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 vs 오다·도요토미·도쿠가와 ‘3인’ 비교해보니···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일본의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3인의 특성을 비교하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제 김영삼(YS), 김대중(DJ), 김종필(JP) 등 3김을 그에 견주어보자.

YS는 오다 노부나가다. “꾀꼬리가 울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고 할 만큼 직정적이고 공격적이다. 하나회 숙정, 금융명제 실시는 DJ도 JP도 못한다. 하나회를 숙정했기 때문에 한국정치에서 군부의 개입 가능성이 사라졌다.

오늘날 정치가 이만큼이나마 맑아진 것은 금융실명제 덕분이다. 고관대작들은 누구나 국회청문회를 의식하여 조심하게 됐다. 사회는 불가불 그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을 초래한 그의 몰락은 아께찌 미쓰히데에게 반역을 당한 노부나가와 같이 어이없는 것이었다.

DJ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그는 노부나가의 짚신을 품에 않은 히데요시처럼 간난신고(艱難辛苦) 끝에 대권에 올랐다. 호남인으로서 그가 당한 고초는 YS와는 비교도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히데요시와 같이 상인의 재능으로 현실을 읽고 어려움을 극복해왔다.

IMF사태를 극복한 것은 DJ의 협상력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을 후계로 세웠다가 풍비박산된 것은 이시다 미쯔나리에 히데요리를 맡긴 것과 같이 우둔한 짓이었다.

JP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그는 비록 대권은 차지하지 못하였으나, 그가 남긴 족적은 도쿠가와 막부와 같이 오래 계속될 것이다. 5.16의 성공은 박정희와 같은 정도로 그에게 힘입은 바 크다. 그는 5.16을 기획하였다. 혁명공약은 그가 만든 것이다.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제거는 그의 이니셔티브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장도영은 죽기 전에 “박정희와 김종필에게 아무 유감이 없다는 것을 알려 달라”고 하면서 갔다고 한다. 폭풍과 같은 혁명의 진행과정에서 자신의 희생은 불가피하였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JP의 최대의 공은 한일국교정상화다. 한국의 산업화가 박정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한일국교 정상화를 이루어낸 JP는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한일국교정상화를 두고 녹록치 않은 일본과 미국의 지도자들과 벌인 JP의 외교 행적은 압도적이다. 이래의 한국의 발전은 여기로부터 시작된다. 그 발전추세는 주춤하지만,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JP를 후계로 삼지 않고 10월유신을 벌린 것은 박정희의 비극이었다. 박정희의 모든 功이 여기에 파묻힌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동서고금에 진리다. JP가 박정희를 잇게 되면 자신이 불안한 자들에게 휘둘린 점도 있겠지만, 유신으로 인한 국가사회의 파행 책임은 궁극적으로 박정희에게 있다. 5.18도 결국 박정희에 의해 뿌려진 모순이 폭발한 것이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결국 박정희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악역을 맡은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광주 5.18 전야제에 참석하지 못하고 쫓겨 왔다. 광주의 원(怨)과 한(恨)은 언제까지 이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계속돼야 하는가? YS, DJ, JP가 모두 여기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나, 이를 푸는 것은 현재를 책임지고 있는 여야 정치인의 몫이다.

3김 가운데 가장 오래 남은 JP에게 운정(雲庭)과 같은 넓고 포근한 지혜를 구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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