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세계 4위 핵 보유국에서 비핵화 모범국가로
중앙아 최고 부국…1인당 GDP 1만3000달러
주한 카자흐스탄(이하 카자흐) 대사관은 9월 6~13일 ‘비핵화’를 주제로 사진전과 세미나를 열었다. 8월29일 ‘국제 핵실험 반대의 날’에 이은 기념행사였다. 이 날은 카자흐 정부의 제안으로 2009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제정돼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카자흐는 비핵화 모범국가다. 옛 소련 시절인 1949년 카자흐 세미팔라팅스크 지역에 핵실험장이 건설된 이후 1991년 8월 폐쇄 때까지 40여 년 간 지상·공중 핵실험 116회, 지하 핵실험 340회가 실시됐다. 그 과정에서 핵실험 피해를 뼈저리게 체험했다. 지역주민 50여 만 명이 방사능에 노출돼 암 발병률과 기형아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독립 당시 세계 4위 핵 보유국이었던 카자흐 정부는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작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카자흐의 비핵화는 국내 핵을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도 같은 조처를 취하도록 설득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세계 최대 우라늄 생산국
세계 최대 우라늄 생산국인 카자흐는 ‘핵원료 은행’을 설립하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 아래 평화적 용도로 쓰이는 우라늄을 공급하면 고농축 과정을 거쳐 핵무기를 만드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기고에서 “핵 원료의 평화적 공유가 실현되면 국가 간 유대가 강화되고 핵의 안전도도 그만큼 높아진다”며 “이 노력에 동참하는 국가들에게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역설했다.
독립 이후 카자흐의 또 다른 과제는 국가정체성 확립이었다. 카자흐는 18세기 중반부터 지속된 외세 지배로 혈연을 바탕으로 한 유목공동체가 붕괴된 데다 근대 독립국으로서 국가운영 경험이 전무했다. 민족국가 성립에 필요한 국민 정체성을 세울 기회도 갖지 못했다. 130여 민족으로 이뤄진 카자흐는 주류 민족집단이 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포스트 소비에트 국가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카자흐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4%에 불과했다.
유라시아 다민족 국가들은 대부분 국가건설 과정에서 민족분쟁을 겪었다. 체첸, 타지키스탄이 내전을, 조지아는 러시아와 전쟁을 치렀다. 카자흐의 러시아인들은 북부지역의 인구 우위를 근거로 이 지역을 역사적으로 러시아인 집단거주지라 주장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카자흐 북부 러시아인들에 대한 러시아의 내정간섭과 합병논의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 북부 아스타나로 수도 이전을 강행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의 ‘실지회복’ 운동을 차단하고 분리주의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또 북부지역에서 러시아인과 카자흐인의 인구구조를 인위적으로 개선시켰다.
김상철 한국외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신수도 아스타나 건설 사업은 카자흐인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대규모 북부지역 이주를 유도해 인구균형을 넘어 우위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포스트 나자르바예프’ 향배 관심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1995년 제정된 헌법 서문에 카자흐스탄 국가 정체성을 ‘카자흐인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는 고유의 나라’라고 정의해 다민족 공존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가안보를 약화시키거나 지역통합에 저해되는 사회조직 설립을 금지했다. 그 결과 카자흐는 독립 뒤 20여 년 간 진행된 경제·사회 체제전환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정치적 혼란을 겪지 않았다.
이런 국가체제 안정과 우라늄·석유·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카자흐는 중앙아시아 최고 부국으로 성장했다. 카자흐 인구만 보면 1700만 명이지만 관세동맹국 전체 시장은 1억7000만 명이나 된다. 중앙아시아 5개국 중 유일하게 러시아·벨라루스와 관세동맹을 체결하고 있다. 1인당 GDP는 1만3000달러 수준으로 서유럽 혜택을 받고 있는 발트해 연안국을 빼고는 독립국가연합(CIS) 국가 중 러시아 다음으로 높다.
카자흐의 고도성장에는 1993년부터 시작된 볼라샥(Bolashak) 프로그램도 한 몫 했다. 볼라샥은 ‘미래’라는 뜻의 인재양성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매년 뛰어난 인재들을 뽑아 해외에서 교육시킨다. 이들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정부나 주요 국영기업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그룹에서 부총리까지 나왔다. 이들은 2007년 닥친 경제위기에서 카자흐를 지켜낸 것으로 평가 받는다. 집값이 급락하고 외국인 투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금융기관이 부도 위기를 맞았을 때 이들은 국부펀드 등을 활용해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했다. 유럽 금융위기 속에서도 카자흐는 지난해 경제성장률 5.3%를 기록했다.
카자흐 정부는 지난해 말 ‘2050국가전략’을 제시했다. 교육·인프라 강화를 통해 자원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첨단기술 환경에 적응하겠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2017년에는 중앙아시아 최초로 세계박람회(EXPO)를 치른다.
그러나 카자흐의 앞날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건강이상설이 돌고 있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권력승계 문제가 있다. 전문가들은 차기 대통령이 예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권력공백이 생기면 정국혼란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엄구호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소장은 “카자흐 진출 외국기업들은 유사시 권력이 가족에게 승계될지, 총리·부총리 등 ‘프랜드 그룹’에 승계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현재 거론되는 둘째 사위나 딸 등 가족에게 승계될 경우 적잖은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제 불평등에 불만을 가진 이들의 급진적 행태도 잠재된 위험이다. 2000년 이래 급진 이슬람주의가 사회·정치 불만세력을 중심으로 기반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이슬람세력으로 전향하는 사람수가 꾸준히 증가해왔다. ‘포스트 나자르바예프’에 종교조직의 정치개입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