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DMZ평화통일대장정 대학생수기①임영재] 해군군가 ‘앵카송’ 목 터져라 부르니
[아시아엔=임영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2년] 목마름이 심했던 며칠간이 지나고, 하루는 야간교육이 끝난 뒤 잠시 진행 실장님과 대화의 시간이 있었다. 그때 우리가 겪고 있는 ‘물 부족 사태’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오죽하면 샤워 도중에 수돗물을 마셨겠냐는 이야기까지. 그런 식으로 목을 축인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니!
그건 진행 실장님도 물 공급을 담당하는 행정팀에 불만을 갖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렇게 불만을 소리 내어 이야기한 덕분이었을까? 다음날부터는 물이 전날에 비해 풍부하게 제공되었다. 게다가 하늘에서는 비까지 내려 ‘물 부족 사태’가 ‘물풍년’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우리는 타는 목마름을 잠시 내려두고 대장정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큰 축복이었다. 구름이 태양을 가려 무더위는 잠시 우리를 비켜갔고, 그럼에도 흐르는 땀을 비가 조금은 식혀주었다. 바람막이를 걸치고 배낭엔 덮개를 씌웠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은 모자 위로, 바람막이 위로 떨어지며 온전히 내 몸에 느껴졌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빗속을 뚫고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우리들의 모습. 언제 또 이렇게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걸을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이렇게 비를 맞기 위해서 이번 대장정에 참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의 어깨와 다리, 그리고 머리에 빗방울이 ‘타다닥’ 끊임없이 떨어지며 잘 왔고,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주었다.
평소에 가보지 못한 길, 평소에는 해보지 못한 일, 평소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들. 하루 종일 걸으며 그런 것들을 몸으로 익혀가는 중이었다. 그러자 조금씩 가슴 속이 벅차오르는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아직 행진의 도중이지만 이렇게 느껴지는 벅차오름이 이번 대장정의 가장 큰 희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는 목마름에서, 느껴지는 벅차오름으로. 바뀌어가는 감정 속에서 나는 또 묵묵히 걸음을 걷고 있었다.
#03. 군인
대장정 기간 동안 우리는 마치 군대의 체계 안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단지 진행을 맡은 진행요원들과 진행 실장님이 해군 특수부대인 UDT 출신이고, 꽤 많은 날을 군부대에서 묵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차례의 인원보고, 지시와 통제, 오와 열, 불침번 그리고 얼차려까지. 군대 훈련소에서 했던 과정들은 간소화되어 대장정 일상에 적용되고 있었다. 거기에 대장정 중에 각 군 출신별로 군가를 부르기까지. 나는 현역 병장으로, 누군가는 지난 추억으로 그리고 누군가는 새로운 경험으로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평화통일대장정식 군대생활에 점점 적응을 해갔다. 그러나 그중 일부는 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기도 하였다. 남은 사람들은 보낼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자유롭지 못한 환경, 몸에 치달아오는 고통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나갔다.
그런 와중에 나는 현역 병장으로 15박 16일의 대장정에 참여한 것에 대해 주목받게 되었다. 나는 그저 길게 나온 휴가 동안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을 하러 온 것이었고, 그래서 한명의 대학생으로 무리에 섞여 있었지만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어쩔 수 없이 “현재 해군병장으로 복무 중인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임영재라고 합니다.” 라고 소개를 하며 팀원들에겐 현역 군인임을 알리게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에겐 면접 때를 제외하고는 현역 군인임을 알리지 않았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한 37사단 풍차부대에서의 아침부터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역 군인으로 대장정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의도치 않게 공개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풍차부대에서 출발 준비를 마치고 부대의 주인인 장병과 지휘관께 인사만 하고 떠날 참이었다. 그런데 사진작가님께서 갑자기 나를 찾는 것이 아닌가?
“현역 사병으로 대장정 참여한 대원 어디 있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대답을 하고 작가님에게로 다가갔더니 대원들 격려차 부대를 찾은 3군단장님께서 운영진에게 내 이야기를 듣고는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군단장께선 말년휴가를 이용해 의미 있는 대장정에 참여한 병사가 대견하게 보였고, 그런 내게 3군단의 코인과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옆에 계시던 김태영 단장님과 엄홍길 대장님도 포옹과 악수를 해주시며 대견하고, 대단하다며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현역 군인임을 단원들에게 모두 알리게 되었다. 게다가 해군인 탓에 같은 해군인 UDT 출신 요원들께서도 내게 관심을 보이셨고, 그 덕에 행진 중에 해군 군가인 앵카송도 목이 터져라 부르고 ‘조선수군’이라는 별명도 하나 얻게 되었다. 엄대장님께서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나를 언급하시기까지 하셨다.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되니 여기서부터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완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히게 되었다. 완주하지 못한다면 현역 군인으로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너무나 부끄러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몸에 고통이 오더라도, 귀찮은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먼저 나서서 주위의 동료를 도와주고 목이 쉬더라도 언제나 가장 큰 목소리로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진짜 군인’인 만큼 그 누구보다 열심히 ‘군인 정신’을 발휘한 셈이었다.
#04. 똥차와 물집.
한번에 보통 50분여의 행진을 하다보면 처음부터 중반부까지는 대원 모두는 팀별로 누가 더 목소리가 큰지 경쟁하듯 구호를 크게 외치기도 하고, 서로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소란했다. 하지만 후반부의 시간에는 다들 지쳐 그 소란스러움은 이내 사라졌다. 그렇게 짧은 고요가 이어진다. 그 고요 속에서 어느 순간 진행 실장님께서 선두 쪽으로 앞서가기 시작하고, 선두에서 고요를 깨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파란 똥차가 눈에 들어왔다. 똥차가 있는 곳에서야 우리는 잠시나마 쉴 수 있었다. 배낭을 풀고 물을 꺼내 마시고 신발을 벗어 발을 편하게 해준다. 양말까지 벗고는 베이비파우더를 뿌리며 다음 순서의 행진을 준비하기도 한다. 똥차로 대소변 용무를 보러 가기도 하는데 대장정의 막바지로 이를수록 똥차에서 풍기는 암모니아 냄새는 심해졌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도착해야 할 장소가 다다랐음을 생각하면 그런 냄새쯤이야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었다.
똥차 옆에서 신발을 벗고 쉬고 있노라면 붕대나 밴드로 발에 덕지덕지 붙인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모두 물집 때문이었다. 자그마한 물집에서부터 발가락 전부 피부 살갗을 모두 도려내야 할 만큼 큰 물집까지 크기와 상태도 다양했다. 물집이 잡힌 친구들은 내딛는 걸음마다 고통스러워했는데 이상하게도 내 발에는 물집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대장정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데 발은 깨끗했다. 쉬는 시간마다 발을 말려주고 파우더를 계속해서 뿌려주었던 효과를 본 것이다. 주위에서는 “역시 현역은 달라”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발이 아니라 등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땀띠가 목에서부터 등 전체에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뜨거운 태양 때문에 피부가 놀라 그런 줄 알고 알로에 젤을 발랐지만 낫지 않았다. 다시 확인해보니 영락없이 땀띠였다. 등에서 가려움과 따가움이 몰려왔고 행진 도중보다도 쉬는 시간에 고통이 더 심했다. 얼른 숙영지로 돌아가 씻어내고 싶었다. 물을 꺼내 등에 조금씩 붓기도 하고 배낭과 옷을 손으로 들어 바람을 불어넣기도 하였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파우더를 등에 뿌리며 숙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버텼다. 땀띠가 생긴 뒤부터는 모든 정신이 등으로 집중되었다. 행진 도중에도, 쉬는 시간에도 그리고 숙영지에서도 느껴지는 고통을 잠재우려 지극정성으로 계속 등에 바람을 불어넣고 파우더를 뿌리는 노력을 더했다. 다행스럽게도 3일 정도의 고통 끝에 땀띠는 미세한 정도의 고통만 남기고 가라앉았다. 그렇게 누군가는 물집 때문에, 누군가는 땀띠 때문에, 또 누군가는 남들은 모르는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지만 참아내며 대장정을 해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