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 삶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증언하다
요엘 1장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요엘 1장 2-4절)
요엘이 살던 시대, 이스라엘은 전대미문의 재난을 경험했습니다.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메뚜기 떼가 날아와서는 온 나라를 초토화시켰습니다. 한 차례도 아니고 무려 네 차례였습니다.
팥중이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희망을 품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려던 찰나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이 연이어 들이닥쳐서는 남아있는 모든 가능성을 물어 뜯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집트를 심판하실 때 사용하셨던 메뚜기 재앙을 당신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데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후대에 전하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처참했는지, 어쩌다가 그런 재앙을 초래하게 되었는지 등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그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말해야 했습니다. 어른과 부모가 자기의 아픔을 자녀에게 말한다는 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하나님은 다음 세대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또한 우리의 자녀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잘 한 일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상처와 실수와 아픔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할 줄 알아야 어른 아니겠습니까?
일제강점기의 치욕과 한국전쟁의 아픔, 이념 갈등이 빚어낸 부작용과 같은 이야기들을 꺼내기가 점점 조심스러워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IMF 사태, 천안함, 세월호, 대통령의 탄핵, Covid-19,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들도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적인 일 말고도 개인의 인생 가운데 벌어진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겪어왔던 혹독함에 대해 말하게 될 때 그저 아프기만 하고, 부끄럽기만 하고, 숨기고 싶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기를 소망합니다. 망해가는 이야기, 절망의 현실에 주저앉은 이야기가 아니라 고치시고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증인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상처는 은혜의 통로가 되고, 절망은 소망의 시작이 됩니다. 후대가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