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올레 서명숙 대표가 세상을 떠난 뒤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가 간 지도 어느덧 몇 달. 동생 동성이가 떠난 지 3주 뒤였다. 나는 그때 동성이의 소식을 접하고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먼저 간 서동성! 이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신 대표님, 동성이가 기어코 어젯밤 10시 7분에 눈을 감았습니다.” 2026년 3월 15일 이른 아침 6시 19분, 제주올레 서명숙 대표가 내게 보낸 문자였다.
“아이고, 어쩐대….”나는 한동안 할 말을 잃고 있다가 서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동철이도 가고 동성이도 갔네요. 두 딸이 좋은 곳에 취직했고,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었는데….” 말끝을 흐리는 서 대표의 목소리가 오래 귀에 남았다.
“사람은 내일을 기다리다가 그 내일엔 묘지로 간다.” 누군가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동성이의 소식을 듣기 이틀 전이었다. 나는 서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안은주 대표에게 물었더니 “서 대표는 괜찮은데 동성이 선배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곧바로 동성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몇 시간 뒤 서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건강은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은데, 동성이가 아파요.” “많이 아픈가요?” “얼마 전 서울에 백내장 수술하러 갔다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쓰러졌어요. 병원에 갔더니 간 질환에 폐결핵까지 겹쳤고, 복수가 차서 제주 병원으로 옮겼어요.”
1981년, 쉰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아버님의 마지막도 그랬다. 모든 것이 술 때문이었다. 간경화에 폐결핵, 그리고 복수가 차오르다 12월 31일 새벽 세상을 떠나셨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불과 이틀 만에 이런 전화를 받을 줄이야.
가끔 한밤중이면 동성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곤 했다. 동성이와 마지막 통화를 한 것은 두어 달 전이었다.
“언제 오실 겁니까?” “글쎄, 가을쯤 갈까?” “가을 올레축제 때 오시면 강연도 하시고, 제가 낸 길을 함께 걷는 행사도 만들어보겠습니다.” 그 전화가 마지막이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가는 길도, 주변 경관도 모른 채 난생처음 발을 들여놓는 영토.’ 죽음을 두고 에우리피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생명인지,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죽음인지 누가 아는가?” 셰익스피어는 또 말했다. “한번 들어가면 어떤 여행자도 살아 나올 수 없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말은 담담하다. “죽음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니체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고 했다. 인생이라는 길목에서 길을 찾고, 길을 내고, 길을 걸으며 만났다가 나보다 먼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 동성이에게, 부디 가는 길 평온하고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플라톤의 《향연》에 실린 글처럼 존재하기를 바란다. “바다에는 바람 없는 잔잔함을, 바람들에게는 안식을,
근심 속에는 잠을, 인간들 사이에는 평화를.” 그리고 저승이 있다면 그곳에도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길’을 만들어 놓고, 나를 기다리다 만나 함께 걷고, 그토록 좋아하던 술 한잔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삼가 명복을 빈다.
2026년 3월 16일

그로부터 3주 뒤, 서명숙 대표도 동생 동성이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뒤늦게나마 국가가 그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쁜 일인가, 슬픈 일인가. 저승이 있다면 동생 동철, 동성이와 다시 만나 평온한 길을 함께 걷고 계시기를 기원한다.
2026년 7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