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헬렌·스코트 니어링, 김옥라·라익진 부부의 ‘날마다 아름다운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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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날마다 아름다운 죽음을 살고 싶다>는 자원활동가 김옥라(金玉羅) 박사의 생애사(生涯史) 제목이다. 김옥라 장로 가족과 친지들이 9월 27일 오후 7시 연세대 동문회관 대회의실에서 출판 감사예배를 드렸다. 9월 27일은 98회 생신이었기에 아들 네 분과 자부들이 모여 생일 축하잔치도 겸했다.

청현문화재단의 여성생애사 구술채록(口述採錄) 총서(002)로 발간된 <남마다 아름다운 죽음을 살고 싶다>는 2014년 5월 7일부터 7월 1일까지 8차(17시간 38분)에 걸쳐 김옥라 박사의 생애를 인터뷰하고, 이 기록을 기반으로 관련 자료 조사, 역사적 사실 확인을 거쳐 2016년 1월 15일부터 2월 28일까지 4차(8시간 15분)의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여 완성했다. 317쪽에 달하는 구술채록이다.

‘이 세상 살아갈 이유를 찾는 이들에게’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김옥라 박사는 “사람은 살아온 것처럼 죽어간다고 했거든요. 우리가 날마다 아름답게 살아야지, 그것이 연속적으로 해서 죽어도 삶과 죽음 사이에 돌연변이는 없다는 거죠”라고 기술했다. 그는 “스카우트 창시자인 영국의 로버트 베이든-포웰경이 ‘네가 태어날 때보다 네가 떠날 때에 이 세상이 조금 나아지도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했거든요. 어려운 시절 공부하면서 도움 받은 사람과 세상에 조금이라도 빚 갚는 마음으로 앞으로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날마다 기도해요”라고 했다.

김옥라 박사는 1918년 9월 27일 강원도 간성에서 태어나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감리교신학교와 일본 교토 도시샤(同志社)여대 졸업 후 귀국하여 1945-50년 문교부와 외자청에서 일했으며, 1947년 무역협회 재직 중이던 라익진 선생과 결혼하여 아들 넷을 출산했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도시샤여자대학에서 명예문화박사학위, 실천신학대학원대에서 명예실천신학박사학위를 영득했다.

김옥라 선생은 북한의 6·25전쟁 중에 한국걸스카웃을 재건하여 1960년대 한국 걸스카웃이 세계연합회 회원이 되어 우리나라 소녀들이 외국 소녀들과 국제교류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70년대에 대한기독교여선교회 전국연합회 회장, 1981년에는 세계감리교여성연합회 회장직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1986년 김옥라 박사는 남편 라익진 박사의 재정 후원으로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를 설립하였다. 라익진 박사가 별세한 후 1991년 라익진 박사의 아호인 ‘각당’(覺堂)을 따서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Kakdang Social Welfare Foundation)으로 명칭을 바꾼 뒤 오늘까지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라익진·김옥라 부부는 우리나라의 복지사회 건설에 크게 공헌했다

현재 각당복지재단 이사장으로 봉사하는 막내아들인 라제건은 미국에서 은행에 근무하던 중 아버지 권유로 귀국하여 동아무역에서 근무하던 중 동아알루미늄(주)을 창업했다. 현재 동아알루미늄(주)는 종업원 수가 100여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지만 전 세계 텐트 폴(pole)시장의 90%를 석권하는 세계 1위이다. ‘정직’과 ‘사랑’은 가풍으로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다.

각당복지재단은 인류애 정신에 입각하여 우리 사회에 자원봉사정신을 심어 봉사활동을 펼치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죽음준비교육을 실시하고, 말기환자를 보살피는 호스피스운동을 전개하여 사랑의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각당복지재단 산하에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1986년 설립), 무지개호스피스연구회(1987년),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1991년), 지구촌문화연구회(2010년) 등을 개설하여 자원봉사자를 육성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교육을 이수한 봉사자 수는 1만명에 달한다. 각당복지재단은 김옥라 박사의 평생에 걸친 사회복지활동이 집약된 결실이다.

김옥라 박사는 대통령표창(1999), 국민훈장동백장(2007), 서울시민대상, 용신봉사상, 비추미상 대상 등을 받았다. 저서에는 <한국 자원봉사의 길잡이>, <삶과 사랑과 죽음>, <하나님께 이끌리어>, <걸스카웃 나의 사랑> 등이 있다. 번역서에는 <자원봉사 사랑의 공동체>, <호스피스>, <죽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 <홀로된 이를 위하여> 등이 있다.

라익진 박사는 철저한 생활관리와 운동으로 건강을 지켰다. 그러나 1990년 8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부터 심장에 통증을 호소하여 김옥라 박사는 남편을 설득하여 요양 겸 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갔다. 도교에서 지인이 빌려준 작은 아파트에서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했으나, 간경변증(肝硬變症 hepato cirrhosis)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병세는 나쁜 상태였다. 김 박사가 잠시 병실을 비운 사이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남편을 보낸 후 ‘황망한 죽음이란 이런 것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옥라 박사는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몇 달간 외출을 하지 않고 수없는 밤낮을 눈물로 기도했다.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세상 사람은 예외 없이 다 죽는데 죽음을 탁상 위에 놓고 공론에 붙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계획한 수많은 구상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로 자리를 잡았다.

1991년 3월 19일 김옥라 박사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발족하여 회장을 맡았고, 공덕귀 여사(故 윤보선 대통령 부인)와 박대선 前 연세대총장이 고문이 되었다. 모임을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인 6월 13일 김동길 연세대 교수와 김인자 서강대 교수(한국심리상담연구소장)를 강사로 모시고 기념강연회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었다.

요즘은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인식이 부드러워졌지만, 당시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불편한 일이었다. 그러나 1000명이 넘는 청중이 모인 강연회의 반응은 뜨거웠으며, 각박한 세상에서 외롭게 삶과 죽음을 견디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김옥라 박사는 호스피스(hospice) 봉사자들에게만 하던 ‘죽음 준비 교육’을 일반인들에게도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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