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이 많으면 총 맞는 사람도 많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주간동아’ 미주통신원으로 활동하는 황용복 기자가 ‘미국사회의 총기문화’를 심층 분석했습니다.?지난 칼럼 ‘①통계로 보니…’ ②친총(親銃)의 교조(敎條) ‘제2 보완조항’에 이어, 이번엔 ③친총(親銃) 논리의 허와 실 입니다. 이어 ④총기 ‘문화’의 본산 NRA ⑤’총기주의’라는 종교 혹은 사교(邪敎) 등의 주제로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아시아엔(The AsiaN)

‘친총(親銃) 논리의 허와 실’

민병대 영웅담엔 신화적 거품…서부영화도 총잡이 환상 심어

오늘날 미국 친총(親銃, progun)주의자들은 미국인의 조상이 영국을 물리친 것은 “용감한 애국자들인 시민군(citizen army of brave patriots)” 즉 민병대가 무기를 든 때문이라고 믿는다. 또 그 뒤로 미국이 세계를 리드하는 민주 국가가 된 것은 시민이 보유한 총 덕에 정부가 횡포를 부리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믿음의 연장에서 이들은 총을 미국인 정체성(American identity)의 일부로 여기고, 총을 차며 긍지를 느낀다. 심지어 총을 신성시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아마추어 군인인 민병대가 영국 정규군에 맞섰다는 자부심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이 믿고 있는 독립전쟁 영웅담에는 상당한 신화적 거품이 섞여 있다. 당시 민병대는 전투력도 낮았을 뿐 아니라 기강도 말이 아니었다. 이런 사정은 독립전쟁 직후 결성된 식민지 통합군(대륙군)도 마찬가지였다. 대륙군 사령관 조지 워싱턴은 부하들에 관해 “녀석들은 제 그림자에 놀라 도망친다(They run from their own shadows)”라고 개탄했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오늘날의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서 1776년 영국군과 전투를 벌이는 대륙군.

이런데도 미국이 이긴 것은 미국이 잘 싸워서 라기보다 영국이 이 전쟁에 전력투구할 형편이 못 된 것이 더 결정적 요인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대대로 영국의 군사적 앙숙인 프랑스가 와신상담(臥薪嘗膽) 중이었는데다 영국의 다른 속령 아일랜드에서도 독립 기운이 일어 그 진압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대규모 영국군이 북미로 투입될 수 없는 사정이었다.

정부를 견제하는 시민의 힘이 총에서 나온다는 생각에도 편견과 허구가 드러난다. 독재자를 몰아내는 세계 각국 시민혁명은 무장 아닌 맨손 투쟁의 결과가 더 많다. 지금의 시리아 사태처럼 시민 무장 저항은 흔히 내전으로 발전해 결과가 더 참담해진다.

미국 각 주에는 지금도 민병대가 존속하지만 건국 초기 그 것과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예전 민병대는 주 지사가 통수하는 주 정부 군대였지만 현재의 각 주 민병대는 유사시 연방 상비군에 편입될 예비 자원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들은 평상시 민간인으로서 생업에 종사하다 주 지사의 소집에 의해 천재지변 복구나 폭동 진압 등에 동원되는 점은 예전과 같지만, 연방정부가 짠 계획에 따라 매년 일정한 군사훈련을 받고 연방정부가 소집하면 현역 미군으로 복무해야 한다는 과거에 없던 의무를 지닌다. 과거 민병대 유지 비용은 전적으로 주정부가 부담했지만 요즘은 대원 급료까지 포함해 이를 연방정부가 지출한다. 과거의 민병대는 모든 건강한 남자가 그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전원 지원자로 구성된다. 연방정부는 이들 민병대를 통 털어 ‘미국국가방위대(National Guard of the US)’라 부른다.

17년 간 연방대법원장을 지냈던 워런 버거(1995년 작고). 그는 퇴임 후 제2 보완조항 논란을 NRA 등이 벌이는 대형 ‘사기극’이라고 잘라 말했다.

17년 간 연방 대법원장을 맡은 뒤 1986년 퇴임한 워런 버거(Warren Burger)는 보수적 대통령 닉슨에 의해 임명된 법조인이었지만 1992년 연설을 통해 제2 보완조항은 단지 주의 군대를 보장했을 뿐 일반인이 총 지닐 권리를 얘기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또 이에 관한 논란을 “특별한 이익집단들이 미국인 대중을 상대로 벌이는 내 일생 보아 온 최대 사기극(fraud) 중 한 편”이라고까지 말했다.

민병대 전통 외에 서부 개척기 오지에서 인디언이나 악당, 그리고 야생동물 등의 공격에 대한 자위책으로 민간인이 총에 의지한 것이 문화로 굳어졌다는 설명도 있다. 19세기 미국 영토가 급속히 확장되면서 서부는 미국 땅으로 편입만 됐지 정부 공권력은 미치지 않았다. 정부가 조직한 경찰에 의지할 수 없었던 초기 이주자(pioneer)들은 자신들의 선거로 보안관(sheriff)을 뽑아 현지 치안을 맡겼고, 스스로도 총을 지닌 사람이 많았다. 이 전통은 지금도 남아 미국의 비(非)도시 지역 경찰 업무는 주 아래 행정단위인 카운티(county) 별로 주민이 선출한 보안관과 그 보조원이 맡는 것이 보통이다.

이 시기 서부에서 형성된 ‘나와 내 가족 안전은 내가 맡는다’ 사고방식이 그 뒤로 미국인 의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서부 개척기에 관한 친총 미국인의 이해에도 역시 신화적 거품이 끼어 있다.

소들을 다 모아 들였고/ 길 잃은 놈 한 마리도 없어/
강 모퉁이 돌면 그녀가 기다릴 테지/ 내 총과 애마와 나를
(No more cows to be roped-in/ No more strays will I see/
Round the bend she’ll be waitin’/ For my rifle, pony and me)

1959년 개봉된 서부영화 ‘리오 브라보’에 삽입된 노래다. 가수 겸 배우 딘 마틴과 리키 넬슨이 이 노래를 부르는 ‘폼 나는’ 장면을 올드 팬 중에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고 인터넷을 통해 지금 볼 수도 있다. 이 영화 아니라도 서부극에 총이 중요한 도구로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없고, 관객은 총 없이 오늘날 큰 나라 미국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된다. 카우 보이 뿐 아니라 외딴 곳에서 총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대(大 )목장주, 천재적 사격술의 보안관, 원수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외톨이, 신출귀몰하는 대(大)강도 등 총잡이 영웅이 서부영화의 표준적 주인공이다.

개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가 주연한 서부영화 하이눈 광고 포스터

그러나 영화 속 서부와 역사의 서부는 많이 다르다. 서부 개척사에서 총잡이 역할은 일부분이고, 인구 면에서 그 주역은 연방정부가 계획적으로 이주시킨 농민 즉 ‘홈스테더(homesteader)’들이다. 이들은 유럽에서 갓 이민 왔거나 미국 동부에서 농사 짓다 옮겨온 사람들로서 총과 거리가 멀었다. 할리우드 영화나 대중소설 등이 서부에서의 총을 과잉으로 미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총 쪽은 또 역사적 배경을 따질 것 없이 현실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에 대한 자위 목적으로 총을 지닐 수 밖에 없고, 선량한 시민이 총을 지니지 않으면 더 많은 강력범이 횡행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민이 지닌 총은 평소 사냥이나 스포츠사격 등에 활용되고, 궁극적으로 정부에 대한 견제 수단이며, 이에 더해 범죄예방과 자위 효과까지 있다는 것이 친총의 논리다.

친총은 또 총기 난사 병폐에 관해 그 범인은 대개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예방책은 총의 문제 아닌 다른 시각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총이 자살을 늘린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꼭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사람은 총이 없더라도 다른 방법을 택하니 총과 자살자 수에는 연관이 없다고 반박한다. 이런 논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준비하고 다니는 친총주의자들은 총 지닌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선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말끝마다 “법 지키는 총기 보유자(law-abiding gun owner)”를 내세운다.

그러나 총이 범죄 감소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 반대 방향으로 간다는 수많은 연구와 통계가 있다. 또 자위 수단으로서 총의 효용이 미미하며, 총이 많으면 자살자 수도 늘어난다는 연구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다음은 그 일부다.

총 많으면 맞는 사람도 많아

하바드 대 부설 부상통제연구소 소장인 데이빗 헤먼웨이 교수. 그는 총의 병폐를 밝히는 연구 결과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미국 내에서 총기 소유자가 특히 많은 지역에서 그 반대 지역보다 총기에 의한 살인 피해자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하바드 대 부설 부상통제연구소(ICRC) 소장 데이빗 헤먼웨이(David Hemenway) 일행이 2007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가구 중 총 가진 집의 비율을 기준으로 미국 50개 주를 네 등급으로 구분한 뒤 가장 높은 등급, 즉 가장 총이 많은 주(루이지애나·네바다·애리조나 등)들에서 인구 10만 명 당 살인 피해자 수가 등급이 가장 낮은 주(하와이·뉴욕·매사추세츠 등)의 수치보다 114% 높았다고 이 연구는 밝혔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

펜실베이니아 대학 부설 총상 연구 센터(FICAP)의 연구진(Charles Branas 등 5명)이 2003년에서 2006년 사이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총격을 받은 사람 677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총 가진 사람이 총에 맞을 확률이 안 가진 사람의 그 것에 비해 4.5배 높다고 발표했다. 같은 기관의 또 다른 연구는 자살의 경우 총 가진 집 가족이 실행할 확률이 총 없는 집 사람보다 5배 높다고 밝혔다.

응급실 의사의 연구

의사 아서 켈러먼(Arthur Kellermann)은 초년병 시절 시애틀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했다. 이 곳에 총을 맞고 실려 오는 사람 중에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공격보다 가족 간 다툼에 의한 피해자가 훨씬 많다는데 착안, 6년 간 사례를 수집해 1986년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하는 사람의 54%가 총이 있는 집 내부에서 발생했고, 이 중 외부인 침입자가 내부인의 정당방위에 의해 총을 맞은 사례는 2%에 불과하다고 집계했다. 이 발표 후 사회학자 아닌 의사의 연구여서 조사 방법에 오류가 많다는 친총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 뒤 그는 더 세련된 방법으로 별도의 연구를 해 비슷한 결론을 냈다.

호주의 총기 규제 효과

1996년 호주 태즈매니아 주에서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직후 연방정부가 강도 높은 총기 규제를 실시했다. 이 규제 전 18년 간 호주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한꺼번에 4명 이상 숨진 사고)이 13건이었지만 규제 후 14년 간 같은 기준의 난사 사건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규제 전 7년 간 이 나라 인구 10만 명 당 총기 피살자 수가 연평균 0.43명이었으나 규제 후 7년 간 이 수치가 0.25명으로 줄었다 (Harvard Bulletin 2011년 봄 호).

일반인이 생각하는 총의 효용

2004년 갤럽이 전국 성인 1012명과 전화 인터뷰한 조사에서 “집 안에 총을 두는 것이 집을 더 안전하게 한다고 생각하는가”의 질문에 “더 안전하게 한다” 42%, “더 위험하게 한다” 46%, “상황에 따라 다르다” 10%였다. 이 질문은 집에 실제로 총을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에게 공통으로 주어졌는데, 양자를 구분해 보면 생각에 큰 차이가 있다. 전자의 71%가 더 안전하게 한다고 답했으나, 후자는 23%만 그렇게 생각했다. 총에 관한 미국인 인식이 이처럼 양극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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