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유고’ 등 북한 급변사태 대비 시나리오 준비돼 있나?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북한의 급변사태는 “북한체제가 붕괴 또는 해체되어 북한을 통제하거나 책임질 수 없는 상태가 도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상황은 김정은의 유고 후 과도체제 혹은 후계체제가 정착되지 못하고 군부 쿠데타나 민중항쟁의 폭발 등으로 북한체제가 마비상태에 이르는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 급변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이러한 사태 하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비하고 준비돼 있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주의할 것은 김정은의 유고는 북한에서 중대 사태이기는 하나 이를 바로 급변사태로 규정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비록 유례없는 절대 독재권력을 행사하고 있기는 하나 북한체제가 김정은 혼자만으로 유지?운영되는 것은 아니며, 당?정?군의 엘리트들에 의한 집권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의 붕괴는 단순히 김정은 개인만이 아니고 김정은 체제의 해체를 가져오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파장이 예상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러한 북한 급변사태를 상정하면서 유의해야 할 것은, 우리의 희망을 투사(投射)하여 북한의 현실 내지 진행방향을 과장 또는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정확한 정보와 합리적인 예측에 의거해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이에 입각한 냉철하고 현실적인 대책 강구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북한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그대로 방관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제3자가 아니며 북한의 급변사태가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 결정적인, 그리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는 예측과 더불어 이 상황을 어떻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작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최종적으로 북한 급변사태가 한민족의 통일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수렴될 수 있도록 끌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변화가 완만하며 나름대로 북한 집권세력이 이를 수습하면서 중국식의 개혁, 개방 모델로 가는 과정을 밟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상당히 오랫동안 북한체제가 계속되면서 남북한의 분단상황이 연장되는, 즉 통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발계획은 문자 그대로 우발계획으로서, 비록 예측과 전망은 북한의 현실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하더라도, 만의 하나, 즉 매우 확률이 낮은 상황이 도래할 경우도 상정하여 그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국가경영의 기본이다. 물론 그러한 우발계획의 전제와 가정이 최대한 현실에 근접하고 적확해야 하며, 혹시라도 과도한 상황을 가정하여 여기에 국력을 불필요하게 집중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가도 경계하고 가다듬어야 한다. 즉,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은 단순한 사태대처 계획이 아니고 한민족 통일과 민족 전체의 번영이라는 큰 그림을 바탕으로 한 대전략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아래 통일을 위한 전단계로서의 급변사태 대비계획을 준비하면서 명심해야 할 명제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통일 과정에서 외세를 끌어들여서 또는 외세가 개입해서 우리 내부의 문제를 국제문제로 비화시킴으로써 민족 분열을 항구화시키는 것이다. 구한말 집권세력 내부의 분열이 결국 청군을 끌어 들였고 이를 빌미로 일본이 개입하여 한일합병의 단초를 제공하였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여서는 안 된다. 내부의 이단적인 요소들에 의해 우리 민족이 분단되고 한반도가 또 다시 강대국 세력정치의 마당이 되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계하며,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외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배제하는 자세와 준비도 갖추어야 한다.
둘째, 남북관계가 또다시 동족상잔을 초래하는 상황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6.25전쟁으로 인한 남북간의 희생과 분단은 실로 우리민족에 깊은 상흔을 남겼으며 이를 치유하는 데는 너무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독일 통일의 교훈도 우리에게 이 점에서 타산지석이 된다. 독일 분단이 독일민족 내부의 문제가 아니고 2차대전 패전 이후 4대강국에 의한 타율적인 분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민 내부의 상흔이 이처럼 오래 지속되고 있다. 이는 앞으로 설사 통일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동족상잔의 비극은 어떻게든 피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힘을 바탕으로 하는 외교, 즉 한미동맹 등을 배경으로 급변사태를 수습하고 이를 통일로 이끄는 계기로 발전시키는데 가장 중요하고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외교이다. 주변국은 급변사태 상황이 도래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돕기보다는 자국의 국익에 이용하려할 것이다. 한미관계가 약화되는 것처럼 보이면 일본이 독도문제를 들고 나오듯이, 또는 중국이 이어도 문제를 들고 나오듯이, 우리에게 허점이 보일 때 이를 이용하려는 주변국의 기도와 책략은 아무리 경계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우리는 결코 저들의 ‘우호협력관계’ 또는 ‘동반자관계’라는 외교 수사에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북한 급변사태에 대처하고 통일로 향해 가는 길에 독일 통일과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다. 콜 수상이 미국의 조지 부시(父) 대통령의 이해 아래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대협상을 타결하고 그 배경 하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협조를 얻어 통일을 이루었듯, 그러한 대전략 차원과 속도와 면밀함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한 준비는 지금까지도 해왔다고 볼 수 있지만 앞으로 더욱 이 방향에서 외교 및 국력 발휘 역량을 키워야 한다.
특히 중국과는 사전에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차원에서 향후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면서 서로의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은 중국에 대해 생필품을 비롯하여 경제운용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나진 선봉지구에 대해 사실상의 조차 및 주요 항구와 철도 등 전략적 주요 지점을 차지해 나가면서 북한이 위태로울 때 이를 구실로 북한을 동북의 제4성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게 중국전문가들의 우려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중국을 포함 주변국을 상대하기 위한 미국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점에서 한미동맹은 주변국의 불필요한 개입을 방지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다. 지금까지의 대북억제 차원을 넘어, 급변사태라는 혼돈사태를 맞이하며, 더욱이 중국과 맞상대를 해야 될지도 모르는 위급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의의와 효용성은 더욱 증대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