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영 통일한국글로벌워킹그룹 공동의장(전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이 25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국립대학교에서 ‘한국의 국가발전 전략-최빈국에서 세계 선진국으로, 그리고 통일한국 실현을 통한 글로벌 문명공동체를 향하여’를 주제로 강연한다. 이 글은 정 공동의장의 강연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발전의 네 동력인 교육,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K컬처와 통일한국 비전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의 경험을 일방적 성공담으로만 보지 않고, 우즈베키스탄과의 교육·기술·문화 협력이라는 현재의 과제까지 함께 담았다. <편집자주>

정경영 공동의장은 강연에서 1960년대 한국을 “자원도 자본도 부족했던 최빈국”으로 규정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약 100달러 수준이던 한국은 전쟁의 폐허와 빈곤을 겪었지만, 오늘날 반도체·자동차·조선·원전·인공지능 산업을 갖춘 수출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의 질문은 단순하다. 무엇이 이 같은 전환을 가능하게 했는가.
소 팔아 자식 공부시킨 부모들…교육이 첫 번째 자산
정 공동의장은 한국 발전의 첫째 동력으로 교육을 든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사람에 대한 투자가 가장 확실한 자산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부친이 소와 논밭을 팔고 창호지 가내수공업을 하며 4남3녀를 길렀고, 형과 누나들이 막내의 학업을 이끌었다는 경험이다.
그는 이런 개인의 이야기가 한국 곳곳에서 반복됐다고 본다. 부모들은 가난 속에서도 자녀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녀들은 기술자·교사·군인·기업가·공무원으로 성장해 국가 발전에 참여했다. 교육열은 입시 경쟁이라는 그림자도 남겼지만, 국가가 산업화와 정보화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인적자본을 축적한 원동력이었다.
정 공동의장은 정보통신 강국의 형성도 교육과 장기 비전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육사 출신으로 미국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한 오명 전 부총리가 TDX 국산 전자식 전화교환기 개발,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에 참여한 사례를 든다. 한 사람의 전문성과 국가 전략이 결합해 한국의 정보통신 기반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박정희의 산업화·기업가 정신·국민의 땀
둘째 축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수출 지향 산업화다. 정 공동의장은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중화학공업 육성, 도로·항만·제철·조선 인프라 구축을 한국 경제 도약의 기반으로 본다. 외자 도입과 국제협력, 한일 국교 정상화, 베트남전 파병 등을 통해 산업화의 종잣돈과 시장을 확보했다는 해석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기획원과 산업 부처의 기술관료, 이병철·정주영으로 상징되는 1세대 기업가, 산업현장 노동자와 해외 파견 광부·간호사들이 함께 움직였다고 그는 평가한다. 국가의 방향, 관료의 기획력, 기업의 도전, 국민의 노동이 맞물렸다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소련·중국 수교, 이명박 정부 시기의 자유무역협정 확대도 경제 영토를 넓힌 정책으로 짚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 역시 위기 극복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적 참여의 사례로 제시했다. 다만 국가발전은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정책의 성과가 아니라, 여러 시대의 선택과 사회 구성원의 축적된 노력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강연의 큰 흐름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경제성장의 토대
정 공동의장은 자유민주주의를 국가발전의 ‘무형 자산’으로 규정한다. 입법·사법·행정의 견제와 균형,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인권과 인간 존엄의 보장이 경제 발전과 사회 신뢰의 바탕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가 4·19 혁명, 1987년 6월항쟁 등 긴 투쟁을 거쳐 발전해왔다고 설명한다. 권위주의 시대의 시련과 민주화의 진전이 동시에 존재했던 역사라는 것이다.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의무교육·한미상호방위조약, 김대중 정부의 민주주의 진전·남북정상회담·IT 산업 육성도 서로 다른 시대의 국가 과제로 제시한다.
정 공동의장은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이후의 정치 과정을 언급하며, 위기 속에서 헌법 절차가 작동하고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된 경험 역시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를 보여준다고 본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는 따로 놓인 두 과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함께 가야 할 축이라는 것이다.
K컬처, 제조업과 결합한 소프트파워
넷째 축은 K컬처다. 정 공동의장은 한국의 문화적 저력을 침략과 분단, 빈곤의 경험을 ‘신명’과 창의성으로 바꿔온 힘에서 찾는다. 농악·탈춤·사물놀이 같은 전통문화에서 K팝, 드라마, 영화, 패션, 화장품, 음식으로 이어진 문화 스펙트럼이 오늘의 한국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K컬처를 단순한 콘텐츠 산업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이 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조선 등 제조업 제품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문화와 기술, 브랜드와 시장이 서로 영향을 주는 구조가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확장시켰다는 해석이다.
통일한국, 동서양 잇는 문명의 허브
강연의 결론은 통일한국의 비전으로 이어진다. 정 공동의장은 한국의 자본과 첨단기술, 북한의 노동력과 지하자원이 결합할 경우 한반도가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통일한국은 태평양과 유라시아를 잇는 물류·에너지·문화의 연결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는 이를 ‘스마트파워 통일한국’으로 표현한다. 제조업과 기술의 하드파워, K컬처의 소프트파워,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가 결합한 국가 모델이다. 통일의 가능성과 시기는 정치·안보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통일 이후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준비는 지금부터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우즈베키스탄에 전하는 제안
정 공동의장은 사마르칸트국립대학교 학생들에게 한국의 경험을 그대로 따라 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대신 자원이 많고 유라시아 문명의 중심지인 우즈베키스탄이 자국의 역사와 조건에 맞는 발전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 분야의 전문 인력을 길러 자유롭고 번영하는 문명국가를 만드는 일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1992년 수교 이후 자동차·전자제품·광물자원·전자정부·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해왔다. 한국에 체류하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자와 유학생, 중앙아시아 고려인 공동체는 양국 관계를 잇는 사람의 기반이기도 하다.
정 공동의장이 제시한 협력의 방향은 교육과 문화 교류, 반도체 등 첨단기술과 광물자원의 연계, 청년과 전문가 교류다. 강연의 마지막 메시지는 홍익인간 정신으로 모인다.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가치를 국가발전과 국제협력의 기준으로 삼자는 제안이다.
정경영 공동의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USC에서 체계경영학 석사, 메릴랜드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국제대학원·가톨릭대·국방대 교수를 지냈고, DMZ 지휘관과 합참·연합사 정책 및 전략 수립, 대통령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저서로 <전작권 전환과 국가안보>, <피스 크리에이션: 한미동맹과 평화창출>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