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자신과의 싸움에 충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싸우려 들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2장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라” (눅 12:51)
당혹스러운 구절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이 왜 분쟁을 이야기하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분쟁 그 자체가 아니라, 분쟁이 없는 상태인지도 모릅니다. 화평으로 포장된 타협은 분쟁보다 더 나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더 이상 대립하지 않으며, 무관심해지는 상태, 이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평화라는 이름의 방치입니다.
예수님은 ‘회피적 평화’를 깨러 오셨습니다. 의도적으로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러 오셨습니다. 복음이 내 안에 들어오면 분쟁이 시작됩니다. 이전에는 고민하지 않던 것을 고민하게 되고, 이전까지 없던 갈등이 생기고, 이전에는 전혀 불편하지 않던 말과 행동이 불편해집니다. 마치 입덧과도 같습니다. 생명을 잉태한 증거로 나타나는 입덧 말입니다. 이전에 즐기던 세상 일에 대한 입덧,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분쟁’입니다.
이 분쟁에 충실한 사람을 통해 평화가 꽃을 피웁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충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싸우려 들지 않습니다. 자신과의 대립을 포기한 사람들이 대체로 남들과 대립각을 세우곤 합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씨앗으로서 분쟁을 던지신 것입니다.
예수로 인한 분쟁이 있고, 예수의 부재로 인한 분쟁이 있습니다. 예수로 인한 평화가 있고, 예수의 부재로 인한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로 인한 분쟁은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믿음의 선한 싸움이요, 투쟁입니다. 예수의 부재로 인한 평화는 방치했다가는 병을 키우고 맙니다.
나의 분쟁은, 우리의 분열은 본질을 사수하기 위함인지,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평화의 왕께서 분쟁을 주시겠다고 하셨을 때는, 진정한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만큼의 분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