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말해야 할 때, 말을 아껴야 할 때
누가복음 1장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 1:13)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는 나이 든 자신과 아내에게 아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고 천사의 말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사에게 묻습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눅 1:18) 사가랴의 이 질문은 인간의 지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고, 오히려 그의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눅 1:20) 사가랴는 더 이상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침묵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어봐도 그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나이가 많은 여인의 임신은 마을 사람들에게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가랴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접근과 질문에 시달렸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부부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으로 굉장히 지치지 않았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임신한 아내와, 갑작스럽게 말문이 막힌 남편, 이 수상한 노부부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피해 숨어 지내게 됩니다.
말문이 막힌 사가랴는 여러 설명을 입 밖에 내는 대신, 혼자 잠잠히 하나님을 깊이 묵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가랴뿐이었을까요? 말 못하는 남편과 함께 숨어 지내는 아내도 입을 닫은 채 지냈을 것입니다. 부부는 침묵 가운데 점점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쌓아 갔고, 엘리사벳의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 점차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 이제는 그들의 삶 속에서 실재하는 하나님의 역사로 다가왔습니다.
말해야 할 때가 있고, 말을 아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던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에 스며들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의 말문을 막으셨습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지만, 그것이 가슴에 스며들지 않는 이유는 입을 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다가, 뚫린 입으로 다 새어나가고 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