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주의’라는 종교 혹은 사교(邪敎)

*캐나다 밴쿠버에서 ‘주간동아’ 미주통신원으로 활동하는 황용복 기자가 ‘미국사회의 총기문화’를 심층 분석했습니다.?지난 칼럼 ‘①통계로 보니…’ ②친총(親銃)의 교조(敎條) ‘제2 보완조항’ ③친총(親銃) 논리의 허와 실 ④총기‘문화’의 본산 NRA에 이어 시리즈 마지막 회 ⑤‘총기주의’라는 종교 혹은 사교(邪敎)를 싣습니다. <편집자>

위험한 물건에 민주 이념 덧칠

표1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오바마는 총기 범람을 각별히 우려하는 사람이다. 이런 오바마 집권 기간에 희한하게도 총 판매가 기록적으로 늘고 있다. 1년 간 미국에서 총이 몇 정이나 팔렸는지는 유통 기록이 공개되지 않아 알기 어렵지만 총가게들이 구입 희망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신원조회 건수를 통해 추세를 짐작할 수 있다. FBI에 따르면 오바마 첫 임기 4년 간 이 신원조회 실적이 연평균 1612만 건으로 그 직전 부시 재임 8년 간 연평균 968만 건보다 67% 늘었다(표1).

이런 뜻밖의 현상은 친총 진영의 정치 선전 때문이다. NRA는 오바마가 첫 대선 운동을 할 때부터 “그가 당선되면 시민의 총을 빼앗을 것”이라는 말로 친총 성향자의 불안감과 사재기 심리를 끊임 없이 부추기고 있다.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됐던 지난 4년 총 만드는 회사들과 그 유통업계는 매출이 늘어난 덕에 큰 재미를 봤다. 이들 업계는 “오바마가 최고 세일즈맨”이라고 말한다.

총 판매 활기를 NRA는 친총 인구 저변이 확대되는 고무적 현상이라 주장하지만 반총 쪽 해석은 다르다. 반총 진영은 총을 보유한 사람과 가구 절대수는 오히려 갈수로 줄어드는데 일부 집착자들이 자꾸만 이를 사모은다고 본다.

미국 내 총 보유 가구 비율은 여론조사 기관별로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ABC뉴스가 금년 1월 실시한 조사에서 “당신 또는 집안 사람 중 총을 가진 이가 있습니까”의 질문에 44%가 “그렇다”, 56%는 “아니다”로 답했다. 비슷한 시기 갤럽 조사에서는 총 가진 가구 비율이 39%였다.

반총 단체들은 이들과 다른 GSS 조사를 주로 인용하는데 2010년 조사에서 이 비율이 32%로 나왔다. 시카고 대학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이 조사에서 이 비율은 1977년 54%를 정점으로 꾸준히 떨어져 왔다. 반총 단체 ‘폭력대책 연구소(Violence Policy Center)’ 소장 조시 슈거먼(Josh Sugarmann)은 총 가진 가정 수가 줄어드는데도 NRA는 총기 총량만으로 세를 과장해 정치인 코를 꿰려는 술책을 부린다고 말한다.

총기 판매 급증은 근년의 현상이지만 지난 30여 년 미국의 총기 규제는 전반적으로 완화의 길을 걸었다. 총에 관한 규제는 연방정부만의 권한과 책임이 아니라 주정부 역할이 연방 못지 않게 크다. 미국 내 총기 규제는 연방 법, 주 법, 그리고 기초지자체 조례까지 뒤섞여 작동한다.

총 휴대에 관한 규정은 주정부가 정한다. 50개 주 중 규제가 가장 헐렁한 4개(버몬트, 애리조나, 와이오밍, 알래스카)는 현재 길거리나 공원, 상가 등 공공장소에서 총 휴대를 별도 허가 없이 허용한다. 이들 주에서는 총을 옷 속에 감춰 휴대하는 ‘은닉 휴대(concealed carry)’는 물론, 내놓고 차는 ‘공개 휴대(open carry)’도 무방하다.

권총을 공개휴대하고 콜로라도 주의 한 패스트푸드 가게에 들린 미국인

이들 다음으로 규제가 느슨한 주에서는 총을 휴대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주정부는 이 신청이 들어오면 사유를 묻지 않고 허가증을 자동 발급한다. 이에 해당하는 주가 37개로 대다수를 이룬다. 이와 달리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뉴욕 등 8개 주는 허가 신청이 들어오면 사유를 심사해 선별 발급한다.

오직 한 개 주 일리노이에서만 공공장소에서의 총 휴대가 전면 금지돼 있다. 이 주도 그러나 이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작년 12월 나와 금년 중 새 규정을 내놓을 예정이다. 표2는 은닉 휴대를 기준으로 1986년 이후 규제 단계별 해당 주의 수가 변화한 추이를 보여 준다. 갈수록 규제가 완화됨을 알 수 있다.

표2

주정부들은 총기 규제를 스스로 완화할 뿐 아니라 기초지자체들이 총에 관한 까다로운 조례를 제정하지 못하도록 상위 정부 자격으로 미리 봉쇄하는 이른바 ‘사전점유(preemption)’ 조치를 취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규제를 이처럼 풀어 가는 주된 동력이 NRA다. NRA가 정치 투쟁으로 활동 방향을 바꾼 시기와 규제 완화가 본격화한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여기에 더해 사법부의 성향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제2 보완조항에 대한 연방 법원들의 해석이 친총 논리인 ‘개별적 권리’ 설로 굳어진 2000년 대는 판사들이 거의 레이건 과 조지 H. W. 부시가 대통령이던 1981~1993년에 임명된 사람들이었다. 하바드 대 헌법학 교수 캐스 선스테인(Cass Sunstein)은 그 시절 판사들이 임명권자와 코드가 맞는 보수적 인물이었음을 지적한다.

선스테인은 2008년 연방 대법원 판결에 승복한다 하더라도 그 뒤로 친총의 행보는 이 판결의 한계 안에 들어야 할 텐데 실제로 이들은 “조직과 돈으로 무장한 채 판결보다 훨씬 무모하게 제2 보완조항을 들고 나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들이 “마치 장전된 총처럼 제2보완조항과 대법원 판결을 휘두름”으로써 연방과 주 의회들이 총기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개탄한다.

지금 미국인 중 최소한 절반이 총기 규제를 지금보다 더 엄격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CBS방송이 금년 2월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당신은 전반적으로 총기 규제를 지금보다 더 엄격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덜 엄격히 또는 현행대로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까”의 질문에 53%가 더 엄격히, 10%가 덜 엄격히, 34%는 현재대로가 좋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수치를 근거로 본격적으로 총을 규제할 여건이 됐다고 믿는다면 심각한 오판이다. 현상 유지 또는 규제를 더 풀기를 원하는 사람도 많을 뿐 아니라 더 중요한 점은 규제 강화를 원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규제 강도다. 이들의 대다수는 민간인 총기 보유권을 유지하되 몇 가지 문제점을 보완하는 정도의 소극적 규제에 찬성할 뿐이다. 코네티컷 참사 직후 팍스(Fox) 뉴스가 “시민이 총을 보유할 헌법 상 권리를 보호하는 일과 총기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일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합니까”의 질문을 던지자 51%가 총기 보유권 보호, 40%가 시민 보호를 꼽았다.

총 중에 특히 권총에 관한 미국인의 입장은 단호하다. 여론조사 기관 갤럽은 “당신은 권총을 경찰 등 권한 있는 당국자 외에는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법에 찬성합니까” 질문을 1959년 이래 매년 반복해 던지고 있다. 반대가 지난 40여 년 간 확실한 대세일 뿐 아니라 그 비율이 꾸준히 상승해 지금은 압도적이다. 금년 1월 조사에서 반대 74%, 찬성은 24%였다.

대통령 공보비서관에서 반총운동가로 변신한 제임스 브래디(2006년 촬영)

1981년 레이건 대통령 피격 사건 때 수행 중이던 공보비서관 제임스 브래디(James Brady)는 머리에 총을 맞아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할 장애를 입었다. 그는 이후 총기 규제 운동가로 변신해 70대인 지금도 아내 새라와 함께 이 일에 진력하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총기 폭력 방지 브래디 캠페인(Brady Campaign to Prevent Gun Violence)’은 자매기관인 브래디 센터, 백만 엄마 행진(Million Mom March) 등과 함께 대표적 반총 단체다.

이 브래디 캠페인도 그 홈 페이지에 “우리는 모든 총을 금지하지 않고도 더 안전한 미국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적고 있다. 미국에서 세계 만방의 보편적 규범인 민간인 총기 금지나 제2 보완조항 철폐를 얘기하다간 (실제로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지만) 정신 나간 과격 분자 취급을 받는다.

코네티컷 사건을 계기로 오바마 행정부가 금년 2월 마련한 종합적인 총기 규제 법안은 두 달 만에 좌초했다. 이 법안은 ‘공격용 무기(assault weapon)’와 이에 쓰이는 대용량 탄창을 민간인용으로 제조?유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신품?중고를 막론하고 총을 사려는 모든 사람에게 신원조회를 의무화하며, 청소년이 정신건강 진료를 받기 쉽게 하는 방안 등이 골자였다. ‘공격용 무기’란 미군 보병 기본 화기인M16 소총 또는 이와 비슷한 성능의 반자동 소총을 말한다.

오바마의 총기 대책은 미국인 아닌 사람이 보면 대단한 것이 못 된다. 범죄에 가장 많이 쓰이는 권총은 그대로 두고 반자동 소총만 규제하려는데다, 신원조회 전면 실시와 정신과 진료 확대도 당연한 듯한 내용이다. 미국 총기 피살자 대다수는 권총 피해자이고 소총 몫은 2010년의 경우 4%(FBI 자료)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NRA는 이들 대책 중 정신과 진료 부분만 빼고 단호히 반기를 들었고 이에 동조한 상원의원들에 의해 4월 중순 관련 법안이 없었던 일이 됐다.

격월간 ‘외교정책(Foreign Policy)’ 잡지 객원 편집인이자 국제문제 평론가인 데이빗 로스콥(David Rothkopf)은 “세계의 모범임을 자임하는 나라라면 국민성의 심각하고 분명한 결함을 뻔뻔스럽게 무시해서는 안 되는데 미국은 총에 집착하고 증오 정치를 찬양하는 치부를 깔아뭉갠다”고 적었다.

로버트 립트(Robert Lift, 86)는 역사를 정신의학적으로 해석하는 분야의 탁월한 미국 학자다. 그는 군의관으로 한국전에 종군하면서 전쟁과 이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미국 동부 여러 명문대에서 이 분야 업적을 쌓았다. 그는 미국을 “총기주의(gunism)와 소비만능주의(consumerism)가 대중적 ‘종교’인양 지배하는 사회”라고 분석한다.

립트는 미국에는 국민을 포괄할 안정된 문화가 부재한 상황에서 그 빈 자리를 총이 차지했다고 진단하고 “이 위험한 물건이 민주와 평등이라는 이념과 맞물리면서 다양한 사회문제의 최종 해결책으로 인식됐다”고 말한다. 그는 총이 사람 간 평등을 가져다 준다면 “가장 큰 총인 핵무기를 만방이 공유하면 세계에 평화가 올 것인가”라고 묻는다.

석학의 추궁에 편승해 필자도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며 연재를 끝낸다. 총을 차는 일이 민주 시민의 긍지이자 태생적 권리라면 총이 민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여기는 세계 만민은 야만인, 비겁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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