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복용 ‘식후 30분’과 ‘식사 직후’ 중 의학적 근거가 많은 것은?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 서비스는 본인 부담이 낮은 편이어서 감기에 걸린다든지 조금만 아파도 쉽게 병원을 찾는 경향이 있다. 이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7년 건강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외래진료를 받는 횟수는 연간 16회(2015년 기준)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았다. 일본(12.7회)보다 3회 정도 많았고 OECD 평균 7회와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따라서 약도 많이 복용하게 된다.
몸에 좋은 약이라도 용량을 초과하거나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독이 되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음주 도중 또는 직후에 두통으로 타이레놀 같은 아세트아미노펜계열 진통제를 복용하면 간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항생제와 제산제 또는 철분이 함유된 비타민을 함께 복용하면 항생제의 약효가 떨어진다. 이에 철분이 든 비타민은 항생제 복용 후 2시간 정도 지난 후 먹는 것이 좋다.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김영식 교수팀이 고혈압 약을 처방받은 환자 1139명을 대상으로 3개원 동안 혈압 변화를 조사한 결과, 이들 중 178명은 약을 꾸준히 복용했지만 혈압이 정상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즉 약을 꾸준히 복용하더라도 생활습관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혈압 조절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에 혈압약을 복용하는 환자는 신체활동량을 늘리고, 음식을 싱겁게 먹는 등 생활습관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
하루에 평균 6개 이상 약물을 복용할 경우 약력(藥歷) 관리가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약물 중복복용 등 부작용 위험을 줄이기 위하여 다양한 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에서는 약사가 환자의 약력을 위시하여 혈압·혈당 등도 조회가 가능하며, 대만도 약사가 환자의 약력을 조회할 수 있다.
일본은 ‘건강 서포트’(support) 약국을 이용하는 환자는 주치의와 연계된 동네단골약국을 갖게 돼 처방받은 약에 대해 수시로 상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환자들이 여러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기에 동네의원이나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근처 약국에서 조제를 받다 보니 환자의 약력이 여러 약국에 산재돼 있다. 따라서 같은 약을 중복해서 복용하거나, 약물 간에 충돌이 일어나 건강을 해치게 될 위험이 있다.
이에 정부는 2010년 11월부터 DUR(Drug Utilization Review)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이 시스템에 모든 약물이 포함돼 있지 않아 많은 약물들이 중복 투여될 수 있다. 한편 서울시약사회는 약물복용안전을 위하여 ‘세이프(safe) 약국’을 주도하고 있으며, 노인환자에 특화된 약물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병원 약사(藥師)위원회는 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때 ‘식사 직후’에 먹도록 복약 기준을 변경했다. 우리가 약을 먹을 때 대개 ‘식후 30분’을 지키는데 이제 이 불문율(不文律)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기존의 ‘식후 30분’ 기준은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환자들은 이 기준 때문에 오히려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에 환자들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복약 기준을 변경했다.
약의 종류에 따라 식전, 식후, 취침 전 등 3가지 복약 기준이 있다. 서울대병원이 변경한 기준은 식후에 복용하는 약에 해당한다. 위장장애를 유발하는 약이 아닐 경우에는 식사를 거르더라도 시간에 맞추어 복용하여야 한다.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약사의 직능을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창약(創藥), 제약(製藥), 용약(用藥)에 관련된 업무이다. 창약이란 약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업무를 말하며, 신약 개발에도 약사들이 주도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약은 기존 화학약품 생산에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 용약은 생산된 의약품을 유통을 통하여 환자에게 투약하는 단계의 역할을 말한다.
일반 국민들은 약에 대한 기본상식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같은 알약이라도 약의 쓰임에 따라 복용법이 다르므로 복용법을 꼭 확인하고 그대로 따르도록 한다. 약의 모양에 따라 정제(알약), 산제(가루약), 설하정, 시럽제 등으로 구분한다.
알약을 복용할 때는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한다. 특히 일부 골다공증 치료제는 아침 공복에 복용하는데, 식도에 자극을 줄 수 있으므로 한 컵 이상의 물과 함께 그대로 삼켜야 한다. 씹거나 빨지 말아야 하며, 복용 후 적어도 30분 이상 눕지 않는다.
‘설하정’은 혀 밑에 넣고 녹여 먹는 약으로 혀 점막에서 흡수된다. 협심증에 사용하는 니트로글리세린이 대표적인 약이다. 따라서 삼키거나 씹지 말고 혀 밑에 넣고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 ‘산제’는 약의 쓴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연령, 체중에 따라 용량이 다른 소아의 경우, 필요한 양을 정확하게 복용할 수 있고 녹는 시간이 길지 않아 효과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장용정’은 장(腸)에서 녹는 약으로 위(胃)에서 녹지 않고 장에서 흡수되도록 특수한 막이 있어 약으로부터 위를, 위산으로부터 약을 보호한다. ‘서방정’은 체내에서 서서히 녹도록 코팅되어 있어 효과 지속 시간이 길고, 약이 갑자기 많이 흡수되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장용정이나 서방정은 절대로 씹거나 가루로 먹지 않도록 한다.
가톨릭대학교 약대 연구팀이 서울 소재 종합병원 성인 환자 150명에게 “좋아하는 색깔로 약을 바꿨을 때 약을 더 잘 먹게 될 것으로 보는지”를 묻자 응답자의 50%가 “그렇다”(40.7%)와 “매우 그렇다”(9.3%)를 선택했다. 약의 색깔로 흰색을 선호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40.9%로 가장 많았다. 그리고 노랑(16.7%), 초록(13.6%) 색깔 순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