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의 ‘사상계’ 제대로 읽은 대선후보는 누구?

2013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열린 故 장준하 선생 추모제 <사진=뉴시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60년대 한운사의 ‘현해탄은 알고 있다’ 라디오 연속극은 공전의 화제였다. 대동아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조선에도 지원병제도가 시행돼 조선청년들이 일본군에 입대했다.

춘원 이광수 등이 출전을 독려했다. 이들은 청년들이 일본군에서 익힌 군사지식이 광복 후 도움 될 것이라고 변명하였으나, 이때 광복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일본군에 징집된 학병들이 일본인 고참병에게 받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기합은 일본 군대의 비인간적인 통솔 그대로였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이를 그리고 있다. “병사와 쇠는 달굴수록 강해진다”는 것이 일본군의 지론이었다. 특히 학병들은 학력이 짧은 일본군 하사관의 학대를 받았다. 일본군에서 장교는 사무라이의 후예고, 하사관과 병은 백성이 모이는 것으로 하대를 받은 데다 조선인 학병은 식민지 청년이라는 데서 더한 핍박이 가해졌다.

학병세대는 평안도 출신이 많았다. 이들 가운데 소수가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국 대륙을 전전하다가 중경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갔다. 그들이 발견한 임정은 백범의 주도 아래 있었지만 겨우 명맥만 유지한 상태였다. 그들은 미국의 OSS에 한반도 진공훈련을 받았으나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일본이 항복하여 큰 활약은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때문에 장준하의 사망은 오랜 동안 박정희에게 혐의가 겨누어져 있었다.

일본은 이과생들은 소집하지 않았다. 전쟁을 계속하는데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급박한 가운데서도 국가경영과 전쟁수행을 하는 일본 지도자들의 수준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학병은 제국대학 출신은 징집되지 않았고 전문학교 학생이 주를 이루었다. 국군의 모체가 된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간 사람에도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이 많았지만 학병출신 가운데 국군에 들어간 사람은 많지 않았다. 평양사범 출신의 백선엽은 만주군 중위 출신이다.

그들은 함석헌의 지도 아래 <사상계>를 편집하게 된다. 신상초, 김준엽, 김상엽, 지명관, 장준하 등이 참여하였다. 호남의 지주 집안 출신이 주로 보통문관이나 고등문관 시험을 거쳐 관료로 등용되었다면 학병에는 서북 출신이 많았다. 이들은 남강 이승훈이 세운 정주의 오산학교, 평양의 숭실학교 등에서 교육을 받아서 항일독립 의지가 투철하였다.

학병세대는 한국지성사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1920년대가 주력인 그들은 이제는 지나간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족적은 <사상계>에 남아 있다. 국한문 혼용으로 된 <사상계>는 요새 젊은 세대에게는 거의 읽히지 않는다. 오랜 한글전용정책의 영향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일성록>은 고전국역원에서 번역해 낼 수 있지만, <사상계>를 번역하기에는 너무도 품이 많이 든다.

오늘날 지성계는 학병세대를 이은 세대다. 많은 박사들이 있지만 학병세대의 혼은 이어지지 않은 듯하다. 이승만 정부에서 의무교육이 실시되었다. 4·19혁명은 높은 수준의 국민교육의 발로였다. <사상계>는 사회의 전반적인 지성수준을 높였다. 당시에 나온 논설이나 번역을 보면 오늘날에도 탁월하다. 학병세대는 조선의 정예(精銳)를 이은 세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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