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아름다운 동행…“함께 가야 멀리 간다”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교수는 건배를 제안할 때마다 ‘동반’이라고 외친다. 그러면 동석한 일행들은 ‘성장’이라고 되받는다. 그에게 동반성장이란 그가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 초대위원장을 맡은 이후로 한순간도 놓지 않는 화두가 되고 있다. 훗날 경제학자와 사가들 그리고 특히 중소기업인들은 21세기 초반 새로운 개념으로 자리잡은 ‘동반성장’에 대해 이렇게 기록할지 모르겠다.
“한때 진보성향의 정치세력으로부터 대통령 후보로 지목받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보수세력이 뽑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명으로 국무총리의 자리에 오른 후 받은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40년 경제학 연구를 응축시켜 만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개념.”
정 전 총리가 2013년 벽두 펴낸 <미래를 위한 선택 동반성장>은 그의 생각과 행동반경과 시대적 화두, 미래 대안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는 “함께 가야 멀리 간다”며 “동반성장은 문자 그대로 더불어 같이 성장하자는 뜻이자 아름다운 동행의 첫 걸음”이라고 밝힌다.
그는 1년 4개월 동안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후 2012년 6월부터 동반성장연구소를 차려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자신의 새 책에서 “동반성장을 하려면 재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데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제왕적 재벌들에게 단기필마로 맞서야 했다”며 “중소기업자, 소상공인, 자영업자 및 가족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적고 있다.
저자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여야 후보가 내세운 경제민주화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지금까지의 관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되 앞으로는 대기업이 공정거래 규칙을 제대로 지키도록 하겠다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헤비급 선수와 플라이급 선수의 권투 시합에서 계급 차이를 문제삼지 않은 채 반칙없이 공정하게 경기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식이다. 이는 체급이 다른 두 선수를 올려놓고 ‘한번 해봐 그 대신 발로 차면 안돼. 룰을 지켜야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경제민주화는 재벌을 손보자는 것에 불과해 보인다. 재벌개혁의지는 분명한 것 같은데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목적은 재벌개혁 자체가 아니라 경제민주화, 나아가 동반성장에 있다. 우리의 바람은 잘 사는 사람 못살게 만들자가 아닌 모두 함께 잘 살게 하자는 것이다.”
그는 동반성장은 경제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가?총장시절이던 2005년 시작한 지역균형선발제를 예로 꼽고 있다. 바로 지역간 동반성장의 모델이 된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서울대에 한명 이상 합격시킨 고교가 700여개에 불과했는데 이 제도 실시 후 1000여개 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환경,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이 만나 서로 교류하면 간접경험을 많이 하게 되고 간접경험은 창의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동반성장의 예는 또 있다. 남북간 개성공단은 남북간 동반성장의 좋은 모델이라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중소기업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기회이자, 남북갈등을 조금이라도 없애고 상생의 실마리를 얻는 사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동반성장은 국가 간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저자의 논리다. 만리장성에 한국인이 많이 가고 제주도에 중국인들이 많이 오면 그것도 하나의 동반성장이라는 것이다. 경주 최부잣집, 워런버핏, 빌게이츠 같은 부자들의 나눔과 기부활동도 모두 동반성장의 일환이며 김대중 정부 초기에 벌였던 금모으기 운동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주장한다.
40년간 대학에 몸담아온 그는 이 땅의 대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잿빛 시대의 먹구름을 걷어라’라는 장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당장 등록금 인상 철회와 등록금 인하 협상이 관철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땅의 수많은 대학생들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학업을 힘겹게 마치고 나서도 변변한 직장을 찾지 못해 88만원 세대라는 멍에를 짊어져야 하는지, 왜 나의 부모님은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계부채는 늘어만 가는지 그 근본 원인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풀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다.”
<미래를 위한 선택 동반성장>이 인용한 두 사람의 인용은 필자의 눈길을 확 잡아 끌었다.
“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당신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함께 큰 일을 할 수 있다.” (마더 테레사)
“두 사람이 사과 한 개씩을 갖고 있다가 서로 교환하면 각자는 한 개의 사과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아이디어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가 서로 교환하면 그들은 아이디어를 각각 두 개씩 갖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글=이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