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섹스②]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 역사는 그들의 이중성을 이렇게 엿봤다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벤저민 프랭클린은 청교도정신과 계몽주의를 절충한 생활태도를 지닌 최초의 미국인이다. 미국인의 원형인 셈이다. 그는 13가지 덕목을 제시했다.
벤저민 프랭클린
성은 그 중 12번째 순결에 나온다. “성교는 건강이나 자손을 위해서만 행하라. 그것 때문에 감각이 둔해지거나 몸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며, 부부의 평화가 깨지고 소문이 나빠지도록 성교를 해서는 안 된다”고 어드바이스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고 사생아를 만들었다.
토머스 제퍼슨
미국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의 부인은 결혼 10년 되는 해에 죽었다. 임종을 지키던 자리에서 죽어가는 아내에게 맹세했다. 결코 재혼하지 않겠다고.
웬걸. 주불공사 때다. 영국인 화가의 아내와 사랑에 빠진다. 불륜이 저지를 것이다. 가족은 아버지에게 실망하고 만다.
어디 그뿐인가. 열다섯 살 흑인노예를 정부로 데리고 살았다. 자신보다 서른 살이나 어렸다. 이 여성은 죽은 아내의 이복동생이었다. 제퍼슨 부인의 아버지가 건드린 노예의 딸이었다. 몸종으로 따라 왔다가 성노리개가 됐다.
그는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했다.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천명했다. 2백명이 넘는 흑인노예를 소유했다. 그녀가 나은 제퍼슨의 씨 다섯 명도 노예생활을 면치 못했다.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하녀 헬렌은 뼈 빠지게 일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동전 한 닢 주지 않았다. 헬렌은 마르크스의 아들을 낳았다.
사생아에게는 더 지독하게 대했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외모는 누가 봐도 마르크스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부인했다. 엥겔스에게 아들로 데려가 달라고도 했다.
어려서부터 노동자의 집에 맡겨졌다. 아버지 집은 뒷문으로만 드나들었다. 부엌에서만 어머니를 만났다.
딱 한번 마르크스와 마주쳤다. 아버지인 줄 몰랐다. 마르크스 역시 아들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누군가. 공산당 선언을 하고 <자본론>을 썼다. 공산주의의 원조가 아닌가.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외쳤다. 그러나 마르크스에게 자식은 해방되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장 자크 루소
루소는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지주였다. 그가 쓴 <에밀>은 근대적 교육론이다.
파리에서 세탁하는 젊은 여인을 만났다. 33년간이나 루소에게 헌신했다.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루소는 그들을 거두지 않고 모두 고아원에 맡겨 버렸다.
당시 고아원은 지옥 그 자체였다. 맡긴 그해에 66%의 원아가 죽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경우는 5%.
살아남은 이들 대부분은 어떻게 살았는가. 걸인 아니면 부랑자 됐다. 루소의 자식은 예외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