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문화’의 본산 NRA

*캐나다 밴쿠버에서 ‘주간동아’ 미주통신원으로 활동하는 황용복 기자가 ‘미국사회의 총기문화’를 심층 분석했습니다.?지난 칼럼 ‘①통계로 보니…’ ②친총(親銃)의 교조(敎條) ‘제2 보완조항’ ③친총(親銃) 논리의 허와 실에 이어 ④총기‘문화’의 본산 NRA을 싣습니다. <편집자>

최강 로비단체이자 워싱턴의 거대괴물?NRA
정객 주무르고 정부기관엔 ‘차렷’

미국에는 전국총기협회(NRA) 말고도 수많은 친총(親銃) 단체들이 있다. 여성만을 회원으로 하는 곳도 있고, ‘분홍 권총(Pink Pistol)’이라는 명칭으로 동성애자들의 총기 보유를 장려하는 단체도 있으며, 대학 구내에 학생들의 총기 지참 허용을 목표로 하는 ‘은닉휴대를 위한 학생회(Students for Concealed Carry)’라는 조직도 있다. 이 밖에도 열거하기 힘들만큼 친총 단체가 많지만 이 모든 운동권의 중심에 NRA가 있다.

NRA 본부건물(워싱턴에 가까운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소재)

NRA는 남북전쟁 직후인 1871년 뉴욕에서 창설됐고, 지금은 본부를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 두고 있는 연방 세법 상 비영리법인이다. 남북전쟁 기간 군인들의 총 솜씨가 형편 없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사격술 향상을 목표로 NRA가 설립됐다.

지금의 NRA는 사격 단체 수준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지(2012년 12월 18일자)는 이 협회를 “로비 기구, 운동 단체, 대중 사교 클럽, 유관 단체 후원자, 관련 업계 대변인의 성격을 모두 지닌 워싱턴의 거대 괴물(juggernaut)”이라고 표현했다. 경제 잡지 포천이 1999년 이래 여러 해 연방 상?하원 의원들과 보좌관들에게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 단체가 무엇이냐고 물었었는데 대다수 응답자는 해마다 주저 없이 NRA를 꼽았다.

이 단체는 본부 산하에 세 개의 별도 법인을 거느리고 있다. 첫째가 정계에 대한 로비를 맡는 ‘NRA 입법활동 기구(NRA-ILA)’다. 이 기구가 연방 및 주 단위 각종 선거 때 친총 성향 후보를 지지하고, 반총 후보 낙선 운동을 벌이며, 현직 정치인을 상대로 총기를 옹호하는 법을 만들고, 규제하는 법은 없애도록 로비한다.

둘째는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총기보유권 관련 소송 때 친총이 이기도록 법률 지원을 맡는 ‘NRA 민권 방어 기금(NRA-CRDF)’이다. 친총주의자가 원고든 피고든 재판 당사자가 됐을 때 이 기구가 변호사 선임을 돕는다.

셋째는 NRA의 잠재적 지지세력인 각종 단체에 후원금을 주는 ‘NRA 재단’이다. 야외 스포츠 동호인 단체, 4H 클럽, 보이 스카우트 등이 친NRA 단체로 꼽혀 후원금을 받는다. 이를 받은 단체는 회원들이 총을 스포츠 용도로 사용할 것을 권장하는 프로그램에 이 돈을 지출한다.

NRA는 그 운영 재원을 회원의 회비, 총기 메이커 등 관련 업체가 내는 기부금, 총기 관련 정기간행물 출판 수입, 자신들이 주관하는 총기안전교육 수강료 등으로 조달한다. 회원 수는 2010년 현재 430만 명 가량이다.

회원은 충성도가 대단해 대부분이 ‘NRA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비즈니스 인사이더 지는 전한다. NRA는 그 반대급부로 평소 회원의 사냥여행을 알선해 주고, 그 자녀들에게 사격안전 교육을 시켜주는 등의 서비스를 한다. 역대 대통령 중 여덟 명이 이 단체 회원이었고,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는 퇴임(1877년) 후 이 단체 대표를 맡았었다.

NRA는 140여 년 연륜 중 첫 100여 년 간 사격술 향상과 사냥 취미 옹호 등 실용적 목표에 역량을 집중했으나 1977년 연차총회를 계기로 방향을 급선회해 오늘에 이른다. 당시 정치 성향이 짙은 강경파 인물들이 이 단체의 요직을 차지함으로써 이런 변신이 이뤄졌다. 그 핵심 인물이 닐 낙스(Neal Knox)였다.

강경 친총의 원조 닐 낙스

낙스는 한 총기 관련 잡지 발행인으로 일하다 NRA 상근 임원으로 합류했다. 그는 자위를 위한 총의 보유는 민병대 전통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태생적(pre-existing)’ 권리로서 미국 헌법이 이를 명문화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제2 보완조항의 수호를 NRA 운동 목표의 으뜸 자리로 올려 놓았다. 오늘날 미국인 중 친총주의자에게 총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이념이자 정치철학이다. 이같이 총이 ‘승격’한 중요한 전기가 1970년 대 NRA의 변신이었다.

낙스는 NRA 입법활동 기구의 책임자가 돼 맹렬히 정계 로비에 나섰다. NRA는 1980년 대통령 선거 때 공화당 후보 레이건을 공개적으로 지원해 그의 당선에 힘을 보탰다. 이 단체 출범 이래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낙스는 그러나 기존 NRA 리더들을 ‘약체’라고 몰아붙여 불화를 겪었고, 같은 강경파와도 갈등을 빚은 끝에 1982년 해임돼 이 단체를 떠났다. 이후 그는 잡지 기고 등을 통해 건재를 과시하는 한편, NRA 내 자신의 지지자들이 요직을 차지하도록 원격공작하면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꾀했다.

‘낙스의 아이’이자 NRA의 현 CEO인 웨인 라피어

낙스는 1997년 NRA 총회에서 의장 자리를 노렸으나 온건파에 밀려 할리우드 스타 찰턴 헤스턴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자신의 야심은 최종적으로 무산됐지만 ‘낙스의 아이들’ 중 웨인 라피어(Wayne LaPierre, 64)가 1991년 NRA 집행 부의장(executive vice president) 겸 CEO에 올라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 직책을 지키고 있다.

미국에는 친총 단체 못지 않게 반총 단체의 수도 많지만 자금력과 활동성 면에서 후자는 전자의 맞상대가 되지 않는다. 2010년 NRA가 지출한 총 경비가 2억4400만 달러였는데 비해 반대편 최대 단체인 브래디 캠페인(Brady Campaign, 본부 워싱턴)이 쓴 돈은 300만 달러였다. 80분의 1이 채 못 된다. 미국인 중에 총의 범람을 경계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지만 이들은 이 명분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부금을 내지도 않고, 큰 목소리로 주장을 펴지도 않는다.

미국에서 선거에 의해 공직에 오르려는 사람들은 NRA의 눈치를 본다. 대통령이나 연방 상?하원의원 입후보자뿐 아니라 주 단위 혹은 기초지자체 선거에 나서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NRA는 정치인의 총기와 관련된 평소 발언과 성향을 파일로 간직하면서 친총을 지원하고 반총에 대해 낙선 운동을 벌인다. 특히 유권자의 주류가 친총인 지역에서 출마한 사람이 NRA 눈 밖에 나고 당선되기란 대단히 어렵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정치인 중 공화당 소속은 친총, 민주당 소속은 반총 성향을 보인다. 상황을 단순화해 친총을 우파, 반총을 좌파로 구분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어느 당 소속이든 지역구 선거에 나서는 사람은 당론이나 개인의 신념과 별개로 현지 유권자의 색깔에 맞출 수 밖에 없다.

반총운동가로 변신한 개브리엘 기포즈 전 연방 하원의원

2011년 1월 애리조나 주 투산 시에서 열린 민주당의 한 지역구 집회에서 여섯 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행사 주최자이자 범인의 제1 목표였던 이 곳 출신 연방 하원의원 개브리엘 기포즈(Gabrielle Giffords, 여, 42)는 머리에 총을 맞은 뒤 어렵게 목숨은 건졌으나 후유장애가 커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 기포즈도 과거 선거운동 때 자신은 제2 보완조항을 지지하며, 자신의 집에도 총이 있다고 강조했었다. 애리조나는 대표적 친총 지역이다. 지난 해 기포즈는 ‘책임 있는 해결책을 찾는 미국인 모임(Americans for Responsible Solutions)’이라는 반총단체를 창설해 지금 완전히 딴 길을 걷고 있다.

작년 대통령 선거 때 공화당 후보 경선에 나섰던 늇 깅리치(Newt Gingrich)는 경선 레이스 직전에 열린 NRA 정기총회에 찬조 연사로 나가 “제2 보완조항은 온 인류를 위한 보완조항”이라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총을 지닐 권리를 지구상의 모든 인간에게 확대하는 청원을 유엔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이렇게 NRA를 겁내니 민주주의의 뿌리가 얕은 한국의 기준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들이 미국 의회에서 벌어진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국책 연구기관들이 총기 폐해에 관한 연구를 못하도록 막은 입법이다.

총에 의한 사상자가 워낙 많아지자 그 대책을 범죄 문제의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공중보건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1980년 대 미국의 학계에 퍼졌다. 여러 대학의 공중보건 연구소들이 이 분야 연구를 시작했고 연방 정부 기관인 질병통제연구소(CDC)도 이에 손댔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총기 관련 연구 결과는 거의가 NRA 귀에 거슬리는 것들이었다. NRA는 범죄율?자살률과 ‘총의 입수 용이성(gun availability)’ 간에 상관이 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의 연구는 상관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NRA 대변인은 이들 보고서를 놓고 “허접쓰레기 연구(junk science studies)”라고 막말을 했다.

1996년 연방의회는 CDC의 예산을 승인하면서 “총기 규제를 지지?옹호하는 목적에 자금을 사용할 수 없다”고 단서조항을 통해 명시했다. 이 단서는 지금까지도 이 관청의 예산 집행에 따라다닌다. 연방의회는 그 뒤로 국립보건원(NIH) 등 다른 국책 연구기관에도 같은 제약을 가했다. 이후 국책 연구기관들이 총기 병폐에 관한 연구를 중단한 것은 물론, 그 연구원들은 총과 직접 관련 없는 연구에서 어쩔 수 없이 ‘총’이란 말을 써야 할 때 ‘치명적 수단(lethal means)’ 등으로 에둘러 표현하곤 한다.

총기와 예산을 연계해 의회가 가하는 제약은 연구 분야에 그치지 않고 연방 총기 단속 기관인 ATF, 수사기관인 FBI 등에도 적용돼 이들 기관도 총기 규제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는 자료를 집대성하지 못한다. 한국에서라면 국회의원이 업계의 ‘떡값’을 받고 관련 기관에 음성적 압력을 넣는 일은 있을지언정 이처럼 당당하게 법 조문으로 제약을 양성화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제2 보완조항 정신을 지킨다는 거창한 명분 혹은 궤변 아래 이런 일이 벌어진다. 차라리 받은 촌지에 대가성이 없었다고 우기는 한국식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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