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DMZ평화통일대장정 대학생수기⑥박윤정] “오와 열로 하나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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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 그리고 우리들의 뜨거웠던 그 여름날

[아시아엔=박윤정 목포대 환경교육과 2년] 5월초 ROTC 준비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나에게 문득 눈에 들어온 DMZ평화통일대장정의 포스터.

포스터 속에 있는 태극기와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그저 낭비일 뿐이다”라는 문구는 직업군인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나에게 또 다른 도전정신을 심어주었다.

군인이라는 꿈을 꾸면서 남북한의 상황과 통일의 문제점 등 역사에 대해 글로만 배운 나로서는 솔직히 배운 만큼 가슴 깊이 와 닿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DMZ 155마일을 걷는다는 것은 내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분단된 한반도의 아픔,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자질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우리나라 태극기를 가방에 걸고 걷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또 언제 한번 각각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DMZ 평화통일대장정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도봉산,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였다

지원서를 작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차 합격자 발표가 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꾸준히 준비해 오던 운동의 강도를 높였다. 면접과 체력테스트가 있던 날, “뭐든 하려고 하는 너의 의지와 도전이 동생으로서 너무 멋있다”라고 말해주던 작은언니의 배웅을 뒤로 한 채 도봉산을 오르는 체력테스트 먼저 시작하게 되었다.

여자 2조로 끝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서고 있는데, 초반부터 쳐지던 친구와 언니가 있었다. 어떤 끌림이었는지 어떤 이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본 언니와 친구인데도 불구하고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였다고 생각했나 보다. 혼자 빠르게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늦게 도착하더라도 같이 정상에 다치지 않고 올라오는 게 이 체력테스트의 취지가 아니었나 싶다.

체력테스트를 마치고 4조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국토대장정에 참여하려는 가지각색의 이유들과 당당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지원자들의 표정을 보니 이 사람들과 또 만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 또한 뒤지지 않고 국토대장정에 지원한 이유를 내 나름대로 당차게 말씀드리고 홀가분하게 면접장을 나왔다. 단지 체력과 면접만 보는 날이었는데도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도전을 하고 있고, 또 그 도전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구나 싶어서 나에게 조금 더 열심히 살라는 원동력을 주었던 뜻 깊은 날이었다.

최종합격, 그리고 준비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최종합격 날이 다가왔다. 나보다 더 기대를 하고 있던 사람은 바로 우리 언니다. 대학생 때 국토대장정 한번 못 가본 것이 후회된다고 늘 말하던 언니가 나의 합격문자를 더 기다렸던 것 같다. 드디어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띠링’이 소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남들은 별 거 아닌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는 식으로 말을 했지만 나에게는 이 합격 문자가 나의 첫 대외활동이자 나의 꿈을 향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뿌듯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최종합격 문자를 받고서 엄홍길휴먼재단에 올라와 있는 수기공모부터 1회부터 3회까지의 사진기록들을 다 훑기 시작했다. 보고만 있어도 가슴 설렜고 다른 사람의 얼굴에 내 얼굴을 상상 속에서 넣어보기도 하고 혼자 배시시 웃었던 기억이 난다.

2016년 7월 8일에 만난 115개의 새로운 별들

나름 필요한 것들만 가져간다는 나의 가방은 어느새 터질 듯 빵빵해졌고, 그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이것저것 챙겨들고 신한대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체력테스트와 면접 때 눈에 띄던 사람들도 몇몇 보이기 시작했고, 괜스레 반갑기도 했다. 눈에는 열정, 긴장감, 설렘이 가득해보였고, 나 또한 그랬다. 팀 배정을 받고 신한대학교 강당으로 들어섰다. ‘열정팀 박윤정’ 빨강색 이름표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내 이름 석 자 앞에 열정이라는 단어가 있어서 그런지 내가 열정이 정말 넘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 같은 어리석은 생각도 들었다.

도전·열정·평화·통일 순서로 자리에 착석을 했는데, 내가 체력테스트 때 이끌어주었던 언니가 같은 열정 팀이 되었고, 같이 손을 잡고 걷던 친구가 평화 팀이 되었다. ‘아 이래서 같이 가는 뿌듯함이 있구나, 아 이래서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팀 배정을 받는 순간조차도 나에겐 깨달음을 주는 시간이었다. 최종 합격한 사람은 115명, 그 중 열정 팀은 29명. 이 115명의 사람들은 15박 16일 동안 떨어지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니 통성명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

각자 물품을 받고, 태극기를 달고, 텐트 치는 방법을 배우고, 그 다음날 이루어질 발대식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장비가 고루 갖춰져 있는 상태에서 UDT 출신 유병호 진행실장님의 지도하에 다 같이 구호를 숙지했다.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다. 도전 도전 도전! 대한민국 DMZ평화통일대장정”

외치기만 해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들이 올라왔다. 가슴 깊이 뜨거운 감정들이 올라온 이유는 구호에 우리들의 목표와 패기가 모두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img_4336자, 지금부터 시작이야.

국토대장정의 시작을 알리는 7월 9일 오전.

전날 배웠던 대로 텐트를 접고, 복장 점검을 하고, 발대식을 위해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오와 열을 맞추어 경건한 자세로 DMZ 국토대장정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 젊은이의 대표로서 115명이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지 해보지 않는 자로서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광화문 거리에 나와 있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만큼이나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던 날 국토대장정의 시작은 강원도 고성에서 열렸다.

오와 열로 하나 되다!

걷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고, 안전을 위한 말 바로 ‘오와 열’이다. 체력적으로 강한 줄로만 알았던 내가 4일차 진부령을 오를 때부터 고비가 찾아왔다. 물집이 잡히고, 골반이 틀어진 것처럼 고통이 찾아오며 내가 지금까지 쌓아 올려왔던 체력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쳐지면 뒷사람도 쳐질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안전상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오와 열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제 4땅굴을 오를 때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같은 팀 오빠들이 밀어주기까지 했다.

오빠들도 힘들 텐데 동생들 쳐지지 않게 밀어주는 것 보고 미안한 감정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언니 오빠들이 있었기에 9일차 평화의 댐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오와 열이라는 말을 들으면 긴장이 되고, 국토대장정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당시에 들었을 때는 지겹도록 들은 말인데 지금 왜 이렇게 오와 열이라는 말이 그리운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온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어렵고 힘든 일이 지나면 즐겁고 좋은 일이 오기 마련이다. 옛 선인들은 참 맞는 말만 하는 것 같다. 고진감래, 딱 우리에게 하는 말이었다. 정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하루하루 견디다 보니, 하루하루 배우다 보니, 하루하루 느끼다 보니 어느새 화천 평화의 댐까지 오게 되었다.

이름조차 몰랐던 사람들과 언니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면서 평화콘서트까지 즐기고, 같이 무대 준비를 하면서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22년을 살아오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거의 있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 순간이 행복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엄홍길 대장님, 카리스마 속에서도 친근함이 있었던 유병호 실장님 여러 이사님들과 함께 평화콘서트를 보면서 다가가기 힘들 줄만 알았던 분들과 이렇게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155마일 그 끝을 향해 걸어가다

막바지를 향해 우리는 당찬 걸음을 옮겼다. 서로 힘이 되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울고 웃다보니 어느새 금정지구 전투전적비, 철원평화전망대, 필리핀군 참전비 등 역사가 깊게 물든 곳들을 지나쳐 15일차 밤이 다가왔다. 15박 16일 어떻게 보면 길고도 짧은 시간, 난 이 시간 동안 체력의 한계를 느꼈고, 사람들 간의 따뜻함을 배웠고, 또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느꼈다. 군인이 되려는 나로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인 분들의 위대한 역사가 글이 아닌 그 땅을 걸음으로서 간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어서 묵념을 하는 시간 동안 감사함을 표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난 내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면서 평화통일대장정을 마치는 마지막 밤을 보냈다.

20160708_121343너, 나 그리고 우리들의 뜨거웠던 여름날

“난 항상 준비할 것이며, 그럼 언젠가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내가 꿈을 위해 한걸음씩 내딛을 수 있었던 힘이 되었던 말이자, 내 좌우명이다. 항상 준비하는 자세를 갖는 것, 포기 하지 않는 자세를 갖는 것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각각 다른 지역에서 모여, 얼굴조차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이 도전을 위해 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고, 15박 16일 동안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며,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었다. 그래서인지 내 좌우명에 걸맞은 도전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 엄홍길대장과 함께하는 제4회 DMZ 평화통일대장정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고,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과는 좋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휴전선을 걸음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고 내가 군인이 하고 싶은 이유를 다시 되짚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여러모로 내가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DMZ평화통일대장정.

우리 모두를 이끌어주신 엄홍길 대장님, 이사님들, 각 분야의 실장님들, 요원님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싶다. 우리들의 뜨거웠던 여름날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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