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국왕과 하토야마 전 총리의 전후 70년 사과···일본 양심과 손 잡고 함께 나아가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아베 담화’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보다 ‘교묘한 말장난’ ‘과거형·3인칭 사죄’ 등의 비판이 압도적이나 박대통령의 대일 메시지에 대해서는 “예상보다 차분했다”는 반응이다. 정부 소식통은 아베 담화가 “꼼수 투성이란 점을 세상이 다 안다”며 “우리가 정색하고 떠드는 순간 아베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했다.

아베 담화가 3인칭 사죄라는 말장난을 할 수 있는 것은 부착어(附着語)인 한국어와 일본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주어를 내놓지 않고 말이 시작되어 형용사와 부사를 길게 늘어놓은 다음 마지막에 동사가 나온다. 굴절어(屈折語)인 구미어는 반드시 주어가 앞에 나오고 서술어가 뒤따르며 접속절이 뒤따른다. 주어가 불분명해서는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고립어(孤立語)인 중국어도 어순은 주어, 서술어 차례이나, 표의문자로서 글자 하나에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어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넘어갈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사람이 구미어를 배우는데 어려운 이유다. 아베 담화는 구미인이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웅얼웅얼’하는 소리다.

아베와 달리, 아키히토 일왕은 종전 70주년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앞선 대전(태평양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아베와 달리 ‘깊은 반성’을 직접 언급하였다. 일왕이 깊은 반성을 언급한 것은 1992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와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방일 때 두 차례다. 더욱이 일왕이 전몰자 추도식에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깊은 반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일왕은 이 추도문을 직접 썼다고 한다. 아키히토가 아베의 면전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은 그 의의가 간단치 않다. 일왕은 전후 일본의 평화와 번영이 “평화의 존속을 소망하는 국민의 의식에 힘 입었다”고 하여 평화헌법의 유지가 중요하다는 것도 명확하게 밝혔다. 아키히토 일왕은 국사(國事)적 행위에 내각과는 다른 입장을 밝히는 행보를 공개리에 취한 것이다.

아키히토의 생각은 부친 히로히토와도 다르다. 히로히토가 전범으로 처단되지 않은 것을 두고 말이 있으나, 히로히토의 생각은 그 시대 일본인들의 생각을 대표한다. 아키히토는 이 시대 일본인의 생각을 대변한다. 아베 신타로는 조슈 군벌의 적장자라는 시대착오적 소수자를 대변한다. 아베는 보수언론에 의해 뒷받침되어 힘을 받고 있으나 평화헌법을 지키자는 일본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하여 무릎을 꿇었다. 마치 브란트 수상이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무릎을 꿇은 것을 연상케 한다. 아키히토와 하토야마는 아베 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양식을 가진 일본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어 보여준 것이다. 한국인은 이러한 일본인들의 인정과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키히토 일왕은 자신의 피 속에 백제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혈연적 연대가 아니더라도 한국과 일본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숙명을 가진 나라로서 화해친선의 공동의 미래를 향해나가자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양식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건설적 미래를 모색하자. 과거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일본인은 줄어들고 있다. 아베는 후세에까지 속죄를 하는 부담을 덜자고 한다. 이것은 ‘시간은 자기편이다’는 속셈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사실은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일본인에 각인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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