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캐나다서 ‘억울한 옥살이’ 32개월 전대근 목사 구명 나선 노동자 이야기
[아시아엔=이상기 발행인] 대구의 중소기업에서 기계 수출포장작업을 하는 문용식씨는 내후년이면 환갑을 맞습니다. 인천 부평구가 집인 문씨는 가족과 8년째 떨어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노동을 하기엔 많은 나이로 다소 힘이 부치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으로 지금 하는 일 외에 그는 두가지 일을 더 하고 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초저녁까지 파김치가 되도록 노동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하는 일입니다. 하나는 일제하 강제징병자들의 명예회복 및 보상청구이며 다른 하나는 캐나다 몬트리올 연방구치소에서 32개월째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전대근(49) 목사 구명을 위한 일입니다.
그의 부친 문순남(1924~1974)씨는 일제하 민족 수난기인 1945년 6월 일제가 일으킨 전쟁 막바지에 군인으로 강제 동원돼 만주에서 해방을 맞았으나 귀국을 하지 못한 채 전쟁포로가 되어 러시아연방·카자흐스탄·카라간다 등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돼 강제노동을 하며 3년 4개월간 고국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49년 2월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왔지만 반공을 국시로 하는 조국 대한민국은 러시아 체류 경험이 있는 부친을 ‘요시찰 인물’로 관리했습니다. 부친은 오랜 시간 감시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고 결국 지주에게 고용되어 농사일과 막노동을 전전하며 힘든 삶을 살다 1974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문용식씨는 3년 넘게 부친의 젊은 시절 흔적을 찾으려 한국·일본·러시아 정부에 민원을 제기하고 천신만고 끝에 부친 관련 자료를 입수하고, 강제 동원된 생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접하게 됐습니다.
문씨는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며 청와대, 외교부 등 정부기관에 민원도 내고, 직접 방문해 강제동원자 명예회복 등을 호소했지만 “기다려보라” “시효가 지났다” 등의 답만 들어야 했습니다.
작년 8월과 올 8월에도 청와대에 ‘시베리아 억류 한국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호소문도 보냈지만 아직 변변한 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씨가 강제징용 문제에 왜 이토록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지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전대근 목사의 석방과 관련해 그가 7일 제게 보내온 글을 소개하려 합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30개월 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한국 국적 전대근 목사에 대해 글을 올려보려 합니다. 오늘 모처럼 오전에 전대근 목사와 통화를 했습니다. 전 목사는 진주에서 중고교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비교적 공부도 잘 했고 교우들과의 관계도 좋았다고 주변에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가정사정으로 홀어머니와 살게 되고 청소년기 답답함과 외로움에 가까운 교회를 다녔습니다. 이후 연세대 사학과를 나와 감리교 신학대학원을 수료한 후 다시 미국 듀크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캐나다 토론토의 작은 교회에서 성직자로 봉직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생활비 걱정에 목회 활동과 병행하며 토론토에서 동포가 운영하는 사립직업학교 행정실장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10년 넘게 어려운 분들도 도와가며 성실하게 살아가던 전 목사가 어느 날 황당한 일로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이 일로 학교 설립자 또한 10년 넘게 잘 운영되던 학교가 갑자기 폐교되었고요. 2015년 4월1일 아래 윗집에 살며 평소처럼 함께 출근하려던 전 목사와 학교 설립자는 오전 7시경 갑자기 들이닥친 특공대 비슷한 무장한 연방경찰(RCMP) 7~8명에 의해 제압되고 수갑이 채워져 영문도 모른 채 밖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30분을 차로 이동해 토론토공항에 도착해서야 ‘아시아계 여성을 밀입국시켜 성매매 시킨 범죄단체 두목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바로 대기중인 경찰 헬기로 서울~부산거리인 몬트리올 RCMP 조사실로 압송되었습니다.
그 시점 캐나다 국영방송 CBS와 미국의 CNN은 캐나다 전국과 전 세계에 실시간 생중계를 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물론 국내 주요 뉴스채널에서도 CNN 보도를 인용해 실시간 보도되었고요. 전 목사는 그렇게 연방구치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한편 학교 설립자는 영문도 모른 채 제압당해 엎드려 뒤로 수갑이 채워져 공포에 질려 있었지요. 나중 RCMP가 영장을 보여주었지만 그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갑자기 학교에서 급한 연락이 있어 가보니 그곳도 RCMP가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면서 난장판이 되어 있었어요. RCMP는 학교의 모든 자료를 준비한 트럭에 실어 압류해 갔습니다.
재학 중인 학생들과 관련된 모든 서류도 예외 없었고 족히 트럭 한 대 분의 자료를 학교에서 가져가 버렸습니다. 전 목사는 압송되고 단 한번 1시간 조사받고 연방구치소에 수감되어 6개월간 아주 열악한 환경에 갇혀 있었습니다. 연방경찰과 검찰은 자택 압수수색과 은행 입출금 거래 내역, 6개월간의 통신 기록, 세금관련 자료, e-mail 등 혐의가 될 만한 모든 것을 오랜 기간 전방위로 뒤졌습니다. 정식재판은 내년 3월입니다. 현지시간 11월 6일 오후 2시 피고인 전 목사가 불참한 가운데 변호인과 판·검사의 법정 모임에서 증거를 확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일 검찰측은 모든 통화내역(자택전화, 학교 전화 등)을 다시 조사하고 방대한 자료를 번역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변호인측이 이에 반박했으나 판사가 11월30일 다시 모여 증거를 확정하겠다고 지휘를 하였습니다.
앞서 9월15일 예비재판에서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통화내역에 대한 번역이 연방경찰 자체 번역을 인용한 것을 시인하여 변호인측이 증거 채택을 거부한 바 있습니다. 11월6일 검찰의 엉뚱한 의견을 판사가 다시 수용함으로써 다시 변수가 발생되었습니다. 전 목사 구금 후 지금까지는 정식재판 전의 행정절차인 예비재판만 계속 되었고 그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번 연기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울분을 터뜨리며 촛불을 밝혔습니다. 그때 가장 많이 나온 구호 가운데 하나가 “이게 나라냐?”였습니다.
<아시아엔>과 발행인인 저는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게 나라냐?”가 아니라 “이래서 뽑았다”는 평가를 받기 바랍니다.
문씨 같은 의인(義人)들이 곳곳에 많을 겁니다. 이분들이 제대로 역할할 수 있도록 정부가 좀더 낮은 자세로 나서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