한 이 다섯 가지만 힘써도 재색명리를 떠나 장자방(張子房) 같이 토사구팽을 벗고 천수 누리며 신선도 될 수 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