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 ‘PD저널’ 종간 “음란서생과 ‘사관’ 사이서 수고했소”

슬픔의 만사가 아니라 새 출발의 고사를 올릴 때

[아시아엔=정길화 MBC 시사제작국 책임프로듀서] 한국피디연합회가 발행하는 미디어전문지 <PD저널>이 창간 27주년 기념일(1월25일)을 앞두고 지령 879호로 종간했다. 종이신문의 발행이 중단되고 이제는 온라인 매체로 주력한다고 하니 ‘체제변경’ 혹은 ‘발전적 해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제호의 디자인을 바꾼다고 하니 종이신문 <PD저널>은 역사에서 종언을 고하는 셈이다.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서 집행부가 굳이 이렇게 자기 뼈를 깎는 결단을 한 것이 눈길을 끈다.

돌이켜 보면 1988년 제호 <프로듀서>에서 시작하여 <프로듀서연합회보>와 <PD연합회보>를 거쳐 <PD저널>로 이어온 27년 성상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타블로이드 월간지에서 신문형 대판으로 그리고 격주간에서 주간지로 발전한 <PD저널>의 뒤안길에는 한국방송의 영욕과 이 땅의 방송PD들이 걸어온 인고의 세월이 생생히 서려 있다. 무릇 놓친 열차는 아름답고 사라지는 것들은 비장하다.

지나온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PD들은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의 신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방송민주화와 한국 방송 창달을 위하여 청춘을 초개처럼 내던졌다. 1990년 KBS 4월 투쟁과 1992년 MBC의 방송민주화 투쟁은 역사적 변곡점이 되었다. 그 후 1990년대를 관통한 비상한 국면에서 <연합회보>는 PD들의 열정과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격정의 통로가 되었다. 1997년 절차적 민주주의의 도래 이후에는 PD집단의 내부를 응시하고 시민사회 단체와 소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007년 제호를 <PD저널>로 변경했다. 이때부터는 매체의 기관지적 성격을 생산적으로 극복하고 깊이 있는 방송비평전문지를 모색하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이미 민주 대 반민주의 단극적인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의 땅거미가 외연을 확장하는 차원으로 변했다. PD연합회의 활동폭도 투쟁에서 정책과 대안으로 바뀌었다. PD연합회가 집중하는 주요 아젠다는 디지털 전환, 플랫폼의 위기, 신뢰성의 위기, 경영의 위기 등으로 심화됐다.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 땅의 방송이 처하는 위기는 그 중추인 PD집단의 위기로, 이는 또 그들의 구심체인 PD연합회의 위기로 수렴된다. 이 도미노의 마지막 줄에 매체로서의 <PD저널>이 서 있다. 마침내 <PD저널>이 종이신문을 포기하고 온라인의 전사가 되고자 하는 것은 작금 방송계의 여러 국면이 실로 지난(至難)함을 웅변한다. 애시당초 공중전을 하던 PD들이 활자매체라는 지상전으로 내려왔다가 종내에 인터넷 공간으로 가서 아마겟돈의 한판을 치르게 될 것이다.

거칠게 보면 PD의 전신은 중세의 사관(史官)이 된다. 패관이 흥행에 몰두하면 음란서생의 6전소설가가 되고, 사관이 권력과의 긴장관계를 실패하면 타락한 선비가 되어 역사를 어지럽힌다. 당대의 사회에서 한결같이 대중을 위무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무대 뒤 PD들의 몫이 아니었던가.

창간 27년 만에 오프라인 매체 <PD저널>은 한 세대에 걸쳐 PD들의 반려였고 방송계의 파수꾼을 자임했다. 지금은 <PD저널>의 종간을 슬퍼하는 만사(輓詞)가 아니라 새롭게 태어날 ‘변신 합체’의 신병기에 대한 고사(告祀)가 필요하다. 잘 가라. <프로듀서>, <프로듀서연합회보>, <PD연합회보>, <PD저널>. 한 세대를 풍미하고 사라지는 종이매체에 대한 고별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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