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은 왜 총에 집착하나

*캐나다 밴쿠버에서 ‘주간동아’ 미주통신원으로 활동하는 황용복 기자가 ‘미국사회의 총기문화’를 심층 분석했습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 ①통계로 보니… ②친총(親銃)의 교조(敎條) ‘제2 보완조항’
③친총(親銃) 논리의 허와 실 ④총기 ‘문화’의 본산 NRA ⑤’총기주의’라는 종교 혹은 사교(邪敎) 등의 주제로 연재합니다. -아시아엔(The AsiaN)

인구 수보다 총이 더 많은 나라…코네티컷 참사도 ‘그렇고 그런 일’

미국의 한 총가게(버지니아 주 뉴 포트)

미국에는 햄버거 파는 맥도날드 가게가 한 개 있을 만한 동네에 총 파는 가게는 서너 개가 있다. 맥도날드 본사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역 체인점 수가 1만 4098개(2011년)이고, 전국 총가게 수(연방정부 2012년 자료)는 그 3.6배인 5만1438개다. 전국의 주유소는 14만3849개(해당 협회 2011년 자료)이니 대략 주유소 세 개가 있는 지역 안에 총가게도 하나 있다.

이들 총가게에서 총을 살 때 충동구매를 막기 위한 대기기간(waiting period) 제도를 둔 주가 전국 50개 주 중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하와이 등 11개다. 이들 주에서 총가게는 고객이 사겠다는 뜻을 밝힌 뒤 2~14일 지나서 물건을 내준다. 나머지 39개 주에서 고객은 총가게에 한 번만 들러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는데 이 때 걸리는 시간은 슈퍼마켓에서 우유를 살 때보다 10분쯤 더 길다. 총을 살 때 물건을 고르고,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서는 과정은 우유 살 때나 다를 바 없고 다만 신원조회(background check) 절차가 추가된다.

신원조회는 총을 사려는 사람이 강력범 전과나 심한 정신병력이 있는지 또는 마약중독자인지를 연방수사국(FBI)이 유지하는 블랙 리스트에서 확인하는 절차다. 그 해당자에게는 판매가 금지된다. 이 조회는 인터넷을 통해 이뤄져 즉석에서 결과가 나온다. 여기서 퇴짜 맞은 사람의 비율은 2011년의 경우 0.5 %(FBI 자료)였다. 일부 주는 FBI 신원조회 외에 주 정부가 만든 금기자 명단을 통해 한 번 더 거르는 절차를 거치지만 역시 별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신원조회는 그러나 허점이 많아 큰 의미가 없다. 총의 매매가 등록된 가게에서 이뤄질 경우 이 과정을 거치지만 일반인 간에도 마치 중고 컴퓨터 팔 듯 합법적으로 거래된다. 알음알음으로 팔리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하기도 하며,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 간에도 매매된다. 블랙 리스트에 든 사람뿐 아니라 미성년자와 외국인도 구입 부적격자로 돼 있지만 이런 허점이 열려 있다. 구입 부적격자를 위해 적격자가 대신 등록된 총가게에서 사주기도 하는데 이런 행위를 ‘스트로 퍼처스(straw purchase)’라 부른다.

신원조회 없이 총이 거래되는 또 하나 중요한 경로가 ‘건 쇼(gun show)’다. 건 쇼란 총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일종의 소규모 박람회다. 도시의 상가나 실내 경기장 같은 곳에서 보통 주말에 열리는 이 행사에서 중고 총기는 물론 일부 신품까지 신원조회 없이 내놓고 거래된다. 전국에서 한 해 수 천 회 이런 행사가 열린다.

지난 1월 오클라호마 주에서 열린 한 건 쇼

연방정부 기관인 질병통제연구소(CDC)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미국에서 1만6259명이 타인의 손에 살해됐는데 그 68%인 1만1078명이 총에 의한 살인 희생자였다.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 10년 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 수는 6518명으로 미국 내에서 7개월 동안 총 맞아 죽는 사람 수 정도다(위키피디아 자료). 같은 CDC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미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3만8364명이었는데 이 중 총을 사용한 사람이 51%인 1만9392명이었다.

피살자와 자살자를 합해 2010년 한 해 3만470명이 총을 통해 목숨을 잃었다. 별도로 같은 해 6만9000명이 총에 맞은 뒤 목숨은 건졌으나 많은 수가 그 후유증으로 장애를 안고 산다.

역대 미국 대통령 43명 중 다섯 명이 재임 중 총에 맞았다. 이 중 네 명(링컨, 가필드, 맥킨리, 케네디)은 숨졌고, 한 명(레이건)은 총알 제거 수술을 받고 완쾌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대통령 첫 당선 후 취임 직전에 총격을 받았으나 자신은 맞지 않고 동행자만 희생됐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대통령 퇴임 3년 뒤 총에 맞았으나 총알이 깊이 박히지 않아 살아 남았다. 클린턴 재임 시절에는 정신장애자가 백악관 밖에서 내부를 향해 소총을 난사했으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미국에는 지금 군경 보유분을 제외하고 민간인이 가진 총의 수가 나라 인구보다 많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추계에 따르면 인구가 3억 700만이던 2009년 현재 민간 보유 총기 수는 3억1000만 정이었다. 이 중 권총이 1억1400만, 소총이 1억1000만, 사냥에 많이 쓰는 샷건(shotgun) 등이 8600만 정이었다.

미국 전체 가구 중 총을 보유한 집의 비율이 약 40%다. 미국에서 총 가진 사람은 당국에 신고나 등록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 비율은 설문조사로 추계하는 수 밖에 없는데 조사기관별로 편차가 있다는 점은 뒤에 적는다. 전체적으로 총을 안 가진 가정이 더 많지만 총을 가진 사람이 여러 정을 사 모으는 경향이 있다.

미국인의 총에 대한 집착 정도는 대체로 진보보다 보수 성향인 사람들 사이에서 더 높다. 따라서 양대당 중 민주당 지지층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층의 총에 대한 집착이 높고, 대도시보다 중소도시나 시골에서, 소수인종보다 백인사회에서,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총 선호도가 더 높게 나타난다. 이런 요인들이 겹치는 정도에 따라 같은 미국이라도 지역별로 주민의 총기 집착도가 많이 다르다. 뉴욕, 뉴 저지,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주 등에서 총기 범람을 우려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고, 이에 맞춰 주정부는 이를 상대적으로 엄격히 규제한다. 남부, 남서부, 북서부의 여러 주와 알래스카 등은 그 반대다.

미국이 총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람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는 아니다. 브라질, 콜럼비아, 남아프리카 등 마약단이 횡행하거나 정정이 불안한 나라들에서 이 비율이 미국보다 훨씬 높지만 그렇다고 미국을 이런 나라들과 비교할 순 없다. 영국?프랑스?독일?캐나다 등과 비교하면 미국의 총기 사망자 비율이 6~8배에 이른다.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은 수시로 일어나지만 작년 12월 코네티컷 주에서 일어난 사건은 특히 참혹했다. 20세 청년인 범인이 27명의 목숨을 앗은 뒤 스스로도 죽음을 택한 이 사건은 희생자 수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그 대부분이 교실에서 수업 중이던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였다는 점에서 많은 미국인들이 전에 없는 충격을 받았었다. 이 참사가 미국인의 총에 관한 인식을 바꾸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었다.

코네티컷 주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희생자 추모단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이 사건 역시 여느 대형 총기 사건 중 하나로 묻혀가는 양상을 보인다. 사건 직후 반짝 비등했던 총기 규제 여론이 수그러들고 있는데다, 무엇보다 미국 총기 ‘문화’의 본산인 전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약칭 NRA)가 꿈쩍도 않는다.

NRA는 “총 쥔 나쁜 손(bad hand with gun)”에 대응하는 최선책은 “총 쥔 좋은 손(good hand with gun)”이라는 평소의 논리를 내세우며,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전국 모든 학교에 무장 경비원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텍사스 주 지사 릭 페리는 한 술 더 떠 교직원들이 총을 휴대해야 한다고 말했고, 한 공화당 소속 연방하원의원은 사건이 난 초등학교에서 교장이 고성능 소총을 지녔더라면 범인의 “목을 날렸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가급적 많은 미국인이 총을 보유하고, 그 총을 지니고 다니게 하는 것이 NRA의 목표다. 이런 단체에 대한 미국인의 시선은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이 난 직후라면 따가워야 정상일 듯하지만 이는 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코네티컷 사건 20여 일 뒤 실시된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사정을 알 수 있다. 갤럽은 전국 성인을 대상으로 전화를 통해 “NRA에 대한 당신의 전반적인 의견은 어떻습니까?”라고 묻고 응답은 “호의적”과 “비호의적” 중에 택일하도록 했다. 1011명 응답자 중 “호의”가 54%, “비호의”가 38%로 과거 조사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한국은 미국의 가까운 우방이자 미국 문화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의 제도와 한국인 가치관의 많은 부분이 미국의 그것에 동화됐지만 미국에 관해 끝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총에 관한 그들의 집착일 것이다. 이른바 ‘총기 문화(gun culture)’로 불리는 미국인 총 사랑의 뿌리와 현상을, 이번 회를 포함해 다섯 차례로 나눠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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