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숙 시인의 늦가을 청량사 스님께 보내는 ‘봄 편지’

[아시아엔=최명숙 시인] 가을이다. 25년 동안 홍보팀장으로 재직한 직장을 퇴직한 지, 두 계절이 가고 가을 속에 들었다. 틀에서 벗어나 보는 일상은 같은 것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콘크리트담에서 우는 풀벌레 소리, 창 밖 가로등, 장애인친구의 20만원 월급, 저녁나절 낡은 유모차에 폐휴지를 싣고가는 팔순 노파의 고단함, 모른 체 묻었던 차별들이 민낯으로 다가온다. 이들을 참 이웃으로 살펴주는 골목 안 사람들이 만든 그늘도 새롭게 본다.

지금에서야 그들의 모습이 새롭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나를 키운 시집 한권과 어머니의 추억을 친구삼아 다녀올 여행길에서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경림 시인의 오래된 시집 <농무>와 어느 봄날, 한 스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에 독백처럼 써서 편지 한통을 배낭에 다시 넣는다. 가을에 읽는 ‘봄 편지’, 가을이 깊을수록 추운 사람들과 함께 읽었으면 한다.

스님께서 보내주신 청량사의 봄소식을 읽은 오늘 밤은 차 한잔 마주 놓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봅니다. 엊그제 다녀와 놓고도 다시 청량사의 봄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나를 성장시킨 고향의 봄도 참 아름답고 그리운 풍경이었지요.···. 이엉을 이은 초가지붕, 배가 서너 개 달렸던 뒤란의 수령 높은 배나무, 사립문과 나무울타리, 집 앞 개울과 징검다리, 송홧가루 날리던 뒷동산, 김매는 엄마 따라 가서 놀던 고구마밭 등등 참 아련하고도 고운 추억입니다.

또래 아이들과 잘 뛰어놀기가 어렵곤 했던 나에게 그만한 놀이터는 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나무 울타리를 짚고 마당가 둘레를 하루에도 몇번을 돌며 놀기도 하였고, 징검다리가 넘치지 않을 만큼 자작자작 흐르던 개울에서는 피라미를 잡다가 흐르는 물길에 꽃잎을 띄워보내기도 하였지요.

꽃잎은 떠내려가다가 바위에 걸리거나 물가 둔덕에 걸리곤 하여 물위에도 봄꽃이 핀 듯하였답니다.초등학교를 가려면 엄마의 등에 업혀 개울을 건너야 했는데 매일 아침, 어머니는 나를 업고 징검다리를 건너시며 주문처럼 말하곤 하셨지요.

“이 다음에 우리 명숙이, 네가 가고 싶은 곳에 혼자 찾아갈 수 있을 만큼만 잘 크면 좋겠구나.”

“너의 이름이 세상에 나는 것보다 사람의 맘을 어루만져주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늘 그것을 위해 기도한단다.”

그렇게 어머니 등에 업혀 개울을 건너며 다녔던 초등학교 1학년의 봄날은 참 행복하였답니다. 스님! 어머니의 독백과 같았던 간절한 기도가 저를 이만큼이나마 사람구실 하도록 하신 것이겠지요. 점심시간에 사무실 옆 공원을 산책하다가 복지관에서 뇌성마비 아이를 치료시키고 돌아가는 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울 아이도 선생님만큼만 말을 하고 걷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을까요?”

아무 대답도 못하고 웃기만 하였지만 그 아이도 커서 지금의 나와 같은 느낌으로 어머니와의 봄을 행복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스님께서 보내신 봄소식 편에 서울의 봄도 활짝 열리고 있는 듯합니다. 서울과 청량사를 오가시며 복지재단 일을 비롯한 바쁜 일정을 보내시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스님께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청량사의 봄빛과 스님의 미소가 곧 부처님 같은 미소가 되어 다가오고 늘 스님께서 저를 시선 밖에 두지 않으심을 알기에 사는 일에 긴장을 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인연 그리고 청량사의 아름다운 봄, 언젠가는 그 봄을 가꾸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요. 고르지 못한 날씨에 내내 강건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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