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숙의 시와 그림] 법정스님, 백석시인이 머무는 그곳 ‘길상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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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최명숙 시인] 그에게 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여기에 와있어요. 와서 차 한 잔 해요”

짧은 전화 한통, 온다고 미리 약속을 했던 사람처럼

그가 말했습니다.

비가 내린 근래 사나흘 동안은 퇴근 무렵이 되면

전철 들어오는 소리에 묻혀가는 빗소리처럼

골목어귀에 서서 하염없는 비에 젖던 가로등처럼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그가 문득 문득 스쳐 가곤 하였습니다.

그를 만나러 가는 넓지 않은 성북동 길에는

넝쿨장미 만발하여 저녁 빛이 더욱 붉었습니다.

타박타박 사람들은 시내 쪽으로 내려가고

회화나무 밑에서 네 살 쯤 되어보이는 어떤 아이와 노는

먹빛 제복의 그가 보였습니다.

아이엄마는 사제시절에 가르치던 초등학생이었는데

벌써 엄마가 되어 찾아왔다고 해설피 웃으며

그가 소개하는 젊은 부부에게

해그림자 곱게 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웃음 위에는 쓸쓸함이 내렸습니다.

뒷짐 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난치며 걸어가다가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아이와 그 사람

아이는 어딜 가고 그의 곁에는 다른 한 사람이 서있었습니다.

보여주고 싶어도 끝내 보여줄 수 없었다던

그 마음에 저녁바람이 서성였습니다.

바람이 간 자리에는

장미꽃잎이 나풀거리며 떨어졌습니다.

꽃잎만 분분히 날리는 길 위에

그와 나란히 앉았습니다.

붉은 꽃잎처럼 떠난 사람보다 더 그리웠을지도 모를 그는

차마 사랑이라 말하지 못할 마음 하나를 또 얹어 주었습니다

비우며 묵묵히 살아온 삶,

또 비우며 살아가야 할 그의 길에서

언제나 그렇게 동행이 되어 있었습니다

 

’11월을 보내는 최명숙의 시 한 편’ 중에서(사진은 늦가을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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