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DMZ평화통일대장정 대학생수기①임영재] 해군병장의 말년휴가를 155마일에 쏟다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을 모두 등정한 엄홍길 산악인의 도전과 휴머니즘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2007년 설립한 엄홍길휴먼재단은 한국의 대표적인 ‘도전 아이콘’이다. 재단은 네팔 오지 학교 건립, 셸파 유자녀 장학금 지급, 도전·휴머니즘상 선정 및 시상, 그리고 지난 2013년부터 DMZ 155마일 대장정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지난 7월에도 15박16일 동안 전국에서 선발된 대학생 100여명이 엄홍길 대장과 ‘DMZ 평화통일대장정’을 완수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 하루 30km 안팎의 강행군을 통해 극기와 협동을 배우고 익히며 통일을 꿈꾸는 이들의 대장정이었다.?특히 재단측은 참가 대학생의 수기를 공모해 대장정의 뜻을 더 높이고 있다. <아시아엔>은 수상작을 몇 차례 연재하며 독자들을 대장정에 초대한다. 싣는 순서는 △대상 임영재(서강대 신문방송학과 2년) △우수상 김학준(부산외대 파이데이아창의인재학과 3년) 김수진(조선대 사회복지학과 4년) △장려상 유송이(안양대 식품영양학과 1년) 박윤정(목포대 환경교육과 2년) 김은지(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 3년) 순이다. <편집자>
[아시아엔=임영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2년]?처음은 ‘여행’이었다. 대한민국 현역 해군으로 군 생활을 하는 중에 가장 길게 나갈 마지막 휴가, 그 기간 동안 나는 배낭 하나 어깨에 짊어지고서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어디로 떠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정해진 것은 내가 꽤 오랫동안 떠날 예정이라는 것뿐이었다. 군 생활의 마무리로 나는 어떤 여행을 하게 될까?
#00. 처음은 ‘여행.’
그러던 중 배낭만 덜렁 메고서 국토종주를 했다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머리가 쭈뼛 서고,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닥을 딛고 서있는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거다! 국토 대장정이다! 나는 이걸 해야겠다!’ 군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행군에서 열외가 되고, 평발이라는 핑계로 3km도 제대로 뛰지 못하던 나였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난 시간 마땅히 걸을 수 있었음에도 걷거나 뛰지 못했던 만큼을 내 두 다리로 걸어 나 자신에게 보상하고 싶었다. 그 순간부터 나의 마지막 휴가는 하나의 일정으로 채워졌다.
‘국토 대장정.’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배낭 하나 메고서 우리 국토 여기저기를 걷겠다는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 가득해진 뒤였다.
그러던 중 엄홍길 휴먼재단의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제4회 DMZ 평화통일대장정’을 알게 되었다. DMZ 155마일, 350km를 7월 8일부터 7월 23일까지 15박 16일 동안 걷는 대장정. 나는 그보다 앞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체력테스트와 면접을 치루기 위해 휴가를 사용하고, 부대로 돌아가 다시 군대에서의 일상을 소화하는 대장정을 치렀다. 그리고 이 대장정의 끝에 ‘진짜 대장정’에 대원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 휴가의 행선지가 정해졌다.
DMZ. 남북의 사이, 누구나 마땅히 걸을 수 있어야 하는 길이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길. 내겐 마땅히 걸어야 했지만 걷지 못한 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상하기 위해 이참에 나선 길이었다. DMZ와 나의 처지는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처지를 이겨내기 위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우뚝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DMZ도, 나도. 15박 16일의 짧지만은 않은 여행, 나는 그렇게 나의 마지막 휴가를 DMZ에 쏟아 부었다.
#01. 350km를 두 발로 걷기 위해 모인 사람들
7월 8일, 마지막 휴가를 나와 대장정이 시작되는 신한대학교로 향했다. 군대를 벗어나 군인이 아닌 한명의 대학생으로 대원들의 무리에 섞였다. 나는 그저 115명의 대장정 대원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115명이 강당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우린 아직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앞에서 마이크를 잡거나 단상 위에 오른 안내자들의 지시에 멍하니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 사이론 익숙한 빨간 모자가 떠다니고 있었다. 우린 행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대장정 물품을 받았다. 훈련소의 첫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랬다. 어설프게 짧게 머리를 깎은 우리들은 아직 서로를 잘 알지 못했고, 그저 빨간 모자를 쓴 훈련교관들의 지시에 맞춰 멍하니 움직일 뿐이었다.
밥을 먹을 때 훈련소에서 쓰던 포크숟가락까지 같았다. 하지만 대장정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훈련소의 훈련병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어쨌거나 350km를 두 발로 걷기 위해 스스로 모인 사람들이 아니던가.
첫날은 텐트 치는 법을 배웠고, 발대식을 연습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구호를 연습했다.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다. 도전! 도전! 도전! 대한민국 DMZ 평화통일 대!장!정!”
학생대표가 선창하고, 나머지 대원들이 따라했다. 그리고 15박 16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구호를 외쳤다. 대장정의 전체구호는 물론이고, 팀별로 만든 구호까지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하나의 구호를 외치다보면 곧 여러 개였던 목소리는 하나가 되었다. 도전, 열정, 평화, 통일 각 팀끼리 서로의 구호를 바꿔 부르며 서로 경쟁을 하듯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그래서 대장정 기간 동안 우리에게 구호는 중요했다. 350km를 걷기 위해 모였으나 350km를 온전히 다 걸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외치는 구호는 머릿속의 걱정을 잊고 온전히 나아가야 할 길에 집중하도록 해주었다. 때로는 구호를 외치는 빈도가 너무 잦아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구호는 350km를 걷는 자양분이었다.
각 지역에서 모인 서로 다른 사람들. 살아온 과정도, 살아갈 과정도 모두 다르지만 15박 16일 동안 걷게 될 길은 같았고, 같은 구호를 함께 외쳐야 했다. 그렇게 350km를 두 발로 걷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했다.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숙영지에서 텐트를 치고 잠 잘 때도, 그리고 얼차려를 받을 때까지도.
#02. 타는 목마름으로, 느껴지는 벅차오름으로
대장정을 함께 할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하늘에서도 모든 종류의 태양들이 모였는지 강렬한 뜨거움이 내리쬈다. 발대식을 하는 날부터 그랬다. 그리고 본격적인 걷기를 시작한 날의 강원도에서도 역시. 이어지는 폭염과 이제 막 걷기를 시작한 걷기 초년병들인 우리는 아직 무더운 태양 아래에서 하루에 25-30km를 걷는 것에는 걸음마 수준일 뿐이었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도, 제대로 된 자세로 걷는 방법도, 그리고 마실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까지도 미숙하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지급해주는 물은 금세 바닥이 났다. 그렇다고 새로운 물이 계속해서 지급되지는 않았다. 이미 비어버린 물통과 말라버린 목구멍. 땀은 몸의 모든 구멍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왔지만 당장에 지급되는 새로운 물은 없었다.
우린 타는 목마름으로 해파랑 길의 자전거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그 길의 옆은 논과 밭이었다. 그곳이 터전인 농부들은 찌는 뜨거움 아래에서도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운기 옆에 서계시던 한 할아버지께서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시더니 경운기 짐칸에서 물통을 하나 집어 드셨다. 그건 얼음물이었다! 우리가 지니고 있던 비어버린 물통과 할아버지 손에 들린 시원한 얼음물. 우린 걸으며 그걸 지켜볼 뿐이었다.
“와 너도 봤어? 저기 할아버지 손에 얼음물? 나도 마시고 싶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곧장 할아버지 손의 얼음물이 되었다. 그러다가 각자가 지금 마시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커다란 얼음 한가득 큰 그릇에 아메리카노 가득 부어서 으으으!!!”, “나는 수박화채!!!” 그리고 대장정 기간 초반 제공되었던 헤라클레스에 빠졌던 한 형은 “나는 시원한 헤라클레스나 두병 원 샷!!!” 이라고 이야기하며 상상이로나마 목을 축였다.
도착한 오늘의 숙영지는 군부대. 군악대가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맞아주고 안에서는 시원한 음료수를 제공해주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는 음료수를 당장에 들이마셨다. 하루 동안 땀으로 범벅된 몸을 쉬게 해줄 곳. 현역 군인이었지만 군부대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정말 꿈에도 알지 못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세면장에서 샤워를 할 시간도 주어졌다. 시간은 15분.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8개 정도의 세면대에서 씻기 시작했다. 비누는 없었고 팀원 형이 요원 몰래 챙긴 샴푸가 고작이었다. 그래도 그 샴푸로 머리와 몸에 대충 묻히고 몸을 씻어냈다. 가지고 있던 치약으로 땀으로 찌든 옷에 묻혀 빨래도 했다. 그리고 갈증이 사라지지 않아 샤워호스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기까지 했다.
물을 마시고 싶을 때 마실 수 있음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15분이면 능숙한 셰프가 냉장고 속에서 재료를 꺼내 음식 하나를 뚝딱 만들기도 했지만 대장정 대원들이 씻고 빨래하고 목까지 축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