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파동] 피프로닐 검출 남양주 농장 달걀 323만개 먹어야 ‘사망’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닭이 낳은 알을 ‘계란’ 또는 계란(鷄卵)이라고 부른다. 계란은 ‘닭의 알’→‘닭이알’→‘계란’로 진화된 우리말 고유어다. 요즘은 계란을 산란계 사육농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지만, 1945년 해방 후 필자가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계란은 비싸고 귀한 음식이었다. 예를 들면, 봄과 가을에 원족(遠足, 소풍)갈 때 도시락에 들어있는 삶은 계란 1개를 먹을 수 있었다. 당시 ‘계란 꾸러미’는 설과 추석 명절선물로 인기품목이었다.
계란(egg)은 ‘생명을 낳는다’는 신비력 때문에 고대의 종족 간에서 생명력의 표현이요, 영혼의 용기(容器)로 이해했다. 이란이나 유대 민족은 부활의 주력을 갖는 신성물로 여기고, 계란을 먹거나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기독교의 부활절(復活節) 계란 장식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나일 강의 대홍수 이후 인류의 부활을 상징하는 뜻에서 계란을 제단에 바치고 먹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계란을 먹은 역사는 오래된다. 경주 황남동 155호 고분(古墳) 유물함에서 토기에 담긴 계란 20여개를 1973년 9월 18일에 발굴했으며, 계란껍질이 부패되지 않고 출토된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닭이 신라시대부터 가금(家禽)으로 사육되었음을 입증한 것이라 하겠다.
계란 1개는 우유 1홉(약 180ml)에 필적하는 영양분을 함유한 완전식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계란에는 단백질과 지질을 위시하여 비타민과 무기질 특히 아연이 많이 들어 있어 자양강장 작용을 한다. 또한 계란은 필수아미노산의 함량이 가장 이상적인 식품이다. 계란은 닭이 먹는 모이에 따라 영양가와 맛에 차이가 있다.
지난해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금년 초 미국산 계란이 수입되자 색깔을 두고 이야기가 많았다. 국내 유통 계란의 99%가 갈색인 반면, 미국산 계란은 흰색이다. 이는 흰색 품종 닭이 흰색 계란을 낳고, 갈색 품종은 갈색 계란을 낳기 때문이다. 세계 10대 계란 생산국가(FAO, 2007년 통계)는 중국, 미국, 인도, 일본, 멕시코, 러시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프랑스, 터키 등이다.
계란은 노른자위(卵黃), 흰자위(卵白), 껍데기(卵殼)로 이루어져 있다. 알껍데기는 주로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깥으로부터 산소를 받아들여 안에서 호흡한 뒤 바깥으로 이산화탄소를 내보낼 수 있게 되어 있다. 알 껍질의 안쪽에 얇은 세포막이 있으며, 노른자위(난황)는 알끈에 의해 알의 중심이 고정된다. 계란노른자의 인지질(燐脂質)은 뇌세포와 신경세포의 구성 성분이며 지능과 기억력 향상, 치매 예방 등에 좋다.
계란의 소화는 요리방법에 따라 다르다. 즉 계란 2개(약 100g)의 소화시간은 반숙인 경우 약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회복기의 환자에게 초란(醋卵)이 좋다고 했다. 피로가 심할 때 초란을 마시면 피로회복이 빨라지며, 동맥경화 예방, 고혈압, 위하수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 북송(北宋) 때인 968년경 나온 <일화자본초>(日華子本草)에는 600여종의 약초와 식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자에 “계란은 심장을 진정시키고 오장을 안정시키며, 태아(胎兒)를 평안케 한다. 열병과 적백대하증, 이질, 산후허리(産後虛痢) 등을 다스리는데 밀가루와 버무려 지져 먹는다. 계란술은 산후의 뇌빈혈을 다스리고 소변을 이롭게 한다. 노른자를 볶아 기름을 내어 쌀가루를 버무려 두창(頭瘡)에 붙인다”고 기록돼 있다.
새(鳥類)는 알을 낳아 자손을 퍼뜨린다. 다 자란 새의 생김새가 제각각이듯, 알도 모양이나 색이 다양하다. 과학자들은 알의 생김새와 색깔을 통해 새가 사는 환경을 유추(類推)한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조류학자 매리 스토다드 교수는 논문에서 “조류의 알은 어미의 비행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밝혔다. 닭은 날지 않는 조류다.
그런 계란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전국의 산란계(産卵鷄) 농장들이 지난해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어 ‘살충제(殺蟲劑) 계란’ 공포로 때 아닌 고전을 겪고 있다. 살충제 계란 파문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7월 20일 벨기에가 처음으로 유럽연합(EU)에 피프로닐(fipronil) 오염 계란의 존재를 신고하면서 ‘살충제 계란’ 문제가 확인된 후 8월 18일 현재까지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17개국과 한국과 홍콩 등 19개국에서 살충제 계란이 확인됐다.
벨기에 당국은 지난 6월 초 ‘살충제 계란’을 처음 알고도 공식발표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벨기에 농업부 장관은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네덜란드 당국이 지난해 11월 살충제 계란에 대한 제보를 받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 4월 6일 개최된 ‘유통 계란의 농약 관리 방안 토론회’에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bifenthrin)이 기준치를 초과한 샘플이 각각 하나씩 있었다고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농림축산식품부 조사가 진행 중이던 8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유럽의 살충제 계란을 언급하면서 “국내산 계란은 안전하다”고 말했다가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에 출석해 뒤늦게 사과했다.
살충제 계란 파문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주무부처가 농식품부와 식약처로 나뉜 구조에서 두 부처가 손발이 맞지 않아 ‘엇박자’ 대응을 내어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근본적으로 계란 생산단계는 농식품부, 유통과 소비단계는 식약처가 관할하는 체계 탓에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며, 이번 사태에 대응할 ‘컨트롤 타워’가 보이지 않고 있다. ‘우왕좌왕’ ‘사후약방문’ 행정의 전형을 보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일부 언론은 피프로닐의 피해를 과장보도해 계란생산 축산농가와 서민 소비자들의 고충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살충제 계란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피프로닐’(fipronil)은 1993년 세계시장에 처음 출시돼 국제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된 살충제다. 개와 고양이의 벼룩, 진드기 등 해충을 없앨 때 사용할 수 있으나, 닭과 오리 등 사람들이 먹는 식용가축에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피프로닐을 사람이 다량으로 섭취할 경우 ‘중간 정도의 독성(毒性)’이 있는 2급 위험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피프로닐을 장기간 복용하거나 노출될 경우 구토와 설사,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고, 노출량에 따라 간, 신장, 갑상선 등 장기손상 가능성이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KFDA)는 국제 식품 규격에 따라 피프로닐 잔류 기준치를 계란 0.02mg/kg, 닭고기는 0.01mg/kg으로 정해놓았다.
화학물질의 급성 독성(毒性)으로 실험동물의 반이 죽은 섭취량인 반수치사량(半數致死量, lethal dose 50: LD50)을 본다. 피프로닐의 반수치사량은 몸무게 1kg당 97mg이므로 체중 60kg인 사람이 5820mg(5.82g)을 섭취할 경우 죽을 확률이 50%가 된다. 남양주 농장에서 검출된 피프로닐 최고치는 50g 계란 하나에 0.0018mg이므로 사람이 반수치사량만큼 피프로닐을 섭취하려면 계란 323만개를 먹여야 한다.
독일 연방위험평가기구는 살충제 계란에 대하여 체중 65kg인 성인이 하루에 피포로닐에 오염된 계란을 7개 섭취하더라고 안전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했다. 다만, 체중에 따라 안전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체중이 적은 어린이는 주의해야 한다. 즉, 체중 16kg의 아동인 경우 24시간 동안 섭취해도 큰 지장이 없는 피프로닐 오염 계란 수는 1.7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가 허가한 닭 진드기 살충제 성분은 비펜트린 등 13종이며, 해당 살충 성분의 경우 각각 잔류 허용기준 등이 설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비펜트린의 기준치는 0.01mg/kg이다. 하지만 살충제 살포가 거듭되면서 해충에게 면역력이 생기고, 일부 농가에서는 독성이 더 강한 미승인 살충제를 살포해왔다.
17일 현재까지 사용금지 또는 잔류 기준 초과 살충제가 검출된 산란계 농장 6곳 중 5곳이 ‘친환경 인증’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친환경 인증 제도한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농축산물을 생산하도록 도입된 제도이다. 전체 산란계 농가 1456곳의 절반이 넘는 780곳이 친환경농장 인증을 받았다. ‘친환경 마크’가 붙어 팔리는 계란은 일반 계란보다 40%까지 비싸며, 친환경 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이 전체 유통량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