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도시’ 알마티에서 악타우까지

세계 9번째 큰 영토 카자흐스탄 횡단기

3개월간 중앙아시아 일주의 종지부를 찍으려고 다시 돌아온 알마티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했다. 알마티에 있는 중국대사관에서는 정보공개도 없이 무턱대고 중국비자를 신청할 수 없거니와 육로로 중국 우루무치에 들어갈 수 없다고만 되풀이한다. 며칠이 지나고 홍콩에서 나온 인터넷기사를 보니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인접국가의 육로국경을 잠정적으로 폐쇄했다는 거다. 며칠 동안 다른 경로와 비자, 경비 등 정보를 구한 끝에 비행기를 타고 몽골 서부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고된 여행길에 지친 몸을 다시 추스르고 카자흐스탄 북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오스크멘을 거쳐 몽골 서부 바얀울기로 들어가는 경비행기에 올랐다.

드디어 제2의 카자흐스탄이라고 불리는 바얀울기에 도착했다. 몽골 서부지역에 속한 바얀울기는 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땅, 전력이 부족해 칠흑 같은 어둠에도 가로등을 켤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지역이다. 대부분 지역주민은 카자흐인들이고, 카자흐어를 사용하며, 카자흐스탄 방송을 시청한다. 더욱이 젊은이들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옛 수도)와 아스타나(현재 수도)에서 이주민노동 또는 시민권을 획득하고 거주한다. 카자흐스탄 정부의 디아스포라 정책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카자흐스탄에서 거주했다가 적응 못하고 다시 바얀울기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무리 모진 차별을 받아도 그곳은 그네들의 삶의 터전이자 정겨운 고향이었다. 한 번도 가 본 적도 없고,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광야를 여행하는 나도, 타국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카자흐인들도, 똑같이 이방인이었다. 난 그렇게 녹록하지 않은 이방인의 삶을 공감하며 카자흐스탄의 끝과 끝을 여행했다.

생명이 없는 메마른 풀밭의 스텝지대를 가로지르는 알마티행 침대버스가 황야의 무법자처럼 지반침하로 푹 꺼진 도로 위를 질주한다. 침대기차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벗어놓았던 신발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중국 우루무치에서 출발한 침대버스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자기 빛을 쫓아 알마티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여러 대의 버스 시동소리가 알람이 되어 나를 깨워준다. 저 멀리 천산산맥(만년설)이 주는 아침공기가 상쾌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스치며 기분 좋은 발걸음을 내딛는다.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는 따가운 봄 햇살이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아롱지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여유롭게 느껴진다. 알마티가 ‘사과’를 뜻하기에 가로수가 사과나무인 줄 알았는데 도심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져있다.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보여주는 듯 거리의 전차(트램)와 시내버스 사이로 눈에 띄는 고급차량들, 천산산맥 아래 고급주택들, 야외테라스가 있는 유럽풍의 고급 레스토랑과 커피숍, 명품관을 지나며 단연 신생부유국가에 와있음을 실감한다. 또한 이주민노동자와 외국인 투자자가 물밀듯이 들어가는 카자흐스탄에 한국기업이 짓는 아파트 건설현장을 바라보며 지반이 약한 나라에 어떻게 고층아파트를 짓도록 허가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첫여름에 독립기념비(18m)가 있고 알마티에서 가장 크다는 공화국광장을 지나 천산산맥 아래를 걷는데 우리네 남산과도 같은 꼭주베(Kok Tebe, 초록봉우리)가 손에 닿을 듯하다.

독립한 지 20여 년 된 카자흐스탄에는 소비에트연방시절 행정제도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여행자를 위한 시스템이 부족하다. 며칠 묵는 관광객조차도 거주지등록이 필수이다. 식당 종업원은 외국인이라며 봉사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카자흐스탄은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영어로 된 안내판, 금융시스템, 공공시설 촬영, 유연한 출입국일자(꼭 기록된 날짜에 출입국 해야 함) 등 여행자를 위한 인프라와 서비스가 부족해 불편하고 재미가 덜하다.

스텝지대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국경수비대에서 얻어 탄 소무역상의 자동차가 카자흐스탄 서부 스텝지대로 들어간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스텝지대의 흙길 위로 심하게 요동치며 점핑하듯 달리는 차 안에서 나와 짐보따리에 흙먼지가 켜켜이 쌓인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이번 중앙아시아 일주의 목표지점이기도 한 카스피해에 도달하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오후 늦게 도착한 해상무역도시 악타우 도심에서 다시 택시로 갈아타고 카스피해로 향했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저녁하늘을 자줏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단층아파트와 호텔, 레스토랑, 건설 중인 건물들이 즐비한 광장에 서서 수평선이 보이는 카스피해를 그렇게 한참을 바라봤다. 온종일 황량한 스텝지대만을 보다가 파란 카스피해를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이고 여행의 고단함이 누그러진다.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많아 ‘제2의 중동’으로 불리는 카스피해는 호수인지 바다인지를 두고 주변국들 간에 논쟁이 많다. 그러나 단순하게 수평선, 출렁이는 파도, 고기잡이배, 유람선, 국제여객선, 이름 모를 바닷새만 본다면 바다인 것 같다. 선선한 저녁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사람들, 큰 바위에 걸터앉아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 여러 모습으로 추억을 담는 사람들에게서 행복을 느낀다.

악타우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목적지로 갈 기차표부터 확인하면서 카자흐스탄이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대륙임을 가히 실감한다. 카스피해가 있는 악타우(서부 끝)부터 알마티(동부 끝)까지 기차로 3박4일이 걸리고 일주일 전부터 예매를 해야 한단다. 알마티 기차는 이미 매진되었고, 다음 기차는 보름 정도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기에 그나마 며칠 후에 떠날 아스타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소비에트연방시절 때부터 운행한 소련제 낡은 침대기차에서 2박3일간 누웠다가 멍하니 차장 밖을 바라보는 생활이 나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반복된 생활과 중앙아시아 일주에 지친 나는 바깥 풍경만을 스케치한다. 알마티에서 어떠한 위기를 겪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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