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양회兩會 특집] 중국 국민이 시진핑 주석을 지지하는 이유

시진핑 주석이 허베이(河北)성 푸핑(阜平)현 한 빈곤한 마을을 방문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신화사>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가 3~5일 공식일정을 모두 마쳤다. 양회는 중앙정부가 개최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의 총칭으로 매년 3월 베이징에서 개최된다. 전인대는 중국의 최고 국가권력기관으로 국가의사 결정권, 입법권 등을 갖고 있다. 전인대에서 국가총리가 ‘정부공작보고’를 통해 작년 한 해의 경제 운영상황을 정리하고 당해의 경제사업에 대한 계획을 발표한다. 정협은 정책자문기관으로 전인대에 각종 건의를 하는 자문권은 있으나 입법권, 정책 결정권은 없다. 올해 전인대는 3월 5일, 정협은 3월 3일 개최됐다. <아시아엔>은 중국의 <인민일보> 의뢰로 ‘양회’ 관련 기사를 공동 보도한다.(편집자)

[아시아엔=<인민일보> 류쥔궈(劉軍國) 기자] “농촌 빈곤인구가 빈곤에서 벗어나고 빈곤했던 縣들이 모두 ‘빈곤현’의 꼬리표를 떼고 지역적인 전체 빈곤을 해결하는 것은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건설의 마지노선이자 우리의 장엄한 약속이다.”

2월 21일 중공중앙정치국이 중국 빈곤퇴치 공략 형세와 정확한 빈곤지원에 대해 단체 학습 때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한 발언이다.

시 주석은 ‘빈곤지원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지도자’로 불리고 있다.

2017년 새해를 앞두고 시 주석은 “새해에 가난한 계층들이 가장 염려스럽다. 그들이 무엇을 먹는지, 어떤 곳에 사는지, 새해를 잘 보낼 수 있을지, 설을 잘 쇨 지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인민일보>는 2월 24일자에서 ‘시진핑 총서기의 빈곤지원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주제로 특집보도를 했다.

1969년 초, 시진핑은 산시(陝西) 옌안(延安) 농촌에 가서 일했다. 15살때였다. “베이징에서 갑자기 그렇게 가난한 지방으로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그곳은 땅이 아주 척박했는데 비료가 없어서 분뇨를 퍼다 날라야 했다. 그렇게 넓은 면적에 파종을 해도 수확은 정말 턱없이 적었다.” 시진핑은 량자허(梁家河)에서 7년 일했다. 그 중 2년은 대대 당지부의 서기를 맡았다. 대대 당지부 서기 시절, 갓 20살이었다.

당시 그는 어떻게 하면 식량을 좀 더 많이 수확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큰 우물을 파고 관개지를 만들고 계단식 밭을 만드는 등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다.

1982년, 시진핑은 허베이(河北) 정딩(正定)현으로 옮겨 일했다. 생활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생필품과 군인시절 입었던 옷들을 가지고 갔다. 숙소도 없어서 사무실에 의자 2개를 놓아 침대를 만들어야 했고, 이불도 자신이 가지고 간 것을 덮어야 했다. 주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사방으로 먹을 것을 찾아 다녔다. 시진핑은 정딩현 200여 마을을 돌면서 도급제 보급을 추진했다.

간쑤(甘肅)성 딩시(定西)시의 깡촌마을에 시진핑 주석이 현지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신화사>

1997년, 시진핑이 푸젠(福建)에서 일할 때 닝샤(寧夏) 남부에 있는 시하이구(西海固)를 시찰한 적이 있다. “그곳은 정말 가난했다. 어떤 사람들은 토굴집에 살고 있었다. 값 나가는 물건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정말 가난했다. 어떤 집은 온식구가 바지 두세 벌로 버텼다.” 처음 시하이구를 시찰한 시진핑은 그곳의 열악한 생활환경에 큰 충격을 받았다. 푸젠성 당위원회 부서기 시절, 시진핑은 중앙의 주문에 따라 민닝(閩寧)합작영도소조를 창설, 조장을 맡아 맞춤형 빈곤지원업무를 펼쳤다. 그는 생활시설 개선 사업을 전개하고 토지를 개량하고 계단식 밭을 만들었으며 감자 산업을 발전시켰다.

푸젠에서 당위원회 부서기 및 성장 시절, 시진핑은 “정확한 빈곤지원을 실시해 정말로 빈곤한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념을 제기했다.

시진핑은 빈곤지원은 실제적인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실천적인 철학은 이렇다.

“첫째, 다음 세대를 위해 교육을 중시해야 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고, 교육은 낙후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도로·수도·전기 같은 기본 공공시설을 보장해 공공서비스의 균등화를 실현해야 한다. 셋째, 주위의 환경과 재원을 잘 활용하고, 조건과 능력에 따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닭·오리·양을 키우면 그들에게 우량품종을 골라 주고 과학적으로 기르는 방법을 알려주고 빈곤지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이렇게 1년에 몇 천 위안의 수입이 있으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취업하는 길을 찾아주고, 교육시키며, 외지에 나가 일을 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재배업과 양식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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