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DMZ평화통일대장정 대학생수기①임영재] 도전·열정·평화·통일 X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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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임영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2년] 도전·열정·평화·통일 네 팀은 팀별 노래와 구호를 여러 개 만들어서 번갈아가면서 외쳤다.

#05. 도전·열정·평화·통일 X크로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팀의 노래와 구호를 그대로 가져와 본인 팀명을 넣어서 외치기도 하였고, 팀끼리 서로 한번씩 선창-후창의 느낌으로 주고받으며 외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가 속한 팀이 아니더라도, 서로 ‘으쌰! 으쌰!’ 힘을 내기 위해서 통일팀이 평화팀의 구호를, 평화팀이 열정팀의 구호를, 열정팀이 도전팀의 구호를, 그리고 한 바퀴를 돌아 도전팀이 통일팀의 구호를 외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서부터, 누구부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갔다.

그런 외침은 뒤에서부터 앞으로, 앞에서부터 뒤로 반복되었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 있는 엄홍길 대장님을 향해서도 우리는 외쳤다.

“대장님도 파이팅! 으쌰으쌰으쌰으쌰~”

그러면 대장님께서는 양손에 쥐고 계시던 지팡이를 번뜩 드시면서 머리 위로 크로스하여 우리에게 화답해주셨다. 대장님은 매일 매일 선두에서 쉼 없이 걸었다. 대장님 가방 한쪽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음악과 함께.

크로스로 우리에게 화답해주는 엄대장님이 한번은 언덕의 오르막을 걷는 길에 평소보다 배로 빠른 속도로 걸었다. 뒤를 졸졸 따라붙는 대원들 중 일부가 금세 뒤쳐졌다. 짧은 구간이었지만 우리는 배로 힘들었다. 오르막을 다 오르니 대장님께서는 뭐 이런 짧은 코스에 힘들어 하느냐며 나지막하게 호통쳤다. 하지만 그건 오르막길의 고통을 단시간에 끝내 우리에게 부담을 지우려는 대장님의 배려였음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에는 뒤처지는 친구들을 뒤에서 밀어주고 당겨주느라 아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순간들이 15박 16일 동안 꽤 많았음은 다 지난 지금에서야 떠올리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네 팀의 외침 속에서의 연결과 대장님의 크로스, DMZ의 많은 구간들을 지나고 전망대에 오르며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처럼 펼쳐진 DMZ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연결처럼, 대장님의 크로스처럼 남북이 함께 연결되는 모습이 얼른 오기를 그렸다. 그런 한편으로는 적의 도발에 항시 긴장하며 있어야 하는 육해공 모든 전우들의 모습도 떠올렸다. 실제로 서해안 바다에서 북한 함정이 NLL을 침범하여 새벽 중에 비상이 걸려 자다가 급하게 출동하곤 했다던 해군 동기의 말이 최전방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육군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함께 떠올랐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우리의 발걸음이 힘이 되어 남북이 평화롭게 통일하여 크로스 되기를 기원했고, 더 힘차게 하루하루의 일정을 소화하려 하였다.

#06. 완주 그리고 여행의 끝

어느새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한 우리는 경기도 파주로 들어섰다. 이제 진짜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다. 그런데 같은 팀의 대원 한명이 발에 물집이 너무 심해 도저히 혼자서 걷기 힘들겠다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처음엔 배낭에 걸려있던 수건을 잡게 하고서 같이 걷다가 이내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대열에서 조금 뒤쳐졌다가 “하나, 둘, 셋.”을 외치면서 다시 대열에 합류했다가 다시 뒤쳐졌다가 다시 합류하기를 수차례, 잡고 있던 손은 땀으로 가득했고 그는 발에 고통이 너무 심해서인지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다. ‘얼마나 힘들면 울기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더 꼭 쥐면서 “하나, 둘, 셋.”

그런 식으로 115명의 대학생들 중 107명의 대학생이 파주 임진각에 도착했다. 350km를 완주한 것이다. 대장정 내내 눈물을 보인 적 없던 형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도 했고, 대장정 중에는 고통 때문에 울상이었던 대원의 얼굴에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해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15박 16일 동안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에서, 산길로도, 도로 위로도 걸으며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기쁨에 긴장이 풀려서 그랬을까? 간만에 의자 위에 앉아서 그랬을까? 완주식이 진행되는 와중에 졸음이 쏟아졌다. 그건 옆에 앉아 있던 친구도 마찬가지였는지 임진각에 도착 직후 눈물을 보이던 눈은 그새 반쯤 감겨 있었다. 눈이 스르르 감기다가 소리가 들리면 잠깐 깨고, 스르르 감기다가 잠깐 깨고. 스르르 감긴 눈에서 지난 15박 16일 동안 매일같이 걸었던 모습이 비쳐졌다. 어쩌면 꿈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이게 진짜 꿈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자 급하게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는 대원들이 구호를 외치기 위해 자리에서 하나, 둘 일어서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다. 도전! 도전! 도전! 대한민국 DMZ 평화통일 대! 장! 정!”

대장정을 마쳤다. 휴가도 끝이 났다. 부대로 복귀했다.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을 줄 알았다. 15박 16일 동안 그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떠올렸으니 내가 돌아온 자리도 많은 것들로 가득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휴가를 떠나기 전, 대장정을 떠나기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달랐다. 새까맣게 탔고 몸은 조금 더 가벼워졌다. 덩달아 마음도 가벼워진 듯했다. 군생활의 막바지 떠났던 대장정, 지난 시간동안 미처 걷지 못했던 지난 나를 보상하기 위해 떠났던 길. 나는 그 길을 충분히 걸었다.

여행도 끝이 났다. DMZ로 떠났고, 114명의 나와 다른 대학생들을 만났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제 23개월 군 생활 대장정도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 어쩌면 대장정의 마지막처럼 군 생활의 마지막도 꿈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정 때처럼 여기저기 많이 다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때로는 즐거운 일로도 가득했던 군 생활. 그리고 그 막바지에 내 두 발로 걸었던 350km. 다시 사회로 새롭게 여행을 떠나게 될 내게 큰 밑천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밑천인 대장정처럼 나는 또 우뚝 걸어 나갈 것이다. 신발 끈 꽉 조여매고 몸도 가볍게 풀고, 목소리도 가장 크게 낼 준비를 하고서 .

2016년 여름, 나는 그렇게 하나의 도착점과 새로운 출발점 위에 서 있었다. 15박 16일 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이 피부에 새까맣게 남았고, 15박 16일간의 걸음 동안 다리는 더 단단해지고, 그 기억들로 15박 16일 너머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너머로 나아가려 다시 신발 끈부터 꽉 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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