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DMZ평화통일대장정③김수진] 무더위에 절절매던 대원들, 칠성부대 ‘절절포’ 받고 ‘펄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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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그저 낭비일 뿐이다!”

[아시아엔=김수진 조선대 사회복지학과 4년] 일반 가정집에서 달걀이 부화해 버리고, 길가에 세워놓았던 차의 범퍼가 흘러내리는 등 살인적인 무더위로 힘들었던 올해 여름도 어느덧 지나가고 있다. 1994년 이후 최악의 폭염이었던 올해 여름은 일반사람들에게는 살인적인 무더위로 힘들었던 잊지 못할 여름이 되었겠지만, 나는 올해 그들과는 다른 의미로 평생 잊지 못할 여름을 보냈다.

나에게 잊지 못할 여름이 된 이유는 엄홍길 대장님과 함께하는 제4회 DMZ 평화통일대장정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DMZ 평화통일대장정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화천 평화의 댐을 거쳐 문산 임진각까지 총 155마일, 350km를 전국 대학생이 분단의 현실을 느끼고, 통일 염원을 새기면서 15박 16일 동안 함께 DMZ를 따라서 행군하는 대장정이다.

세계최초로 16좌 완등에 성공한, 이름 하나만으로도 신분 증명이 가능할 정도인 존경스러운 산악인 엄홍길 대장님과 117대명의 대원들과 함께 걸었던 이번 여름은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15박 16일의 제4회 DMZ 평화통일대장정의 그리운 추억 속으로 다시 빠져보고자 한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1000자가 넘는 지원서류를 쓰고, 체력심사로 도봉산을 등산하고 너무 떨렸던 면접심사를 통해 평화통일대장정의 대원이 되었다.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나오기 전날에는 잠도 설치며 당일에는 하루 종일 결과발표만 기다렸다. 합격자 발표가 나고 합격사실을 알았을 때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전화하면서 동네방네 자랑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장정을 마치고 수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느끼고 있다.

일정 1일차인 7월 8일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처음 만난 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날 나는 도전팀의 팀장이 되었다. 활발한 성격으로 즐겁게 밝은 분위기로 팀을 잘 이끌겠다는 용기를 가지고 팀장 자리에 지원하였는데 우리 도전팀은 완주식까지 나를 믿고 잘 따라주었다. 도전팀의 팀장을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 한 일중에 하나인 것 같다.

대원들과 함께 대장정의 구호를 연습하고 텐트치는 법을 익히고 그날부터 텐트에서 취침을 시작하였다. 집을 떠나 처음으로 텐트에서 자는 생활이 어색하기도 하였지만 새로웠고 서로 살을 부대끼면서 조원들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정 2일차, 9일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있었던 발대식에서 평화통일대장정 3기 학생대표의 본인이 다녀왔던 대장정의 이야기도 듣고, 엄홍길 대장님의 충고와 조언을 들으면서 대장정의 시작을 그 때부터 실감했던 것 같다.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광화문 광장에서 발대식을 하니 구경하시고 박수를 쳐주시는 분이 많아서 더욱 더 힘이 났던 것 같다. 그렇게 광화문 광장에서 발대식을 마치고 대장정을 시작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출발했다.

첫날은 고성통일전망대를 거쳐 숙영지인 대진중학교까지 4~5km 정도만 행군을 해서 몸풀기나 다름 없었다. 일정 3일차부터 본격적인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3일차부터 8일차까지는 9일차에 하루종일 휴식시간 및 평화통일콘서트가 있는 평화의 댐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참고 또 참으며 걸었다. 햇볕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너무 강하고 더웠다. 발은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3일차부터 물집이 발가락마다 잡히고 물집들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행군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코스를 딱 두 가지만 뽑아 보라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4일차에 진부령을 넘을 때와 35km를 걸었던 10일차라고 말할 수 있다. 진부령을 넘을 때 그 가파른 언덕을 넘으면서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꼈다. 그 와중에 나는 팀장이기 때문에 힘이 들어서 올라오지 못하는 우리 조의 여자 대원들 몇 명이 낙오되지 않게 양쪽에서 밀고 올라가면서 나마저도 탈진할 뻔했던 날로 기억한다. 그렇게 팀원들이 서로 밀고 당기며 낙오하는 인원 없이 올라오면서 진부령의 도착을 알리는 “여기는 진부령 정상입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몇 명의 여자대원들은 눈물을 흘렸고, 나도 울컥했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진부령에 도착해서 “도전팀 인원보고! 도전팀 총인원 29명, 현인원 29명, 이상 무!”라고 인원보고를 하고 난 뒤에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이 눈물은 힘들어서 난 눈물이 아니라 우리 팀이 한 명의 낙오도 없이 서로 도와주면서 다 같이 함께 올라왔다는 것에 우리 팀에게 팀장으로서 너무 고마웠고, 감동에 가슴이 벅차 흘렸던 눈물이었다. 그래서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지만 가장 기억나는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35km 걸었던 10일차에는 행군 일정 중에서 가장 거리가 길었던 날이다. 다른 날은 길어봤자 29km이었던 것에 비해 35km를 걸었던 날은 정말 길이 끝이 없는지 알았다.

설상가상 비도 쏟아지고 길고 먼 거리에 다들 지쳐갈 때마다 조 구호와 파이팅을 외쳐가며 숙영지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그날 숙영지는 칠성부대였는데, 칠성부대의 서정열 사단장님은 대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씩 적어져 있고 본인의 친필사인이 적혀 있는 일명 ‘절절포’ 붉은색 머플러를 대원들마다 모두 나눠주셨다. ‘절절포’는 서정열 사단장님이 만드신 것으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의 줄임말로 칠성부대를 상징하는 말이다.

사단장님께서는 머플러 외에도 각각 의미가 깃들여 있든 8종류의 과자와 음료가 들어있는 ‘절절포’ 위문품 세트와 행운의 1달러도 함께 주시며 대원들을 격려해주셨다. 가장 거리가 길고 힘들었던 그 날은 정말 포기하고도 싶었던 날이었다. 그런데 칠성부대의 서정열 사단장님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느껴보니 포기할까도 생각했던 그날 하루의 내 모습들을 돌이켜보며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고, 남은 일정들을 초심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시 마음을 잡게 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 도전팀의 팀원들 사이에서는 힘들 때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절절포!”를 외칠 정도로 우리만의 유행어 아닌 유행어가 되었고, 심지어 대장정이 끝난 후에 주변 친구들에게도 절절포를 알려주며 그 뜻을 전파하고 있다. 이처럼 손으로 꼽으라면 가장 힘들었던 이 두 일정들을 힘들었던 일정으로만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새로운 경험들과 스스로 다짐하고 많이 배웠던 날로 더욱 잊지 못한다.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하염없이 걷고 또 걷고 있었던 어느 날, 휴식시간에 지쳐서 앉아서 쉬고 있던 대원들에게 엄홍길 대장님께서 하신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 자신들을 돌이켜 반성해보게 되었다. 대장님께서는 “대원들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하려고만 하는 그런 마음으로 걷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걷는 것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듯이, 삶이 그렇습니다. 대원들을 보면 오르막길이 눈앞에 나타나면 그 오르막길을 오르기도 전에 두려워하고 힘들다고 느껴버리는 것 같습니다. 힘들어 죽겠다고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들지 말고, 그 힘든 오르막을 다 오르면 천국 같은 내리막길이 있음을 대원들 모두 끝까지 기억하고 앞으로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도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삶을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보기를 바랍니다”라고 대원들에게 아낌없는 충고와 조언들을 해주셨다.

대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그 동안의 행동들이 어땠는지 생각해보니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원들 모두가 느꼈을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3일차부터 8일차까지는 힘들다는 생각만 들어서 9일차에 있는 평화통일콘서트만 기다렸었다. 그렇게 오직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했더니 걸으면서 볼 수 있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볼 소중한 기회도 놓쳐버리고, 소중한 시간들도 그냥 흘러가버렸다.

오르막길이 눈앞에 나타나면 “아~ 또 오르막길이야~ 아 힘들어 죽겠는데 오르막길은 왜 이렇게 많아~” 이렇게 지레 겁을 먹고 힘들어하면서 올라갔었다. 심적으로 이런 마음을 먹고 올라가니 육체적으로도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고, 그 오르막길에 지쳐 내리막길이 나타나도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지난 날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지레 겁을 먹지 않고 그 상황을 맞서서 극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대장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생각하면서 걸었더니 걷는 것이 힘들어서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주변 자연경관들이 보이면서 그 동안 놓쳤던 풍경들도 즐기면서 힘들더라도 즐겁게 걸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생기게 되었다.

DMZ 평화통일대장정이라는 이름처럼 최전방을 따라 걸으면서 통일전망대를 비롯한 여러 전망대를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보면 분단된 나라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와 정말 가까운 곳에 북한이 있었고, 이렇게 코앞에 있는 곳을 한 국가임에도 분단되어 살아가는 우리나라 분단현실이 가슴이 아팠다. DMZ를 따라 걸으면서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관심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고 통일은 누구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모두가 다 같이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느끼게 되었다. 통일은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던 15박 16일의 여정이 끝나고 완주식이 있는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도착한 그날의 가슴 벅참과 감동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완주식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떨리고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기수가 있는 첫번째 팀인 도전팀의 팀장이어서 엄홍길 대장님과 김태영 단장님의 바로 뒤에 서서 대원들로는 가장 먼저 완주식 장소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더 크게 파이팅을 외치고, 마지막으로 조 구호를 외치며 끝까지 씩씩하게 평화누리 공원에 들어갔다. 우리를 맞아주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이고 우리와 함께 걸으셨던 소프라노 채미영 교수님이 직접 부르시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하자마자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쉴새 없이 흘러내렸다.

내가 해냈다는 가슴 벅참과 뿌듯함에 스스로 대견했고, 15박 16일의 수 많은 추억들과 대원으로서, 그리고 29명을 이끌어야 하는 한 팀의 팀장으로서 알게 모르게 힘들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지금까지 “왜 사람이 기쁘면 웃어야지 눈물을 흘릴까?”라는 말에 공감하지 못했는데 그날 이 말에 정말 공감하고 절실히 느꼈다. 너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은 더 뜨거웠고 더 값졌다.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23년의 시간 동안 엄마, 아빠의 눈물을 본 적이 없었는데, 완주식 날 처음으로 엄마, 아빠의 눈물을 보았다. 너무 강한 햇빛 때문에 햇빛 알레르기가 생겨 다리 두 쪽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발가락에 생긴 수많은 물집들, 아픈 무릎과 발목으로 인해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딸의 모습에 본인이 대신 아팠으면 할 정도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무사히 잘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그 시간들을 잘 버티고 완주한 대견한 딸에 대한 엄마 아빠의 많은 의미가 있는 눈물을 나는 그날 보았다. 엄마는 내가 대장정을 간 2주 동안 얼마나 신경을 쓰셨는지 신경성 위염에 고생하셨다고 한다.

평화통일대장정은 나에게 있어서도, 부모님에게 있어서도 대장정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우리 도전팀에는 퇴교자가 딱 1명 있었다. 본인은 완주하고 싶은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했지만, 발목 부상으로 인해 깁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완주를 코 앞에 두고 그 누구보다 속상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간 황정태 대원이 있다.

중도에 퇴교하던 날 우리팀은 황정태 대원에게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집을 돌아가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에 완주식 때 꼭 와서 우리 맞아주라고, 그 기쁨을 함께 하자고 말했었는데, 황정태 대원은 우리와의 약속을 지켰다. 우리와 같은 대장정 옷이 아닌 사복을 입고 깁스를 했지만 함께 완주한 것처럼 우리의 기쁨을 나누었고, 15박 16일간 수없이 외쳤던 “우리는 하나다!”를 몸소 실감하였다. 이처럼 나는 대장정을 통해 말이 행동으로 변하는 과정들을 보았고, 혼자라면 못했을 것들이 함께라서 가능했던 기적을 보았다.

붙을지 떨어질지도 몰랐던 면접심사 때 당차게 평화통일대장정의 슬로건인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라고 외쳤던 그 때의 나와 대장정을 마친 내가 외치는 슬로건은 똑 같은 단어, 똑같은 문장임에도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정말 해내고 나니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젊음을 낭비하는 것은 그 시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젊음은 역경에 맞서고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나이기에 젊음이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서 새로운 도약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 그 또한 젊음이라고 느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둔 4학년 취업 준비생으로서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스스로도 슬럼프를 겪고, 결정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DMZ 평화통일대장정은 대장정 그 이상의 의미였다.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나약해져 있던 나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고, 한 팀의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보면서 내가 누군가를 이끌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나이도, 성격도, 학교도 다른 여러 사람들과 단체생활을 해보면서 사회생활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것보다 더 힘들고 고된 날들이 많겠지만 이 경험들을 되새겨 보면서 극복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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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은 빠지고, 물집은 셀 수 없이 많이 생겨 못생겨져 버린 내 발을 보면서 마음이 아픈 게 아니라 대장정을 다녀오지 못한 사람들은 겪어보지 못할 영광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발로 느껴진다. 나에게 이런 값진 경험들을 선물해주신 엄홍길 대장님을 비롯한 재단 관계자분들에게 가슴 깊이 감사드리며, 이 감사한 마음을 꼭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도록 멋진 사회인이 되어 다시 찾아 뵙고 싶다.

나는 4기의 도전팀 팀장이자, 전라도권 대표로 이 좋은 행사를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내 스스로도 열심히 주변 선배, 후배, 그리고 친구들에게 홍보할 것이다. 많이 부족한 나를 팀장으로 믿고 따라준 29명의 도전팀 팀원 모두에게 정말 고맙고 힘들 때마다 서로 밀고 당기며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완주하는 모습이 그 어떤 모습보다 가장 멋지고 아름다웠다.

2016년 그 누구보다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냈던 4기 DMZ 평화통일대장정 대원들 우리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2016년 여름, 우리는 모두 하나였다. 이제 대장정의 행복한 추억 속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평화통일대장정의 구호를 외쳐보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다! 도전! 도전! 도전! 대한민국 DMZ 평화통일대장정!”

평화통일콘서트만 기다렸었다. 그렇게 오직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했더니 걸으면서 볼 수 있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볼 소중한 기회도 놓쳐버리고, 소중한 시간들도 그냥 흘러가버렸다.

오르막길이 눈앞에 나타나면 “아~ 또 오르막길이야~ 아 힘들어 죽겠는데 오르막길은 왜 이렇게 많아~” 이렇게 지레 겁을 먹고 힘들어하면서 올라갔었다. 심적으로 이런 마음을 먹고 올라가니 육체적으로도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고, 그 오르막길에 지쳐 내리막길이 나타나도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지난 날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지레 겁을 먹지 않고 그 상황을 맞서서 극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대장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생각하면서 걸었더니 걷는 것이 힘들어서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주변 자연경관들이 보이면서 그 동안 놓쳤던 풍경들도 즐기면서 힘들더라도 즐겁게 걸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생기게 되었다.

DMZ 평화통일대장정이라는 이름처럼 최전방을 따라 걸으면서 통일전망대를 비롯한 여러 전망대를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보면 분단된 나라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와 정말 가까운 곳에 북한이 있었고, 이렇게 코앞에 있는 곳을 한 국가임에도 분단되어 살아가는 우리나라 분단현실이 가슴이 아팠다. DMZ를 따라 걸으면서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관심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고 통일은 누구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모두가 다 같이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느끼게 되었다. 통일은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던 15박 16일의 여정이 끝나고 완주식이 있는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도착한 그날의 가슴 벅참과 감동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완주식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떨리고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기수가 있는 첫번째 팀인 도전팀의 팀장이어서 엄홍길 대장님과 김태영 단장님의 바로 뒤에 서서 대원들로는 가장 먼저 완주식 장소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더 크게 파이팅을 외치고, 마지막으로 조 구호를 외치며 끝까지 씩씩하게 평화누리 공원에 들어갔다. 우리를 맞아주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이고 우리와 함께 걸으셨던 소프라노 채미영 교수님이 직접 부르시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하자마자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쉴새 없이 흘러내렸다.

내가 해냈다는 가슴 벅참과 뿌듯함에 스스로 대견했고, 15박 16일의 수 많은 추억들과 대원으로서, 그리고 29명을 이끌어야 하는 한 팀의 팀장으로서 알게 모르게 힘들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지금까지 “왜 사람이 기쁘면 웃어야지 눈물을 흘릴까?”라는 말에 공감하지 못했는데 그날 이 말에 정말 공감하고 절실히 느꼈다. 너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은 더 뜨거웠고 더 값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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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23년의 시간 동안 엄마, 아빠의 눈물을 본 적이 없었는데, 완주식 날 처음으로 엄마, 아빠의 눈물을 보았다. 너무 강한 햇빛 때문에 햇빛 알레르기가 생겨 다리 두 쪽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발가락에 생긴 수많은 물집들, 아픈 무릎과 발목으로 인해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딸의 모습에 본인이 대신 아팠으면 할 정도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무사히 잘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그 시간들을 잘 버티고 완주한 대견한 딸에 대한 엄마 아빠의 많은 의미가 있는 눈물을 나는 그날 보았다. 엄마는 내가 대장정을 간 2주 동안 얼마나 신경을 쓰셨는지 신경성 위염에 고생하셨다고 한다.

평화통일대장정은 나에게 있어서도, 부모님에게 있어서도 대장정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우리 도전팀에는 퇴교자가 딱 1명 있었다. 본인은 완주하고 싶은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했지만, 발목 부상으로 인해 깁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완주를 코 앞에 두고 그 누구보다 속상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간 황정태 대원이 있다.

중도에 퇴교하던 날 우리팀은 황정태 대원에게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집을 돌아가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에 완주식 때 꼭 와서 우리 맞아주라고, 그 기쁨을 함께 하자고 말했었는데, 황정태 대원은 우리와의 약속을 지켰다. 우리와 같은 대장정 옷이 아닌 사복을 입고 깁스를 했지만 함께 완주한 것처럼 우리의 기쁨을 나누었고, 15박 16일간 수없이 외쳤던 “우리는 하나다!”를 몸소 실감하였다. 이처럼 나는 대장정을 통해 말이 행동으로 변하는 과정들을 보았고, 혼자라면 못했을 것들이 함께라서 가능했던 기적을 보았다.

붙을지 떨어질지도 몰랐던 면접심사 때 당차게 평화통일대장정의 슬로건인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라고 외쳤던 그 때의 나와 대장정을 마친 내가 외치는 슬로건은 똑 같은 단어, 똑같은 문장임에도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정말 해내고 나니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젊음을 낭비하는 것은 그 시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젊음은 역경에 맞서고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나이기에 젊음이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서 새로운 도약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 그 또한 젊음이라고 느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둔 4학년 취업 준비생으로서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스스로도 슬럼프를 겪고, 결정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DMZ 평화통일대장정은 대장정 그 이상의 의미였다.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나약해져 있던 나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고, 한 팀의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보면서 내가 누군가를 이끌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나이도, 성격도, 학교도 다른 여러 사람들과 단체생활을 해보면서 사회생활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것보다 더 힘들고 고된 날들이 많겠지만 이 경험들을 되새겨 보면서 극복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 같다.

발톱은 빠지고, 물집은 셀 수 없이 많이 생겨 못생겨져 버린 내 발을 보면서 마음이 아픈 게 아니라 대장정을 다녀오지 못한 사람들은 겪어보지 못할 영광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발로 느껴진다. 나에게 이런 값진 경험들을 선물해주신 엄홍길 대장님을 비롯한 재단 관계자분들에게 가슴 깊이 감사드리며, 이 감사한 마음을 꼭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도록 멋진 사회인이 되어 다시 찾아 뵙고 싶다.

나는 4기의 도전팀 팀장이자, 전라도권 대표로 이 좋은 행사를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내 스스로도 열심히 주변 선배, 후배, 그리고 친구들에게 홍보할 것이다. 많이 부족한 나를 팀장으로 믿고 따라준 29명의 도전팀 팀원 모두에게 정말 고맙고 힘들 때마다 서로 밀고 당기며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완주하는 모습이 그 어떤 모습보다 가장 멋지고 아름다웠다.

2016년 그 누구보다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냈던 4기 DMZ 평화통일대장정 대원들 우리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2016년 여름, 우리는 모두 하나였다. 이제 대장정의 행복한 추억 속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평화통일대장정의 구호를 외쳐보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다! 도전! 도전! 도전! 대한민국 DMZ 평화통일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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