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누가복음 6장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아서 나만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주로 나에 대한 것입니다. 나만 모르는 내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기 때문에 모르는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타인을 보고 있으면 그런 것이 보입니다. 본인만 모르고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것 말입니다. 본인의 말버릇, 본인의 습관, 본인의 태도가 주변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지 본인만 모릅니다.
사람이 도둑질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이간질을 하고, 그래야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매사에 자기밖에 모르는 태도와 언행을 오랜 시간 견뎌야 하는 주변 사람들은 괴롭습니다.
안타까운 건 아무도 그에게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건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에게 에둘러 얘기도 해보고 직접적으로 말해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듣지 못하는 그에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나나 그나 똑같다고 적혀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더 심각하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눅 6:41-42)
간혹 타인에게서 티를 찾다가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자기 눈의 들보는 인체에 무해하고, 타인의 눈 속 티는 유해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인간의 지독한 자기 중심성입니다. 우리는 절대 내 눈의 들보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들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을 자기 바깥으로 꺼내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게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내 들보의 문제는 하나님의 용납과 은혜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은혜 없이 스스로 들보를 빼도 문제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들보를 해결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티를 지적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