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코타 송유관 건설현장 르포①] “므니 위초니!” 물은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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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윤석희 <아시아엔> 미주특파원] 윤석희 미주 특파원이 지난 10월에 이어 한달반 만에 다시 다코다를 찾았다. 가을 끝자락이던 당시와 달리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 실낱같던 희망은 조금 더 큰 형태로 나타났다. 윤 특파원은 송유관 건설에 반대하는 원주민과, 이들을 응원하러 온 예비역 군인들과 함께 10일간 머물며 “므니 위초니”(물은 생명이다)를 외치며 밤낮으로 사람들을 만나 취재했다. 일단 송유관 공사는 중단됐다. 작은 결실이지만 휴화산과 다름없다. 윤 특파원은 “한달 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송유관 건설을 강행할 것이 우려된다”며 “그러나 원주민들과 반대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정의는 살아있다’는 신념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물은 생명이며 누구에게나 물을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편집자>

프롤로그

지난 10월의 비행기 여정과 달리 선택한 ‘스탠딩 록’ 행 버스의 출발은 12월 1일이었다. 브루클린 외곽의 최악의 교통 체증을 뚫고 도착한 버스는 브롱크스의 한 가정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운전자 빌 힐은 1945년 뉴욕주 시골에서 고아로 자랐다고 했다. 한 보육 가정에서 또다른 보육 가정으로 떠넘겨지면서 자란 빌은 베트남이 어딘지도 모른 채 베트남으로 파병되었다. 돌아와서 그는 술과 마약으로 10년을 보내고는 몬태나주의 한 농가에서 일주일을 부들부들 떨며 술과 약을 끊었다고 한다.

함께 가게 된 일행은 멕시코인, 흑인, 백인 2명과 기자 등 남성 5명과 인디언 혼혈여성까지 모두 6명의 젊은 청년이었다. 우리가 타게 될 버스는 크라운사의 90년대 스쿨버스로 버스 뒷부분은 열린 공간으로 설계돼 있었다. 버스는 길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간혹 경적으로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곤 했다.

뉴욕에서 입던 옷은 하루 만에 부족했다. 아이오와주 농가에서 묵은 둘째 날 밤에는 바닥에 깔린 눈 탓에 버스 바닥이 얼어오기 시작했다. 다코타 송유관 건설 반대운동의 중심인 오체티 사코윈 캠프에 도착한 날은 텐트를 설치하기 무섭게 해가 지고 수은주도 급속히 추락했다. 노스다코타주의 12월은 그렇게 시작했다.

오체티 사코윈캠프 밝힌 횃불

오체티 사코윈에 찾아온 새벽은 추웠다. 날카로운 바람이 수시로 불어왔고 대평원 가운데 물가를 지키고 있는 캠프는 칼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캠프 구성원들은 6시에 일어나 타오르는 불 가장자리에서 ‘성스런 그릇’에 담겨진 물에 기도하고, 물가로 이동해 강에게 기도했다.

세이지(Sage) 허브를 태우며 시작되는 의식에서 카메라는 ‘물론’ 금지되었다. 많은 언론이 캠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방식과 관련해 원주민들의 이해를 얻지 못해서였다. 얼어붙은 물가에서 남성들은 두 줄로 서서 聖水와 담뱃가루를 들고 물가로 내려가는 할머니들과 여성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여성이 모두 물가에서 기도를 마치자 이번에는 여성들이 남성들 손을 잡아 주었다.

이들은 므니 위초니(Mni Wiconi) 즉 “물은 생명이다”라는 다코타어 문장을 끊임없이 소리쳤다. 다코타 언어로 “므니 위초니, 므니 위초니”가 연신 들려오더니 이어 “물은 생명이다”라는 뜻의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독일어, 스웨덴어가 뒤따랐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수화도 등장했다. 수백의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강가에 짧은 기도와 담뱃가루를 바치는 동안 우리는 생소한 발음의 구호를 5번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새벽 공기를 마셨다. 어떤이들은 발을 구르며 떠오르는 태양과 강에게 기도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군인들 그리고 송유관 건설 임시 중단

12월 3일 캠프는 수많은 신입 ‘물 수호자’들의 도착으로 잠시 혼란에 빠져들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군인’(Veterans For Peace) 등 4000명에 이르는 예비역 군인들이 스탠딩 록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입대할 때 맹세한 헌법수호를 위해 자진해서 파견나왔다”며 뉴스와 카메라 팀을 동반했다. 이들을 보고 놀래서일까, 전날까지 교량을 지키던 경찰들은 귀신 같이 사라졌다.

이튿날 즉 12월 4일, 더욱 혼란스러웠다. 캠프는 12월 5일까지 퇴거할 것을 노스다코타 주정부로부터 명령받은 상태였다. 이에 예비역 군인들은 “물리적 방법을 불사하더라도 어떠한 강제퇴거 조치에도 맞서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긴장과 혼란이 더해가는 순간 송유관 허가가 취소되고, 환경조사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12월 4일 저녁은 폭죽과 춤의 향연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축하 분위기에 잠시 젖어 들었다. 하늘서 내려앉는 눈보라뿐 아니라 송유관 건설현장에 여전히 불타고 있는 할로겐 조명으로 흥분은 다소나마 가라앉았다. 밤이 깊어가면서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다코타의 겨울은 눈보라에 휩싸이다

12월 5일, 눈은 계속 쌓이고 바람은 시속 50km로 빨라졌다. 텐트 한쪽은 눈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여전히 계속되는 예비역들의 차량은 도로 옆에 빠져 헛바퀴를 돌리기 십상이었다.

캠프장 곳곳에 차려진 임시 주방에서 자원봉사에 나선 기자는 얼어붙은 물에 식재료를 씻느라 씨름을 해야했다. 목탄 난로를 켠 텐트 안은 상대적으로 따뜻하여 영하 5도를 웃돌았으나 바깥은 영하 20도 이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동식 야외화장실은 모두 꽁꽁 얼어붙어서 더는 유지가 불가능했다.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했다. 바람에 노출된 모든 살갗이 얼어붙었다. 설거지용 물은 얼음을 한 시간 이상 프로판가스에 녹여 조달했다.

한번 바람이 불 때마다 얼음 조각이 떨어지는 부엌에서 기자는 다른 봉사자들과 얼어붙은 닭과 달걀, 치즈와 통조림을 녹인 재료로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다.

주민 반대투쟁은 잠시 중단됐지만

12월 8일 원주민 대책위원장 데이비드 알샴보 2세(David Archambault II) 오체티 사코윈 캠프 대피명령을 내렸다. 살을 에는 추위와 열악한 도로 사정 그리고 신입 ‘물 수호자’들의 안전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기자가 탄 버스도 급히 현장을 떠나야 했다. 일부 인원들은 남거나 근처 카지노로 대피하였다. 카지노는 방은 물론 복도까지 가득 찼으며 회의장엔 침낭을 깔고 자는 ‘수호자’들이 가득했다. 다음 눈보라가 몰려오면 캠프 온도는 영하 30도로 떨어질 것이란 예보가 있었다. 강풍으로 새로 텐트를 설치하거나 식사 준비를 하는 게 모두 불가능했다. 캠프에서 빠져나오는 길에도 눈에 처박힌 차량들이 양쪽에 가득했다.

기자가 탄 버스 역시 4시간 동안 얼어붙은 엔진을 프로판 히터로 녹이고서야 시동이 켜졌다. 1주일 남짓 10명의 대피공간으로 사용된 버스는 목탄 난로와 땔감, 수많은 침낭, 이불과 배낭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바삐 최대한 물건들을 정리하고 이것들을 묶어야만 했다. 캠프를 떠나는 길은 승리를 얻고 금의환향하는 것이 아닌, 쓴맛을 남긴 급한 대피였다.

에필로그

100km도 달리지 않아 버스는 브레이크 고장으로 서버렸다. 사우스다코타 주의 작은 마을 주유소 옆에서 기자와 동료들은 잠을 청했다. 침낭에 몸을 담고 누워 잠을 청하려는 순간 버스 문을 쾅쾅 하고 누군가 두드렸다. 마을 사람이었다.

그는 “송유관 건설에 찬성하는 마을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며 “여기서 도움 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그는 “오늘 밤 여기서 머물고 내일 아침 당장 마을을 떠나라”고 소리치고 물러났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이 마을에 하나뿐인 자동차기술자에게 수리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견인차를 불러야만 했다.

버스는 완벽하게 수리하지 못한 채 아이오와주에 사는 빌의 친구 차고에 맡겨야 했다. 그것도 눈이 다 녹는 내년 봄까지···. 기자와 동료들은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을 헤치며 렌터카를 타고 12일 뉴욕으로 돌아왔다. 길고긴 여정,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열흘을 되돌아봤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던가?’ 아메리카 원주민이 그토록 지키려던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린 결코 잃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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