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현대사 6대사건 ④한일배상청구권] 日정부 위안부·강제노동 배상 ‘모르쇠’···국제사회 비난 자초

[아시아엔=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강제노동 피해자’ 등의 개인 배상청구권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배상 및 청구권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는 외무성과 주한 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다. 핵심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 2국간 조약에 따라 청구권 문제를 일괄적으로 타결했으며, 이때 개인 청구권도 함께 처리해 법적으로는 사안이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전쟁이 끝난 후 경제적으로 피폐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서는 거액의 배상금 등을 지불하는 등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성실하게 대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에 의한 자국민 피해엔 배상요구 ‘이중잣대’

일본의 전쟁 배상과 청구권 문제는 냉전을 배경으로 미국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미국은 일본 점령 초기에는 준엄한 대일배상정책을 취했다. 1946년 11월 공표된 폴리 사절단의 ‘대일배상 최종보고서’는 침략국인 일본의 국민이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으며, 일본의 공업시설을 철거하여 아시아 국가의 경제부흥에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냉전이 진행되고 일본이 미국의 안보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일본의 경제부흥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게 된다.

일본의 전쟁배상문제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1951.9.8 조인, 1952.4.28 발효)을 통해 처리되었다. 조약의 특징은 ‘강화 내용이 일본에 대해 매우 관대하고’ ‘일본책임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①징벌적 성격의 거액배상이 아니라 일본이 지불 가능한 금액의 배상을 요구했고 ②현금배상 대신 설비철거에 의한 실물배상이나 역무배상(役務賠償)을 기본으로 했으며 ③승전국에 의한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일본과의 교섭을 통해 배상액과 내용을 결정하는 등 일본에게 유리한 내용이었다.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은 일본을 국제사회로 복귀하게 만들었지만, 많은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일본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중국과 한국은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동남아시아 각국은 이 지역에서 압도적인 패권을 확립한 미국의 냉전정책에 동조하여 일본에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사례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에 인도네시아 정부 대표로 참가했던 스바르죠 외교부장관은 아래와 같이 명확하게 일본의 점령 책임을 묻고 배상을 청구했다.

“우리 정부는 배상의 무거운 짐을 일본인의 양 어깨에 부과하여 일본 및 일본국민에게 부당한 곤란을 주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인도네시아 정부를 위해서 인도네시아 점령기간 중의 일본국민 및 그 행동으로 인한 우리들이 지금도 광범위하게 겪고 있는 여러가지 곤란과 결핍 및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재건 및 부흥의 지연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조약서 첫 단추 잘못 꿰···미국도 ‘일말의 책임’

인도네시아는 일본과 교섭을 시작하면서 희생자 400만 명, 피해액 175억 달러로 추계되는 배상을 자본재와 서비스(역무)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는 이는 일본의 GNP에 필적할 만한 액수로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14조 위반이라며 거부했다. 강화조약 14조는 일본의 경제가 일본이 전쟁으로 끼친 피해와 고통에 대해 완전한 배상을 하거나 채무를 이행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승인했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당초 요구액의 1/80 수준인 2억2308만 달러와 20년간 4억 달러의 유상자금 협력 등을 포함하여 총액 약 8억 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에서 제공받는 것으로 평화조약 및 배상협정에 조인했다.

강화조약과 양국 간 조약 등에 의해 개인청구권을 포함한 배상 및 청구권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으며, 경제협력을 통해 아시아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는 일본 정부의 자화자찬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주장인 것이다.

일본 정부는 국가 간 조약 등에 의해 개인의 청구권도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고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대법원도 2012년 5월 강제동원 피해자의 청구권 문제가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일본 정부 주장에 대해,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한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전쟁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도 2007년 4월 일본 대법원이 니시마츠(西松)건설 중국인 노동자 강제동원 소송에서 “중일공동성명으로 중국 국민은 배상청구권을 상실했다”고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류젠차오(劉建超) 외교부 부장조리를 통해 “중일공동성명에 대한 일본 대법원의 해석은 위법으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소련에 의해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던 일본인이 “일본 정부가 소련에 대한 청구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소련으로부터 강제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며 일본 정부에 보상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즉 “일본 정부가 포기한 것은 외교적 보호권이지 개인의 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며 개인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의 개인 청구권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와카미 시로(川上詩朗) 변호사는 2007년 4월 일본 대법원이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의 청구권 ‘포기’와 관련해 “청구권을 실체적으로 소멸시키는 의미가 아니라 재판을 청구할 권리를 소멸시킨 것으로 판단했다” “이 법리를 적용하면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게 개인보상을 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1998년 4월 일본 야마구치(山口)지방법원 시모노세키(下關) 지부는 1심 판결에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3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본 국회가 배상입법을 할 의무를 게을리했다”며 “입법에 의한 피해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게 개인보상을 하는 것과 관련해 한일 청구권협정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발생한 개인의 피해를 해결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지와 정치적 결단이다. 일본 정부가 강화조약과 청구권협정 뒤에 숨는다고, 또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일본 정부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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