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섹스 ①] 신대륙 이주 유럽인이 빠져든 것들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서양인이 아메리카대륙에 발을 들여놓기 전 음주와 성교, 과다(過多)와 過少는 없었다. 인디언들은 균형을 이루며 적정선에서의 생활을 살았다.

유럽인은 그렇지 않았다. 이역에서의 이민생활은 고단했다. 아편은 중국에 팔 양도 부족했다. 술이 최대의 낙이었다.

어디 가나 남자가 대세로 대도시에서도 여자가 적었다. 개척지나 변방은 더욱 귀했다.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남정네들을 위해 순회 매춘부대가 수요를 충족해줬다. 여관은 그 자체가 매음굴.

도덕관념의 극한대립

청교도(퓨리턴)가 건설한 땅엔 절제가 바탕에 깔려있다.

술. 이쪽에서는 입에 대지 말라 하고 저쪽에서는 그것마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한다. 섹스를 놓고 죄악이다 아니다 하며 다툼이 심했다.

술은 결국 금주파가 이겼다.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못 마시게 만들었다. 헌법을 수정해 금주법을 만들었다. 입맛과 재밋거리가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 안 마시고는 살기 힘들었다.

술 좀 가진 거 없소? 몰래 구해 홀짝 홀짝 마셨다. 밀주 성행. 누가 만드나? 선남선녀는 겁 많아서 못한다. 범죄자들이 뛰어 들었다. 마피아와 갱스터가 주류업계를 장악했다. 이때의 밀주 조직이 나중에 마약밀매 조직이 되었다.

새로운 계급의 등장

1837년부터 1901년까지 64년간 재위한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전환됐다. 도시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빈부격차는 날로 심화됐다. 공장근로자는 겨우 입에 풀칠했다. 그나마 일자리가 없으면 굶어야 했다. 빈민이 급증하고 슬럼이 형성됐다.

이때 등장한 신흥 중산계급이 바로 배불리 먹고 돈 모은 계층이다. 자신들을 하층 무산계급 노동자나 빈민층과 구분하려고 했다. 우월성을 과시하고 이를 보증받으려 했다.

여기에서 빅토리아니즘(Victorianism, 빅토리아풍)의 가치관과 풍토가 정착됐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도덕적 이상주의다. 성의 절제와 금욕을 내세웠다.

성관계는 억제된 부부관계 요구

상류층은 특권계급으로서의 독자문화가 있었다. 하류층은 먹고살기도 어려웠다. 예의나 염치 따윈 필요 없었다.

중산층은 그야말로 돈 벌어 갑작스럽게 부상했다. 가문·혈통·문화가 없었다. 그들만을 상징하고 품격을 유지할 장치가 필요했다. 상놈과 어울릴 수야 없지 않는가.

그게 빅토리아니즘이었다. 이타정신과 더불어 정신면의 애정을 중시했다. 육욕을 억눌렀다. 육체의 욕망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가두어 컨트롤했다.

결혼관계가 아닌 성관계는 부정됐다. 법적 부부만 성교해야 한다. 성관계는 오직 부부 간의 일이었다. 타인 앞에서 성을 언급하는 행위는 수치스러운 것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마크 트웨인, 파리에 대해 이렇게 쓰다

미국 소설가로 익히 아는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의 작가다.

1867년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1869년 여행기를 <철부지의 해외여행>(The Innocents Abroad)으로 펴냈다.

그는 파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프렌치 캉캉을 관람했다. 사람들은 어이구, 이거 낯 뜨거워서 어디 보겠나. 두 손으로 얼굴 가렸다. 그러나 관객 모두 손가락 사이로는 다 보고 있었다. 춤추는 젊은 여성들은 다리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속옷 보일 때는 숨을 죽였다. 오리걸음 걸으면서 침 흘렸다.”

점잖은 체 해야 하는 Victorianism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 그렸다. 억제의 반작용을 트웨인은 목격했다.

성욕은 곪았다. 틈이 생기고 물이 샜다. 막기는 불가능했다. 몰래 바람 피우는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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