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역사속 오늘] 요양원 들어가 ‘유유자적’ 만년 보내도 싶건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유유자적(悠悠自適)이라는 말은 속세(俗世)를 떠나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산다는 뜻이다. 요즘 우리 부부는 정든 집을 떠나 공기 좋고, 경치 좋으며, 한적한 요양원으로 들어가 유유자적하며 살면 어떨까 생각을 하고 있다. 필자도 필자지만 아내 ‘정타원(正陀圓) 사랑초’가 너무 많이 힘들어하는 것이 절대적인 이유다.
아직은 연구·답사·비교한 다음의 얘기지만, 정말 속세를 떠나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옛날에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아마 이런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죽림칠현은 위(魏)·진(晉)의 정권교체기에 부패한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들을 말한다.
명(明)나라 홍자성(洪自誠 : 1573~1619)의 <채근담>(菜根談)에서 유유자적하는 시가 나오는 대목이 있다.
그러므로 술을 권하지 않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바둑은 승패를 겨루지 않는 것으로 참된 승부를 삼으며,
구멍 없는 피리와 줄 없는 거문고로써
어떤 음악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을 높이 여기고,
만남은 뒷날을 기약하는 것을 참됨으로 삼으며,
손님은 마중과 배웅을 하지 않는 것이 서로 스스럼없다고 여긴다.
만약 한번 겉치레에 사로잡히고 형식에 묶인다면
곧 속세의 고해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가히 유유자적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세종 때의 문신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 1360~1438)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를 읽어보면 진정한 유유자적하는 선비의 멋을 엿볼 수 있다.
강호(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흥(興)이 절로 난다
탁료계변(濁?溪邊)에 금린어(錦鱗魚) 안주로다
이 몸이 한가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춘사(春詞), 강호에서 느끼는 봄의 흥취)
강호(江湖)에 여름이 드니 초당(草堂)에 일이 없다
유신(有信)한 강파(江波)는 보내느니 바람이로다
이 몸이 서늘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하사(夏詞), 여름의 한가한 초당 생활)
강호(江湖)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소정(小艇)에 그물 실어 흘리띄워 던져두고
이 몸이 소일(消日)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추사(秋詞), 고기잡이를 하며 즐기는 생활)
강호(江湖)에 겨울이 드니 눈 깊이 자히 남다
삿갓 비껴쓰고 누역으로 옷을 삼아
이 몸이 춥지 아니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동사(冬詞), 눈 쌓인 가운데 안분지족하는 생활)
그리고 명종 때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 1467∼1555)의 연시조(聯時調) ‘어부사(漁父詞)’가 있다.
▶제1장
이런 생활 속에 근심·걱정할 것 없으니 어부의 생활이로다.
한 척의 조그마한 배를 끝없이 넓은 바다 위에 띄워 놓고
인간 세상의 일을 다 잊었으니 세월 가는 줄을 모르도다.
▶제2장
아래로 굽어보니 천 길이나 되는 푸른 물, 돌아보니 겹겹이 쌓인 푸른 산
열 길이나 되는 속세의 어수선한 세상사 얼마나 가리워졌는가
강호에 밝은 달이 밝게 비치니 더욱 무심하구나.
▶제3장
연잎에 밥을 싸고 버들가지에 잡은 물고기를 꿰어서,
갈대와 억새풀이 우거진 곳에 배를 대어 묶어 두니,
이런 자연의 참된 재미를 어느 분이 아실까.
▶제4장
산봉우리에 한가로운 구름이 피어나고 물 위에는 갈매기가 날고 있네.
아무런 사심 없이 다정한 것은 이 두 가지뿐이로다.
한평생의 시름 잊어버리고 너희들과 더불어 지내리라.
▶제5장
서울을 돌아보니 궁궐이 천 리로구나.
고깃배에 누워 있은들 나랏일 잊은 적이 있으랴.
두어라, 나의 걱정할 일이로다. 세상을 건져낼 현인이 없겠느냐?
‘강호사시가’와 ‘어부사’는 모두 안분지족의 삶과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어쨌든 노년은 생각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길이 아닐까?
삶의 여정(旅程) 중에서 마음 비우며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때가 바로 지금일 것이다. 모든 일에서 떠나 삶의 여백을 유유자적할 수 있을 것 같아 요양원 입원(入院)을 생각해 보고 있으나, 그것도 여러 제약이 따라 실행이 될 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