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인가 최첨단 IT 기업과 금융가에서 남들의 부러움을 사며 일하는 젊은 후배들의 표정에서 짙은 그늘을 보곤 한다.
손가락 몇 번 튕기면 복잡한 시장 분석 보고서가 나오고, 사업 전략도 인공지능(AI)이 대신 짜주는 놀라운 시대가 되었건만, 그들의 입에서는 “허무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고백이 흘러나온다.
AI가 가져온 변화는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경제적 불안에 그치지 않는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던 ‘과정의 온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티격태격 논쟁도 하고, 쓸데없는 잡담에 껄껄 웃기도 하며 함께 밤을 지새웠다. 그 어수선하고 왁자지껄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와 너’라는 공동체를 경험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에게 묻고 협력하는 대신 모니터 속 AI에게 질문을 던진다. AI는 지치지도 않고 답을 척척 내놓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교감과 온기는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내가 직접 땀 흘려 고민하지 않고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무리 훌륭해도 온전히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나라는 존재가 없어도 세상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갈 것만 같은 실존적 외로움. 이것이 이 시대 지식노동자들이 느끼는 허무와 우울의 한 원인은 아닐까.
최근 현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눈에 띈다. 화면 속 데이터와 씨름하던 이들이 퇴근 후나 주말이면 도자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흙을 만지며 손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아날로그 취미에 몰두한다. 손으로 실을 다루며 뜨개질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 모습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추상적인 컴퓨터 화면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은 결국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체’를 갈구한다는 점이다.
아날로그적 온기를 찾는 움직임은 단순한 여가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차가운 기술의 시대에 인간으로서의 감각과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일 수 있다.
우리는 속도와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효율성이라는 잣대 속에 인간의 온기마저 구겨 넣을 수는 없다.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우리가 열광하는 것은 모든 판정이 기계처럼 완벽해서가 아니다. 선수들의 땀방울과 인간적인 실수, 그 안에서 피어나는 드라마 때문이다.
우리의 일과 삶도 마찬가지다. 조금은 비효율적이고 어수선할지라도 사람과 사람이 눈을 맞추고 함께 고민하는 그 ‘중간 과정’이야말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양분이다.
그렇다면 기술의 거센 물결 속에서 어떻게 인간적인 삶의 온기를 지켜낼 수 있을까. 기술을 거부하자는 뜻은 아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 삶의 주인은 여전히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AI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에 곁에 있는 동료의 안부를 먼저 묻는 작은 배려, 정답만을 향해 돌진하기보다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모니터 밖의 세상을 내 손으로 만지고 호흡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사람의 따뜻한 눈빛을 대신할 수 없고,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며 느끼는 가슴속 뭉클함까지 만들어낼 수는 없다.
세상이 아무리 차갑고 눈부시게 변해가더라도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한 줄의 정교한 코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온기다.
오늘 하루,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한 번 더 따뜻하게 잡고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것.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가장 인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