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박진이 칼럼] 솔직함이라는 착각…존중과 책임의 경계는?

권력의 정점에 가까운 조직일수록 위계는 선명했고, 그 위계 속에서 예의와 무례의 경계는 종종 흐려지곤 했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을 ‘카리스마’로 포장하는 조직이 있었고, 반대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 없이 드러내는 것을 ‘솔직함’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본문에서 <AI 생성이미지>

얼마 전 우연히 예의와 무례에 관한 짧은 글을 읽었다. 짧았지만 오래 곱씹게 되는 글이었다.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들, 그 상당수는 결국 예의와 무례의 경계가 흐려진 자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덮고 나서 자연스럽게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렸다. 삼십 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며 마주했던 수많은 조직과 사람들,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권력의 정점에 가까운 조직일수록 위계는 선명했고, 그 위계 속에서 예의와 무례의 경계는 종종 흐려지곤 했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을 ‘카리스마’로 포장하는 조직이 있었고, 반대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 없이 드러내는 것을 ‘솔직함’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얼마 전에 그만둔 감사 업무를 맡으면서 그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조직의 크고 작은 문제 뒤에는 어쩌면 예의라는 이름으로 방치된 무례함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좀 더 넓혀 우리의 이웃인 아시아 각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유교적 전통이나 저마다의 공동체 문화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예의와 무례의 경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은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닐 것 같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단단한 계급의 벽 뒤에 숨어 직언을 가로막거나, 직급을 권력으로 착각한 고압적인 언행이 ‘선배의 지도’라는 허울 아래 용인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개인의 감정 표출을 절제하고 겉과 속을 구분하는 문화로 알려진 일본에서는 마땅히 교정되어야 할 업무적 잘못조차 돌려 말하다 보니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거나 은밀한 배척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무례가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관계와 체면, 곧 ‘꽌시(關係)’와 ‘미엔즈(面子)’를 중시한다고 알려진 중국의 경우도 비슷한 결을 가졌을지 모른다. 겉으로는 존중을 표하면서도 상호 관계의 실리가 틀어지는 순간, 상대를 배척하거나 명분에만 집착하며 실질적인 책임과 소통을 피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수평적이고 온화해 보이는 동남아시아의 조직 문화 밑바탕에도 비슷한 균열이 있을 수 있다. 타인과의 갈등을 꺼리는 태도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일지 몰라도, 필요한 조언이나 직언을 뒤로 미룬 채 방관하는 ‘방임형 무례’로 변질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밖에서 바라본 짐작에 가깝다. 다만 형태는 저마다 달라도, 위계에 갇혀 타인의 인격을 짓밟거나 체면과 관계에 갇혀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소통을 외면하는 것이라면 그 본질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리더의 무례함은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 리더의 본분은 목표를 향해 조직을 이끌고 업무를 지시하며, 필요할 때 구성원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정당한 권한이 어느 순간 인격을 건드리는 말과 감정의 배출구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도 모르세요?”라는 반문 속에는 상대의 무능을 확인하려는 마음이, 자신의 실수를 상황과 남 탓으로 돌리는 태도 속에는 책임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카리스마로 착각한다면 조직의 신뢰는 조금씩 옅어질 수밖에 없다.

요즘 시대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물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MZ세대를 비롯한 새로운 세대의 구성원들에게 과거와 같은 무조건적인 헌신만을 강요할 수도, 강요해서도 안 된다. 다만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는 태도가 공동체에 대한 무관심이나 이기주의로 흐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구성원의 무례함 역시 권리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 일이 아닌데요”, “저한테 왜 물어보세요”라는 말 뒤에는 조직 안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스스로 좁혀버리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직에 속해 있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만 골라 하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낯선 일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이러한 순간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잡는 일은 구성원 혼자만의 몫이 아닐 것이다. 리더 역시 단순히 높은 잣대만 내밀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내가 하는 일의 의미’와 ‘조직 내에서 내 몫의 역할’을 스스로 인지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판을 짜주고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요구가 아닌 일의 가치를 설득하고 책임감을 발휘할 여지를 열어주는 것, 그것이 리더가 보여주어야 할 또 다른 형태의 존중이다.

오랜 직장생활을 거치며 개인의 편의보다 조직 전체의 목표를 우선해야 하는 순간을 수없이 겪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배운 것이 있다면 조직에 대한 헌신과 개인의 권리가 서로 대립하는 개념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그 사이에는 존중과 책임이라는 완충지대가 꼭 필요하다. 존중 없는 솔직함은 자칫 무례가 되기 쉽고, 책임 없는 권리 주장은 이기심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조직과 리더십이란 서로에게 그저 친절한 것이라기보다는 높은 기준을 요구하면서도 다름을 존중하며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서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리더에게 존중이란 요구 사항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높은 기준을 요구하되 그 방식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살피며 책임감을 발휘할 환경을 지어주는 일이다.

구성원에게도 책임이란 자신의 편의만을 앞세우지 않고 조직의 목표에 자신의 몫을 보태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갈등 속에서 우리가 진짜 지켜내야 했던 것은 단순한 규칙이나 성과만이 아니었다. 그 조직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신뢰’가 바탕이었을 것이다.

문화와 국경을 넘어 무례함이 아니라 존중과 책임이 오갈 때, 어느 국가에서든 비로소 조직은 서로를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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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이

(주)에스알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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