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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6·25 때 한국을 돕지 않았다?”…장제스의 3만3000명 파병 제안에 미국 “대만 방어가 먼저”라며 역제안

1950년 진먼 최전방을 시찰하는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선글라스를 쓴 인물). 장제스 정부는 6·25전쟁 발발 직후 한국에 약 3만3000명의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미국에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6·25전쟁 때 대만은 우리를 돕지 않았는데,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나면 왜 한국이 대만을 도와야 합니까?”

몇 년 전 국방부 관련 세미나에서 대만 학자를 향해 한국 측 참석자가 이런 취지의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한 참석자는 “가슴이 철렁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중화민국(대만)이 6·25전쟁 때 한국을 돕지 않았다는 전제부터 사실과 달랐기 때문이다.

대만은 미국·영국·튀르키예 등 16개 전투병력 파견국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파병 의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의 남침 나흘 뒤인 1950년 6월 29일 중화민국 정부는 미국에 한국 파병 의사를 전달했다. 이튿날에는 약 3만3000명의 정예병력 1개 군단을 보내겠다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C-46 수송기 20대와 필요할 경우 항공 엄호 및 해군 호위도 제공할 수 있으며, 병력은 5일 안에 출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7월 3일에는 유엔에도 3개 사단 파병 의사를 공식 전달했다.

하지만 장제스의 군대는 한국에 오지 못했다.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 중국공산당이 대만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대만의 정예병력을 한반도로 빼내면 대만 방어가 약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국민당군이 한국전쟁에 뛰어들 경우 국공내전이 한반도로 번져 전쟁이 중국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우려했다.

역설적으로 한국전쟁은 대만의 운명을 바꿨다.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의 남침 이틀 뒤인 6월 27일 미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투입했다. 한반도에서 터진 전쟁이 중국공산당의 대만 공격을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76년이 흐른 지금 이 역사를 다시 볼 이유가 있다. 미중 갈등이 깊어지면서 ‘대만 유사시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현실적인 외교·안보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고 1950년 장제스의 파병 제안을 근거로 오늘 한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외교를 역사로 설명하려면 그 역사부터 정확해야 한다. 대만은 6·25전쟁의 16개 전투병력 파견국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 발발 직후 3만3000명의 병력을 한국에 보내겠다고 제안했고, 미국이 대만 방어와 확전을 우려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만군은 한국에 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지 않은 것과 오려고 하지 않은 것은 다르다. 그 차이를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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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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